노벨 평화상을 생각한다
  • 함인희(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 승인 2002.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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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受賞)의 영광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카터 씨는 정작 재임 시절보다 대통령 직에서 물러난 이후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게 된 전직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대통령직 수행 능력과 국민적 인기 사이에 상관관계가 희박하다는 사실은 일견 흥미롭다. 최근 미국에서의 대표적 사례로는 로널드 레이건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오르내리곤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알츠하이머로 투병하는 레이건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유달리 국민으로부터 남부럽지 않은 사랑을 받았던 행운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레이건 시절 미국 경제는 높은 실업률과 치솟는 인플레이션, 재정 적자의 악순환에 시달렸고, 세계 정치 무대를 좌지우지하던 미국의 헤게모니 또한 ‘강한 아메리카’를 명분으로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쇠락을 거듭해갔기에, 그의 대통령직 수행 능력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닉슨 전 대통령에 대한 엇갈린 평가


반면 닉슨 전 대통령의 경우는 그의 눈부신 업적이 국민적 냉대로 인해 응분의 평가를 받지 못한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재임 당시 닉슨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바닥 수준에 머물렀다고 한다. 닉슨 자신도 국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고백이 회고록을 통해 흘러나오기도 했다. 결국 닉슨은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말미암아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불명예 퇴진을 하고야 말았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헨리 키신저와 팀을 이루어 닉슨이 이루어 낸 이른바 핑퐁 외교 성공과 동서 해빙 분위기 실현이 갖는 의미에 높은 점수를 주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닉슨의 정치 감각과 외교 역량에 힘입어 소비에트를 위시한 동유럽 사회주의권 몰락이 가능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고 보니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소식을 접한 지 어느 새 1년이 흘렀다. 당시는 정치적 상황의 미묘함으로 인해 수상의 낭보가 예기치 않게 조용히 묻혀버린 듯하다. 그 기억 위로 사직동 주민들이 내걸었던 플래카드 ‘김대중 대통령님의 노벨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던 글귀가 떠오르기도 한다.


받아서 기쁘지 않을 상이 있을까마는, 노벨상 정도 되면 수상의 영광이 국가의 자긍심으로까지 이어지기에 노벨상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유독 노벨 평화상 속에는 일련의 역설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평화상 무게 중심, 휴머니즘 쪽으로 옮겨갈지도


노벨상 가운데 그나마 제3 세계 국가들이 기대해봄직한 상이 문학상과 평화상이라는 사실부터가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데, 그동안 누차 고대하던 노벨 평화상의 영광이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나 남아프리카의 만델라 전 대통령, 혹은 투투 주교에게 돌아갔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면, 대한민국의 민주화 및 인권을 위한 투쟁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엔 충분치 못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독재 권력의 억압과 횡포가 강렬할수록, 인권 유린 상황이 처절할수록, 전쟁 및 테러로 인한 희생의 강도가 높을수록, 빈곤 및 기아 상황이 처참할수록 이 모든 극한 상황을 뚫고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이들에게 노벨 평화상 수상의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곤 했다.


때문에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드디어 우리의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시기의 적절함, 상황의 정당함 모두에 물음표를 찍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수상 소식을 듣고 보니, 앞으로의 세계 평화를 위한 공로는 정치·경제적 억압이나 분쟁 해소보다는 보편적 휴머니즘 실천 쪽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리라는 예감이 든다. 그나저나 우리에게는 언제쯤이면 재임시든 퇴임 후든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대통령이 나타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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