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대안 찾는 저항운동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4.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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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랄트 슈만 외 지음 <아탁>
세계화라는 말을 들으면 솔직히 역정부터 앞선다. 거칠게 말해, 미국이 자기네 이익 챙기려고 내세운 허울 좋은 구호가 세계화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한때 세계화가 절체절명의 화두인 양 여겨진 적도 있지만, 이제 세계화를 신봉하는 열혈 신도들은 거의 없지 않은가 싶다. 세계화의 부산물로, 직장인들은 노동 시장 유연성이라는 미명 아래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이른바 선진 금융의 정체도 ‘먹고 튀는’ 투기 자본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세계화는 이제 도도한 대세이다. ‘자본의,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세계화의 위세는 비판할 수 있어도 막을 수는 없는 흐름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탁>(하랄트 슈만 외 지음, 김무열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의 저자들은 세계화의 숨은 진실을 비판하며 그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어 신선하다. 이 책은 ‘대안적 반세계화 운동’의 기수로 이름 난 아탁의 생생한 현장보고서이자 반세계화운동의 르포로 읽힌다는 점에서 국제 정치의 의제를 변경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아탁(Attac)은 ‘시민 지원을 위한 국제 금융 거래 과세 연합’의 준말로서, 1997년 프랑스의 한 진보적 시사 잡지에 실린 글에서 비롯되었다. <시장을 무장해제하자>는 도발적 제목의 이 글에서 필자 이냐시오 라모네는 다국적 기업에만 책임을 지는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금융 자본의 세계화를 맹렬하게 성토하면서 ‘현실 사회의 현실 국가들은 권력을 갖지 못한 사회로 전락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듬해 아탁이 결성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에 따르면 ‘강력한 권력을 가진 이 기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시장 가치를 노래하고 전세계의 거대 언론 매체는 이에 대해 충실한 메아리로 답한다’.

아탁의 활동가들은 현재의 국제 금융 제도가 ‘강대국의 시녀’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면서 여러 가지 실천적 대안을 제시한다. 미국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이 처음 제시한 ‘토빈세’가 대표적인데, 그 골자는 모든 외환 거래에 1%씩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으로, 이를 통해 확보된 자금을 제3 세계 개발 지원금으로 쓰면 왜곡된 세계 금융 질서가 재편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아탁은 ‘세금 오아시스’와 역외 금융센터 철폐, 개도국 채무 탕감, 국제 금융기관의 민주적 개혁 등을 세계화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이같은 아탁 활동의 실상과 더불어 아탁 탄생의 배경이 되었던, 한국이 그 중심에 있었던 1997년 무렵의 아시아 경제 위기가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는 점에서도 특히 눈길을 끈다. 저자들에 따르면,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위기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문제점이 가장 극명하게 노출된 사례이다.

“IMF는 구미 금융 시장의 원정군”

개별 국가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국제 기구는 위기에 처한 아시아 경제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이들 시장을 구미 금융 시장의 지배 아래 편입시키기 위해 동원된 ‘원정군’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용으로 불리는 나라들이 당면하고 있었던 경제 문제는, 구미에게는 경제적 이해를 관철할 수 있었던 천금과 같은 기회였다.’

결코 녹록치 않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술렁술렁 읽히는 ‘저널한’ 문체와, 책 뒤에 붙은 아탁 운동의 ‘시대적 증인’들과 나눈 대담이 인상적이다. 그 가운데 그린피스 의장을 지냈고 아탁 프랑스 부의장을 맡고 있는 수잔 조지의 말이 특히 공감이 간다. 그녀는 아탁이 ‘좌파’가 아니라 ‘민주’라고 강조한다. 계급투쟁도 중요하지만, ‘이미 우리가 과거에 획득하긴 했지만 더 이상 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고전적) 권리를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위험을 경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막 잠에서 깨어났고 조직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너무 늦지 않은 것이기를 바란다.’ <아탁>을 읽으며 늦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도 아마도 큰 소득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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