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칙왕’ 오노는 미국의 자화상
  • 반김현승 (<굿데이> 기자) ()
  • 승인 2003.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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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한 가짜 영웅, ‘더러운 손장난’ 들통나
반칙왕’이라는 불명예스런 타이틀을 가진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 그의 쇼트트랙 인생을 뒤집어보면, ‘영웅 만들기’에 혈안이 된 미국이 빚어낸 슬픈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오노는 출생 신분부터 미국의 영웅주의에 부합되었다. 오노의 아버지 유키 오노는 일본인, 어머니는 미국인이었다. 오노는 한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손에 자랐다. 시애틀에서 헤어스타일리스트로 일하는 아버지는 어머니를 대신해 오노에게 지극 정성을 쏟았다.

오노가 처음 스케이트를 신은 것은 일곱살 때. 오노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스피드의 묘미를 즐겼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취미 생활일 뿐이었다. 당시 오노는 스케이트보다 수영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열두살 때 주에서 주최한 수영대회 배영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운동 신경을 보였다. 유키는 아들이 수영으로 스탠퍼드 대학에 가기를 내심 바랐지만 오노는 수영에 흥미를 잃었다. 물이 차갑게 느껴졌고, 근육 훈련에 염증이 나 운동을 포기한 것이다.

술·마약에 찌들어 ‘갱’ 노릇 하기도

이후 오노는 술과 마약에 손을 대며 갱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등 방탕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간곡한 설득에 마음을 돌려먹고 운동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위험한 시기에 오노를 구한 것은 쇼트트랙이었다. 1996년 일본 나가노 겨울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를 텔레비전으로 지켜본 오노는 스피디한 경기의 매력에 푹 빠져 본격적으로 칼날을 갈았다. 오노는 아버지를 졸라 당시 쇼트트랙 강국이던 캐나다로 매주 훈련을 떠나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특히 그는 천부적인 재질을 유감없이 과시하며 벼락 스타로 떠올라 미국 쇼트트랙계를 평정했다. 미국 쇼트트랙 코치 수전 엘리스는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글러브를 끼고 태어났듯 오노도 스케이트를 타고 태어났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쇼트트랙 선수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만인 1997년 미국 챔피언에 오른 오노는 1998년 헝가리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서 열여섯 나이로 정상을 정복해, 미국 쇼트트랙 역사상 최연소 챔피언이라는 신화를 이룩했다. 이후 월드컵과 국내 대회에서 꾸준히 1위에 오르며 홈에서 벌어진 겨울 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평가받았다. 당시 오노의 강력한 경쟁 상대는 한국의 김동성을 비롯해 중국의 리자준, 캐나다의 마크 개그넌 3인이었다.

지난해 초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엔론 게이트 등으로 민심이 흉흉했다. 이런 상황에서 솔트레이크 겨울 올림픽은 분열된 여론을 한곳으로 결집할 아주 좋은 도구였다. 물론 분위기를 띄울 영웅이 필요했고, 오노는 그 중심에 있었다. 특히 쇼트트랙 경기장은 미국 프로농구 유타 재즈의 홈구장인 델타센터로서 유타 주의 자존심으로 통했다. 경기장 주변에서는 오노의 상징인 염소 수염이 불티 나게 팔렸고, 경기장도 오노를 응원하는 문구로 물결을 이루었다. 여기에 언론도 오노 띄우기에 열을 올렸다. 2월17일(한국 시간) 오노가 1000m에서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자 등 유력 일간지와 3대 방송 등 모든 언론은 ‘Oh ! No’라는 제목과 대형 사진으로 크게 다루었다. 오직 ‘오노를 위한 올림픽’으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오노의 경력에 최대 흠집이 난 운명의 2월21일. 남자 1500m 결승에서 오노는 한국의 김동성과 만났다. 김동성은 출발 총성과 함께 5위로 처져 탐색을 벌이다 일곱 바퀴를 남기고 1위로 치고 나갔다. 오노도 부랴부랴 김동성의 뒤를 추격했다. 그러나 탄력이 붙은 김동성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김동성도 오노가 치고 나갈 공간을 주지 않기 위해 라인 안쪽으로 바짝 붙는 완벽한 레이스를 펼쳤다. 마지막 반 바퀴를 남기고 김동성은 사력을 다해 코너링을 했고, 2위를 달리던 오노는 파고 들 틈이 없자 두 손을 번쩍 올리며 주춤거렸다. 김동성은 기분 좋게 결승선을 1위로 통과했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심판이 김동성이 오노의 진로를 방해했다고 실격 판정을 내린 것이다. 사실상 김동성의 금메달을 강탈해 오노의 품에 안겨주었다. 미국이 그토록 바라던 영웅이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올림픽 이후 김동성과 오노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올림픽에서 많은 눈물을 쏟았던 김동성은 두 달 뒤에 벌어진 몬트리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전종목을 휩쓸며 6관왕에 등극해, 멋지게 명예 회복에 성공했다. 반면 오노는 지난해 6월 <시애틀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이 여전히 당시 일에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은 놀랍지는 않지만 내가 결정하지도 않은 일에 아직까지 집착하는 것은 유감이다”라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오노의 뻔뻔함과 오만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오노는 지난 10월27일 미국에서 벌어진 2003~ 2004 쇼트트랙 월드컵 2차대회에서 이승재(서울대)에게 반칙을 시도하다가 실격했다. 특히 AP 통신은 남자부 3000m 결선에서 오노가 손으로 안현수의 다리를 잡아채는 장면이 선명히 담긴 사진을 전세계에 타전하며 오노에게 망신을 톡톡히 주었다.

한국인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오노. 그가 과연 한국 땅을 밟아 레이스를 펼칠지는 최종 엔트리 마감 시한인 11월23일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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