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동안 가족과 함께 찾아가 볼 만한 옛집들
  • 이용한 (시인) ()
  • 승인 2004.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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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산골 샛집 보고픈가
사람은 자연에 세 들어 산다. 살았을 때는 자연의 일부이며, 죽은 뒤에는 흙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다. 큰 나무나 바위, 산이 있으면 그 곳을 비켜서 집을 지었다. 집을 짓는 재료도 오롯이 자연에서 빌려 왔다. 나무가 그렇고, 흙과 자갈이 그렇고, 이엉을 엮는 짚풀이 그렇다.

하지만 요즘 집들은 어떤가. 도심의 무수한 빌딩과 아파트는 거의 모두, 온갖 독성과 오염 물질이 포함된 재료들로 지어져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건강을 해친다. 도시의 현대적 건물은 철거하고 나서도 골칫거리다. 폐자재들이 모두 이 땅을 더럽히고, 냄새를 풍기고, 썩지도 않을 골치 아픈 쓰레기로 변한다.

그렇지만 옛집들은 수명이 다한다 한들, 나무와 흙과 짚풀이 전부이니 그대로 썩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옛집의 또 다른 자랑은 삶의 공간을 자연에 들여, 행복한 어울림을 이룬다는 것이다. 대문을 열고 나가면 앞으로 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자락이 펼쳐진다.

방과 방 사이에는 마루를 두어 앉아서도 집 앞의 하늘과 들판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굴뚝과 아궁이는 고래를 통해 연결되어 있으며, 바깥 바람이 자유롭게 이 안으로 드나들면서 집을 숨쉬게 한다. 다양한 형태의 지붕도 옛집의 특징이다. 기와·볏짚·억새·갈대나무·돌·굴피를 각각 얹은 기와집·초가집·샛집·너와집·돌너와집·굴피집 등이 대표 지붕들이다. 설 연휴를 맞아 가족들이 삼삼오오 찾아갈 수 있는 옛집 몇 곳을 소개한다.

옛집의 대표 선수는 누가 뭐래도 초가다. 사실 초가는 지난 1960년대까지만 해도 가장 흔하고 보편적인 집이었다. 초가는 한마디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 친화적인 집, 사치하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는 소박한 집,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평등의 집, 1~2년에 한 번씩 지붕을 갈아주어야 하는 부지런함의 집이었다. 화재에 약하고 썩기 쉬운 단점에도 불구하고 민초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무엇보다 볏짚이라는 재료를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초가의 지붕 모양은 마을 앞산의 산자락을 그대로 닮았다. 담장은 들판의 논두렁 모양을 고스란히 따랐고, 마루는 고랑 난 뙈기밭을 닮았다. 초가는 또 사람만 사는 집이 아니었다. 굴뚝새도 살았고, 구렁이도 살았고, 굼벵이도 살았고, 초목도 살았다. 한마디로 ‘사람만 살고, 모든 생물은 다 죽는’ 요즘 집들과 달랐다. 모습을 제대로 갖춘 초가를 볼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안동 하회마을, 순천 낙안읍성, 제주 성읍마을, 아산 외암리마을, 경주 양동마을에 가야 볼 수 있다. 그러나 구석구석 들여다보면 소문난 곳에 있는 초가보다 더 멋진 초가가 많다.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에 있는 ‘정원태 초가’는 담장을 포함해 집의 규모가 가장 큰 초가에 속한다. 집 구조도 튼 ㅁ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에 있는 ‘조길방 초가’는 나이로 치면 가장 오래되었는지도 모른다. 초가로는 드물게 싸리나무로 기둥을 삼았고, 그 덕에 2백여 년 세월을 너끈히 견뎌냈다.

필자가 돌아본 초가 가운데 가장 운치 있는 초가는 양동마을 물봉 너머에 있는 ‘정순이 노인댁’이다. 이 집의 구조는 본채·헛간채·뒷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당 앞에 텃밭과 텃밭을 에두른 바자울이 있어 더없이 살갑다. 전남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에 있는 ‘이식래 초가’도 규모가 큰 데다, 지붕 양쪽 끝이 살짝 올라간 우진각 지붕이어서 특이하다. 충남 예산군 고덕면 오추리에 있는 ‘정동호 초가’도 운치 있는 ㅁ자형 집인데, 짚옷을 입은 짚가림 굴뚝이 두 개나 서 있다. 아쉬운 것은 몇 년 전까지 전남 신안군 도초도에 남아 있던 초가 수십여 채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 났던 전남 영광군 묘량면 삼효리 효동마을 초가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샛집은 초가의 사촌쯤 되는 집인데 억새로 지붕을 이었다. 주로 짚을 구할 수 없는 산중 마을이나 억새가 흔한 곳에서 지었던 집이다. 현재 남아 있는 샛집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집은 전북 남원군 주천면 덕치리 회덕마을 샛집이 아닐까 한다. 이 집은 규모도 클 뿐 아니라, 헛간채와 뒷간채 모두 샛집으로 되어 있다. 뒤란에 소박하게 꾸민 장독대도 샛지붕과 잘 어울린다. 전북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 점말에 있는 한 칸짜리 샛집도 산중 샛집의 운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벽체는 귀틀로 되어 있으며, 현재 노인 내외가 살고 있다. 경남 창녕군 창녕읍 술정동에 있는 ‘하병수 가옥’도 샛집과 돌담이 잘 어울리는 보기 좋은 샛집이다.

띠집은 띠풀로 이엉을 엮어 올린 집을 말하는데, 주로 제주도 성읍마을을 비롯한 제주 전역에서 만날 수가 있다. 너와집은 그야말로 몇 채 남지 않은 옛집인데, 강원도 삼척과 울릉도 등에서 만날 수 있다. 너와집이란 지붕에 기와나 이엉 대신 얇은 나무판이나 돌판을 덮은 집을 일컫는다. 그러나 좀더 멋드러진 너와집은 질이 좋은 소나무나 전나무를 60cm 정도로 널을 쪼개어 만든다. 지붕이 나무이기 때문에 뒤틀리고 사이가 떠서 빗물이 샐 것 같지만, 나무는 습하면 차분히 가라앉는 성질이 있어 스스로 틈을 막는다.

대표적인 너와집은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 있는 ‘이종옥 노인댁’이다. 이 곳에는 안방 모서리에 대대로 써오던 고콜이 있어, 겨울이면 관솔을 지펴 실내 조명과 난방을 한다. 또 지붕 양쪽에는 까치구멍을 내 고콜과 부엌의 연기가 잘 빠지도록 했다. 삼척시 도계읍 신리에도 너와집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울릉도 나리분지에도 우데기(집 둘레에 치는 억새 또는 수수깡 막)를 둘러친 투막(귀틀) 너와집이 있다. 눈이 많고 바람이 심한 곳이어서 나리의 너와지붕에는 널만큼이나 많은 돌멩이를 얹어놓았다.

필자가 다녀본 바로는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너와집은 오대산 상원사 서대 수정암이 아닐까 한다. 이 절집은 암자라기보다는 옛 화전민 집을 연상시키는데, 지붕에 얹은 너와와 벽을 사방으로 둘러싼 장작더미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 뒤란에 불쑥 솟아오른 통나무 굴뚝도 운치를 더한다.

고기 비늘같이 생긴 돌을 쓴 돌너와집은 강원도 평창과 정선 등에서 더러 볼 수 있다. 평창군 평창읍 이곡리 돌너와집은 현재 남아 있는 돌너와집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세 칸짜리 본채와 헛간채가 ㄱ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정선군 남면 유평1리에 남아 있는 ‘신명선 가옥’과 정선읍 가수리 ‘이남문 가옥’도 돌너와집의 옛날 운치를 제대로 간직하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평창군 미탄면 일대와 정선군 전역에 걸쳐 돌너와집이 많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조리 개량 지붕으로 바뀌고 말았다.

굴피집의 운명도 너와집과 비슷하다. 현재 굴피집은 강원도 양양군 서면 내현리 빈지골과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삼척시 신기면 대평리 사무곡 등에 각각 한 채씩 남아 있을 뿐이다. 굴피집은 코르크의 재료인 굴참나무 껍질을 지붕에 얹은 집을 일컫는다. 굴피 지붕에는 보통 지지름돌과 지지름나무를 써서 굴피가 날아가지 않도록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굴피집 가운데 가장 볼 만한 집은 내현리 빈지골 굴피집이다. 모양도 아름답고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1950년대에 지어졌다는 이 집 부엌에는 성주의 신체도 남아 있으며, 짚풀 이엉을 얹은 뒷간은 멀리서 보면 굴피집과 어울려 한 장 ‘엽서’가 된다. 대이리에 있는 굴피집은 3백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부엌에는 불씨를 보관하는 화티와 호롱불을 올려놓는 두둥불을 두고 있다. 집 앞 개울에는 굴피 덧집을 해 이은 통방아도 있다. 대평리 사무곡에 있는 굴피집은 산 8부 능선쯤에 자리하고 있어 전망이 좋고, 역시 부엌에 옛 모습 그대로 화티가 보존되어 있다.
울릉도 나리에는 육지의 귀틀집과 유사한 투막집이 여러 채 남아 있다. 투막집은 귀틀로 된 본채 주위에 억새나 옥수숫대로 엮어 만든 우데기를 빙 둘러치고, 군데군데 꺼지렁문(거적문)을 만들어놓는다. 지붕은 대부분 억새를 이어 치덮은 형태. 투막집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본채와 우데기 사이에 각종 생활 도구와 땔감과 양식을 저장하는 공간인 ‘죽담’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죽담은 눈이 많이 올 경우를 대비해 만든, 부엌과 방을 오가기 위한 활동 공간인 셈이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봉산리에서 볼 수 있는 투방집도 통나무를 쌓아올린 귀틀로 지은 집이다. 보통 귀틀집보다 지붕이 훨씬 낮아 방안에 앉아서도 손을 뻗으면 천장이 닿는 집을 투방집으로 분류하지만, 귀틀집의 다른 이름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통나무를 엎을장 받을장(일종의 맞물려 쌓기) 치쌓은 귀틀집은 주로 나무가 흔한 산간에서 지어진다. 필자가 만난 귀틀집 가운데 가장 볼 만한 집은 전남 구례군 토지면 문수리 밤재에 있는 귀틀집과 강원도 홍천군 내면 율전리 문암동에 있는 귀틀집이었다.

예로부터 우리네 조상은 삼재(三才) 사상에 입각해 집을 지었다. 지붕은 곧 하늘이며, 기둥은 사람, 주춧돌은 땅이라 여겼다. 양반네의 하늘이 기와였다면 서민들의 하늘은 짚이거나 억새, 너와 또는 굴피였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새마을 노래와 함께 기와·짚·억새·굴피 지붕은 함석 지붕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대체되었다. 바야흐로 풀(짚)과 흙과 나무 문화가 콘크리트와 철골과 페인트 문화로 교체된 것이다. 이제 ‘세대 교체’는 거의 다 이루어진 듯하다. 더 늦기 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집들을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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