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선수 연인.부부가 많은 까닭
  •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
  • 승인 2004.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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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 선수끼리 연애·결혼 많아…안재형·자오즈민 ‘세기적 커플’
지난 1월5일 중국 언론은 탁구 국가대표 남녀 선수 4명이 동료 선수와 사귀고 있다는 이유로 대표팀에서 쫓겨났다고 보도해 세계 스포츠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중국의 차이전화 감독으로부터 제명당한 선수는 남자 탁구 세계 랭킹 1위인 마린의 여자 친구 바이양(19세), 세계 3위인 왕하오의 여자 친구인 세계 랭킹 20위 판잉(17세), 그리고 남자 국가대표 호우잉차오(21세)와 그의 여자 친구인 세계 랭킹 10위 리난(21세)이다. 당초 스캔들에 휘말린 선수는 6명인데 희생자는 4명이었다. 세계 1위와 3위인 마린과 왕하오는 빠진 것이다.

마린과 왕하오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탁구 단·복식의 강력한 금메달 후보다. 하지만 여자 선수들의 경우 세계 랭킹 1위인 왕난·리주 등 금메달 후보가 얼마든지 있는 데다, 마침 세대 교체를 하려던 참이었기 때문에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20명이 채 안되는 중국 국가대표 선수 가운데 6명이 사귀고 있었음이 이번에 밝혀졌다. 이는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등 탁구가 성행하는 나라에서 공통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탁구 커플이 다른 종목 커플보다 휠씬 많다. 삼성스포츠단 부사장 박성인·최정숙 커플을 비롯해, 스승 박종호와 제자 심경옥의 로맨스는 고전(古典)에 속한다. 지금은 이혼했지만 서울올림픽 남자 개인 단식 은메달 리스트 김기택과 육선희, 마사회탁구팀 현정화 감독과 김석만, 그리고 최근에 맺어진 오상은과 이진경 커플 등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세기적인 국제 결혼도 2건이나 있다. 1980년대 말 안재형과 중국의 자오즈민 커플이 효시였고, 최근 김승환과 홍콩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는 쿼팡팡 커플이 14년 만에 그 뒤를 이었다.

안재형과 김승환의 국제 커플이 각각 탄생한 배경과 시대 상황은 매우 다르다. 안재형과 자오즈민 두 사람이 막 사귀기 시작하던 1986년 무렵에는 중국이 외국 사람과 결혼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이 불가능했다. 당시 두 사람 사이에서 편지 심부름을 해주던 양영자·현정화도 ‘과연 결혼까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88년 중국 정부가 국제결혼등록규정을 공표해 법적으로 인정받게 됨으로써 두 사람은 1989년 결혼할 수 있었다.

당시 AFP통신은 이 핑퐁 로맨스가 ‘반공 국가인 한국과 공산 국가인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고, 일본의 <도쿄 신분>은 ‘체제의 네트를 넘은 사랑’이라고 보도했다. 그만큼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랑을 두 사람은 끈질긴 정열과 깊은 사랑으로 극복해낸 것이다.

김승환·쿼팡팡 커플의 결혼은 마치 내국인 사이의 결혼처럼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김승환과 중국 출신이면서 홍콩 국가대표인 쿼팡팡은 2000년 6월 베트남 오픈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상무 소속 선수로 대회에 출전했던 김승환은 싱가포르 대표 선수들과 손짓발짓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싱가포르 국가대표 장슈에링의 친구인 쿼팡팡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김승환은 첫눈에 쿼팡팡의 착하고 상큼한 외모에 반했고, 쿼팡팡도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김승환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김승환이 친구인 장슈에링에게 다리를 놓아달라고 부탁한 뒤로 두 사람은 e메일 주소와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한국에 돌아온 김승환은 쿼펑팡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01년 9월 서울에서 개최된 코리아 오픈 때 완벽한 중국어로 프로포즈를 하기에 이르렀다. 김승환은 부모로부터 쿼팡팡과의 결혼 허락을 받은 후 2002년 10월 중국 난징으로 가서 쿼팡팡의 부모에게도 결혼 허락을 받아 지난해 5월 혼인신고를 마쳤다.

그런데 김승환이나 안재형 모두 중국 아내들의 탁구 실력이 더 출중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김승환이 국내에서 아직 국가대표로 뽑히지 못하고 있는 데 비해, 쿼팡팡은 2003년 프랑스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복식과 혼합복식에서 16강에 올랐고, 단식에서도 32강에 들었다. 또한 안재형이 서울올림픽에서 유남규와 함께 남자 복식 동메달에서 그친 것에 비해 자오즈민은 개인전은 동메달에 그쳤지만 여자 복식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그렇다면 왜 탁구에서 커플이 많이 탄생하는 것일까? 탁구는 세로 152cm 가로 274cm의 한 평도 채 안 되는 녹색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훈련을 반복하고, 경기를 치른다. 탁구공의 무게도 겨우 0.2g으로 훅 불면 날아갈 듯 가볍다. 따라서 모든 스포츠 가운데 가장 예민하고 섬세한 종목이다. 남녀가 짝을 이루는 혼합복식 선수는 잠자는 것만 빼놓고는 항상 붙어 다녀야 하고, 코치가 선수를 가르칠 때도 수시로 신체 접촉이 이루어진다. 더구나 국가대표나 단일 팀이 되면 연중 거의 10개월 이상 합숙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로맨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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