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미친 주가’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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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9.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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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 덕에 동반 상승세…악재 터지면 함께 침몰할 수도
“미쳤다.” 모건 스탠리 증권의 수석 분석가인 바튼 빅스가 최근 미국 주식 시장을 두고 한 말이다.

이같은 지적은 국내 증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최근 약간 조정 국면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주식 투자자들의 과열 분위기는 여전하다. 증권사 객장에서는 ‘누가 어떤 주식에 투자해 얼마를 벌었다더라’는 ‘카더라’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이 바보 취급을 당하는 기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하숙비를 주식에 투자하는 대학생, 집을 저당 잡히고 대출받은 돈으로 투자하는 직장인, 남편을 출근시킨 뒤 증권사 객장으로 직행하는 가정 주부. 이들 모두가 일확 천금을 꿈꾸며 주식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 덕에 호황을 누리는 곳은 엉뚱하게도 일류 호텔들이다. 증권사·투신사·뮤추얼 펀드는 물론이고 언론사까지 나서서 주식 투자 설명회를 여는 바람에 최고급 호텔 연회장이 난데없이 특수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 증시, 미국 증시와 한몸처럼 움직여

지난 5월13일에도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 그랜드볼룸에서는 ‘저금리 시대 투자 설명회’가 열렸다. 미래에셋이 주최한 이 날 설명회의 연사는 삼성증권 이남우 이사.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찬 2천여 직장인·주부·퇴직자 들에게 그는 지금 상황에서는 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질문이 쇄도했다. ‘어떤 주식을 사면 좋으냐’‘돈 벌 수 있는 주식 하나만 콕 찍어 달라’…. 일부는 현관까지 따라나와 매달렸다.주식 투자 열기가 달아오르기는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오죽했으면 ‘미쳤다’는 표현까지 등장했을까. 미국의 다우존스 지수(미국의 다우존스 사가 발행하는 <월 스트리트 저널>지가 매일 발표하는 주가 지수)는 94년 4000 포인트를 넘어선 뒤, 올해 초에는 10000 포인트를 넘어섰고, 최근에는 11000 포인트마저 돌파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미국인들의 눈과 귀가 온통 증시로 쏠리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를 부추긴 것은 나스닥(미국의 벤처 기업 주식을 거래하는 거래소)에 등록된 인터넷 관련 주들이다. 야후(YAHOO)·아메리칸 온라인(AOL) 같은 주식은 1년 만에 10배 가까이 올랐다. 그러다 보니 주식을 잘만 고르면 단숨에 일확 천금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팽배해졌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 한인 사회까지 술렁대고 있다. 적게는 수천 달러에서 많게는 수십만 달러를 들고 증권사 객장을 찾는 한인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은 1년 안에 몇 배의 수익을 거두기를 기대한다.

최근에는 일본 증시마저 상승세로 돌아서 미국과 한국 시장을 뒤쫓고 있다. 9년간 계속된 주가 하락세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이처럼 한·미·일의 주가가 동반 상승세로 돌아선 핵심 이유는 저금리이다. 일본의 이자율은 0%에 가깝고, 미국은 3%, 한국은 6% 정도이다. 이처럼 금리가 낮아진 것은 전세계를 강타한 경기 침체 때문. 기업들이 신규 투자를 망설여 생긴 여유 자금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증시로 몰려든 것이다. 여기에다 경기를 띄우려는 각국 정부의 재정 확대 정책이 맞물려 주가 상승세를 촉발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한국 증시가 세계 증시, 특히 미국 증시와 한몸처럼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미국 증시를 주도하는 인터넷 주가 폭락하면 그날 당장 국내 증시에 여파가 미친다. 미국의 재무장관이 교체되거나,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일기만 해도 국내 주가는 요동을 친다.

이처럼 국내 증시와 미국 증시가 동조 현상을 보이는 것은, LG증권이 최근 발표한 ‘다우지수 변화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분명해진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뉴욕 주가가 30% 하락하면 국내 주가도 25% 정도 하락한다. 이것은 90년대 들어 세계 금융 시장이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생겨난 금융의 ‘팍스 아메리카나’ 현상이다. 멀리 떨어진 한국의 투자가도 그날그날 뉴욕 증시 동향을 챙겨야 하게 되었다.‘악재’ 터지면 간접 투자도 위험

이같은 동조 현상은 참담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미국 증시의 거품이 빠지는 날에는 전세계 증시가 동반 폭락할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의 마지막 보루 구실을 하는 미국 경제가 무너지면, 나머지 국가도 동반 침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 경제가 이미 그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월9일 <뉴욕 타임스>는 세 가지 악재가 세계 경제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미국의 첨단 주식 가격이 무너지는 것이다. 현재 미국 증시는 인터넷 주를 비롯한 몇몇 ‘스타 주’가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기업의 실적이 신통치 않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거품론’이다.

둘째는, 일본이 경기 회복에 실패하는 경우이다.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는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최근 일본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국내총생산(GDP)의 8%를 경기 부양에 쏟아부을 계획이고, 경제성장률도 0.5%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같은 낙관론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일본의 경기 회복이 정부 투자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 경제가 좌초하는 경우이다. 이렇게 되면 위안화 평가 절하가 현실로 나타나고, 그 영향이 주변 아시아 국가들에 미칠 것이다.

최근 한·미·일의 주식 상승세는 이같은 악재들을 바닥에 깔고 진행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변화에도 과민하게 반응한다. 최근 국내 주가가 4∼5일 만에 100 포인트 가까이 조정된 것도 그 때문이다. 경기 회복에 따른 금리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자, 저금리 특수가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 때문에 주가가 폭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같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선호되는 것이 뮤추얼 펀드와 주식형 수익 증권이다. 하지만 이것도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폭락 장세에서는 원금을 까먹을 공산이 큰 것이다. 그런데도 이같은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거나 과소 평가되어 있다. 수익 증권을 판매하는 측은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점만 강조할 뿐, 위험성을 알리는 데는 인색하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 대규모 조정을 거치고 난 뒤 장세 분위기가 ‘묻지마 투자’에서 ‘물어봐 투자’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종합주가지수가 600 선을 넘어선 이후 상장사 주식 간에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참에, 개인들도 뒤늦게 외국인과 기관이 좋아하는 우량주 쪽으로 쏠리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부실 기업의 주식들은 철저히 따돌림받고 있고, 갈수록 이같은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미국인들은 이같은 투자 유형에 이미 익숙하다. 미국 증시도 과열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종목만 잘 고르면 단기간에 떼돈을 벌 수 있으리라고 내다보고, 대거 주식 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뮤추얼 펀드 등에 돈을 맡기는 간접 투자 방식을 택한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전화로 물어보거나, 정기적으로 주주에게 보내오는 운용 내역 자료를 참조하면 된다. 여기에 불만이 있으면 중도 해지하면 그만이다.

일부가 직접 투자를 하는데, 한국처럼 증권사 객장으로 ‘출근’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집과 사무실에서 인터넷을 통해 거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식에 일자무식인 사람은 온라인 주식 거래사인 E*Trade와 찰스 쉬왑 사 같은 곳에 가입해 도움을 받으면 된다. 수수료를 내고 개인 계좌를 트면 이 회사에 소속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투자할 수 있다.

미국 투자가들의 자산 운용 방식은 투자 성향에 따라 판이하다. 보수적인 사람은 60% 정도를 우량주에 분산 투자하고, 나머지 30%를 고정 수익률이 보장되는 채권에, 10%는 부동산 등에 투자한다. 반면 공격적인 투자자는 80%를 성장형 주식에 투자하고, 나머지를 채권과 부동산에 나누어 투자한다.

현재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거품론이 사실로 판명 나 주가가 폭락하는 상황이다. 얼마 전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 증시가 과대 포장되어 있다고 밝히고, 머지 않아 20% 또는 그 이상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계속해서 미국 증시가 폭락할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고공 비행하는 미국 증시가 어느날 갑자기 곤두박질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주식 투자자들은 좀처럼 이같은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고성장·저실업·저물가에 힘입은 강세 행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증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강세 행진을 계속할 것이라는 측과, 조정을 거치리라는 측이 팽팽히 맞서 있는 것이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강세론 쪽이 힘을 얻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골드먼 삭스의 수석 전략가인 애비 코언이다. 그는 앞으로 1년간 12∼13%의 강세 행진을 계속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일본인이 주식 투자 망설이는 이유

최근에는 일본 증시도 상승 기류를 타고 있는데, 이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곳이 일본의 월가로 불리는‘가부토 죠우’이다. 증권사가 밀집해 있는 이곳은 요즘 장어 요리집이 다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우나기 노보리’(장어 오르기)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일본의 증권맨들은 장어가 꿈틀거리듯 주가가 꿈틀거리며 올라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장어 요리를 즐겨 먹는다. 가부토 죠우 부근의 장어집이 붐빈다는 것은 일본 증시가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이다.

실제로 도쿄 증시는 3월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단숨에 2년 전 야마이치 증권이 도산하기 이전 수준까지 회복했다. 일본의 증권 전문가들은 올 여름에는 도쿄 증시의 평균 주가가 18000 포인트를 돌파하고, 연말에는 20000 포인트를 넘어설 것이라고 장담한다. 89년 말에 최고치가 38915 포인트였던 점을 감안하면 절반을 약간 넘는 수준이지만, 9년간 주가가 일직선을 그리며 하강했던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도쿄 증시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외국인 투자가들 덕분이다. 이들이 일본 기업의 주식에 다시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부터이다. 지난 3월에 사상 최대 규모인 1조8천4백억 엔 순매수를 기록했는데, 그 뒤로 도쿄 증시가 반등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일본 기업에 다시 관심을 쏟는 것은 일본의 금융 불안이 거의 해소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3월 금융기관들이 부실 채권을 처리하도록 돕기 위해 7조4천5백억 엔에 이르는 공적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 뒤 일본 금융기관들의 대외 신인도가 올라갔고, 금융기관이 해외에서 자금을 빌려올 때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저팬 프리미엄’이 현저히 줄어 들었다. 이 때문에 금융기관들의 신규 대출이 늘어나고, 경기 회복이 촉진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상황이 바뀌자 개인 투자자들도 매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지난 4월 도쿄·오사카·나고야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된 내역을 집계한 결과를 보면, 7개월 만에 개인들이 순매수로 돌아섰다.

한국·미국과 차이가 있다면, 일본 증시에서는 아직 열기를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실질 금리가 0%인 상태에서 자산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탐색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지난날 받은 주가 대폭락이라는 상처가 너무나 깊어, 선뜻 다시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주가는 89년 말까지 계단을 오르듯 상승했다. 당시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 대부분 적지 않은 이익을 챙겼다. 하지만 89년 말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주가가 계속해서 곤두박질쳤고, 한국처럼 개인 투자자들이 희생양이 되었다. 그런 데다 증권사의 부당 행위로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는 더 커졌다. 증권사가 지점 별로 약정고, 즉 ‘노르마’를 할당하고, 이를 채우도록 직원들을 독려하면서, 직원들에게 ‘회전 매매’라고 부르는 불필요한 매매를 강요했던 것이다. 이에 응했던 고객들은 엄청난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주가가 요동칠 때 주식을 자주 사고 팔면 큰 재미를 볼 수도 있지만, 계속해서 하락할 때는 증권사에 매매 수수료만 지불할 뿐이다. 이런 것을 뻔히 알면서도 증권사 직원들은 자기에게 할당된 노르마를 채우기 위해 고객들에게 회전 매매를 강요했다. 금리가 0%인 상황에서도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거들떠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97년 9월 일본의 노무라 증권은 부점장 회의를 열고 그같은 영업 방침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노르마 제도를 폐지하고 회전 매매를 금지하며, 고객이 맡긴 재산을 늘려 수익을 얻는 ‘자산 관리형 영업’을 적극 펼치겠다고 밝힌 것이다.

“장바구니·넥타이 부대가 객장 메우면 상투”

하지만 불과 1년 반 만에 노무라 증권은 방침을 바꾸었다. 지난 3월 노르마 제도를 부활시킨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 언론들은 노무라 증권을 ‘노르마 증권’이라고 비꼬고 있다.

일본의 증권사들은 지금 개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혈안이다. 그러나 한번 떠난 투자가를 다시 불러들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입었던 상처 이외에도, 언제 외국의 헤지 펀드(백명 미만의 거액 투자자들을 끌어모아 단기 투자하는 펀드)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서 주가가 곤두박질칠지 모르고, 과열된 뉴욕 증시가 언제 냉각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여기에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일본인들의 속성이 가세하고 있다.

이런 점을 본다면 한국의 투자가들은 망각의 천재이다. 전국민의 관심이 증시로 쏠리는 현상은 불과 5∼6년 전에 경험했던 일이다. 그때도 최고급 호텔들은 투자설명회로 특수를 누렸고, 증권사 객장은 장바구니 부대와 넥타이 부대로 가득했다. 증시에서는 보통 ‘넥타이·장바구니 부대가 객장을 메울 때 주가가 상투’라는 말이 있다. 이런 상식이 이번만큼은 예외일 수 있을까. 국내의 증시 전문가들은 걱정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워싱턴·卞昌燮 편집위원

로스앤젤레스·姜龍錫 편집위원

朴在權·蘇成玟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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