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몸, 테이프로 고친다
  • 文正宇 기자 ()
  • 승인 1999.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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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의학과·소아과 전문의 어 강
보통 생각하듯 의사만이 의술을 발전시켜온 것은 아니었다. 백년 전만 해도 서양 외과의들은 마치 훈장처럼 가운에 피칠갑을 하고 다녔다. 생물학자인 파스퇴르가 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인하고 무식한 의사들이 오히려 환자들을 감염시켜 죽이고 있다고 비난했을 때도 의사들은 그가 의사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귀 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 의학은 파스퇴르의 발견에 기대어 제 궤도로 들어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재활의학과·소아과 전문의인 어 강씨(46)도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일이 의사만의 특권은 아니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의사는 학교에서 배운 것만을 고집해선 안되며, 치료에 보탬이 된다면 한방이든 민간 요법이든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 덕분에 학계에서 ‘씹히기도 많이 씹혔고’ 변변한 자기 병원 하나 갖고 있지 못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속수무책이었던 환자들에게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그가 87년 처음 개업한 뒤 20년 넘게 돌고 돌아 평생 연구해 볼 분야로 선택한 것은 이름조차 생소한 밸런스테이핑 요법이다.

약물·메스 없이 골격·신경 계통 환자 치료

가톨릭의대를 졸업한 그는 마산의 변두리에서 소아과를 개업했다. 그가 아무 연고도 없고 주변에 버스 정류장조차 없는 외진 곳에 병원을 연 이유는, 다른 병원과 경쟁하는 데 신경 쓰지 않으면서 소신껏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서였다.

현대 의학에서 통증은 ‘생리적 깁스’라고 불린다. 통증은 그 자체가 질병이 아니라 손상된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뇌가 발하는 경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증만을 없애는 치료를 하면 병을 만성화하거나 악화시키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런데 도시의 환자들은 통증을 신속히 없애주는 의사만을 명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사도 울며 겨자 먹기로 통증 치료에만 매달리게 된다. 그는 그런 식으로 환자 비위를 맞추는 진료를 하기 싫어 벽지에 병원을 열었다.그는 아이들 이마가 펄펄 끓어도 여간해서는 해열제를 쓰지 않았다. 기침이 심해도 합병증 위험이 없으면 스스로 이겨내도록 내버려 두었다. 진심이 통했는지 그의 병원은 하루에 3백명 정도의 환자가 북적일 정도로 문전성시였다. 병원 운영에 여유가 생기자 그는 주변 고아원 아이들을 무료로 진료했는데,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고아원에 버려진 아이 가운데는 뇌성마비 환자가 적지 않았다. 부모조차 기르기를 포기한 아이들이다. 그런데 명색이 의사인 그가 그 아이들에게 해줄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교과서를 뒤져도 뇌성마비를 진단하거나 치료하는 법은 적혀 있지 않았다. 환자를 앞에 두고 치료하지 못하는 상황을 참지 못하던 그는 독일의 유명한 뇌성마비 전문의인 보이타 박사의 저서를 어렵사리 구해 독학을 했다.

개업의로서는 드물게 뇌성마비 연구에 열중해 있는 그를 눈여겨 본 이는 고인이 된 가톨릭의대 재활의학과 안용팔 교수였다. 안교수는 뇌성마비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하러 서울에 온 어씨에게 저녁을 사주면서 “개업해서 돈 벌어 무엇하겠느냐. 당신은 타고난 연구자이다. 공부를 계속하라”고 권했다. 그 자리에서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한 그는, 마산에 내려가자마자 3년 간의 개업의 생활을 정리하고 37세에 가톨릭의대 재활의학과 수련의 생활을 시작했다. 93년 재활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딴 그는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사이리악스(CYRIAX) 정형의학회 멤버십을 획득했다. 사이리악스 정형의학이란 환자를 직접 손으로 치료하는 정형도수의학을 가리킨다. 그가 공부할 때만 해도 국내에는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95년 영국에서 돌아온 그는 제주도에 서귀포재활의학과 의원을 열었다. 그는 주로 골격과 신경계통 이상 환자를 치료했는데, 약물이나 메스를 대지 않고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정형도수의학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는 피부에 흐르는 전기 에너지의 균형을 맞추어 주면 골격이나 신경계통뿐 아니라, 장기 이상을 치료하는 데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를테면 목 디스크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지압을 해주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환자의 지병이던 위장 질환 따위가 말끔히 사라지곤 했다. 당시 그는 한방의 침술이나 기공도 마찬가지 원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기지도 못하던 환자가 제발로 걸어나가는 것을 보는 재미에 밤낮을 모르고 환자를 치료한 것이 화근이었다. 하루 평균 1백60여명씩 치료하고, 낫지 않는 환자는 밤에 따로 찾아오라고 해서 맛사지를 해주다 보니 본인의 몸이 많이 축이 났다. 운신하기 힘들 정도로 기력이 빠져 쉬고 있다가 그는 자신의 치료 방법을 복기할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반드시 강한 자극이 능사가 아니고 적절한 부위라면 아주 미세한 자극만 가해도 치료 효과가 똑같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의사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손으로 치료하는 것보다 훨씬 간편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테이프로 에너지 조절해 뼈·장기 치유력 높여

그는 정형도수의학을 강연하러 일본에 갔다가 우연히 그 해답을 발견했다. 일본의 일부 의사와 침구사가 환자 몸에 테이프를 붙이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어씨는 무릎을 쳤다. 테이핑 요법과 정형도수의학을 접목하면 어떨까 생각한 것이다. 내친 김에 한방도 더 깊이 공부해 테이핑 요법을 체계화하기로 했다. 국내 체질의학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권도원 선생으로부터 사사한 뒤 그는 자신의 테이핑 요법에 더욱 깊이가 생겼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개발한 테이핑 요법이란 쉽게 말하면 피부(경락)에 흐르는 전기 에너지를 적절히 조절해 근육·뼈·장기의 자연 치유력을 높이는 것이다. 기본 바탕은 서양 의학의 정형도수의학, 한방의 경락 및 체질의학이며, 시술 도구가 손이나 침이 아니고 테이프라는 점이 다르다. 테이프는 본인이 직접 개발했는데, 탄력·두께·접착력·앨러지 요소만 고려했을 뿐 약물은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

어씨는 현재 일반 환자는 받지 않고 병원이나 한의원을 대상으로 자신의 테이핑 요법을 대중화하는 강연에만 열중하고 있다. 다만 그의 강연을 들은 의사나 한의사 들이 맡기는 중증 환자들만 치료하고 있는데, 상당한 효험이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임상 실험 결과 테이핑 요법을 계속하면 심폐 기능과 지구력이 현저하게 강화되는 것으로 나타나, 그는 테이핑 요법을 스포츠 의학에 응용할 계획도 갖고 있다.

외도를 하고 있어 의사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 같은 사람도 한 사람쯤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의술이면 다 같은 의술이지 정통 의학 따로 있고 외도가 따로 있느냐”라고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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