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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세모의혹 ‘양파껍질’인가
검찰, 유사장 사기공모 혐의 ‘물증 확보’ 집단변사 세모 관련 사실규명이 과제
[93호] 1991년 08월 08일 (목) 00:00:00 정기수 기자

지금까지 나타난 오대양사건과 세모관련 의혹의 흐름을 정리하면 “삼우트FP이딩에서 세모로 이어져온 유사장 회사의 설립-부도위기 극복-급격한 사세확장은 대부분 신도들의 모금과 거액의 사채에 의한 것이고, 이 과정에서 송재화씨(45) 등이 자금책으로 맹활약했으며, 오대양 박순자씨도 송씨를 통하거나 직접 사채를 유사장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개발비(사채)의 비밀을 안고’천장 위에서 죽은 오대양 집단변사 사인은 따라서“배후세력에 의한 타살 가능성이 높고 자살이라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이 세력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7년 사건 당시, 89년 재수사, 지난 7월의 경찰 수사에서 이러한 의혹이 밝혀지지 않은 것은 세모가 “권력층의 비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주목받는 ‘세모 급성장’의 배경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세모 부천공장 방문 사진, 86년 유병언 진정사건 당시 청와대 지시로 내사종결된 사실이 있다. 또 세모유람선 선정의 특혜의혹 여론과 관련된 경찰 내부자료가 공개되기도 했다. 수천억원으로 추정되는 부동산과 여기에 세워지는 공동생활용 주택 병원 공장 등 각종 시설이 낱낱이 노출되면서 세모의 폐쇄성과 급성장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

이제 국민의 이목은, 유병언 사장을 사기 공모혐의로 이번주초 소환키로 하고 “의혹해소 차원에서 의욕적으로” 수사를 벌이고있는 검찰에 쏠리고 있다. 그러나 국민이 느끼는 ‘기정사실’의 폭과 정도가 너무 커 검찰이 과연 그것에 부합하는 결과를 얻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여론은 “2백억원대로 추정되는 오대양 사채 거의 전액이 세모로 흘러들어갔고(사채행방), 오대양 집단변사는 세모에 의해 야기된 타살 혹은 타살성 자살이며(사인), 5공의 특혜와 비호 아래 세모는 이때까지 법망을 피해 급속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특혜의혹)”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기 때문에, 검찰 수사결과가 과연 이 여론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의문시되는 것이다.

대전지검 특수부(이재형 부장검사)는 일단 사채와 관련된 사기사건의 구조를 “유병언을 정점으로 송재화?구노성(광주) 오수형?강석을(강남) 박순자(대전)등이 중간 사채모집책 역할을 한 집단사기극”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예금계좌와 수표추적 당시 관련자들의 증언 등을 통해 이미 물증을 확보해놓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구조는 “송재화 박순자씨 등이 경영한 자체사업은 사채를 끌어들이기 위한 위장기업으로 세모의 하부조직에 불과하며 문제가 생길 경우 하부조직을 희생물로 삼아 핵심부는 살아남는 수법을 써왔다”는 그 동안의 제보자?폭로자들의 주장과 일치하고 있다. 세모측은 이에 대해 “송씨 등은 통용파(구원파에서 제명된 그룹)의 리더로 처음엔 순수한 모금운동을 펴기도 했으나 나중엔 조직원들과 사업을 하면서 ‘살아 있는 예수 유사장의 하나님 사업을 돕기 위해 돈을 바치자’며 사채를 끌어모은 뒤 고소당한 사기꾼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관심이 집중되는 검찰 수사의 초점은 사기사건에서 밝혀질 ‘오대양사채 세모유입’부분이다. 이것이 오대양사건과 세모를 이어주는 이른바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검찰이 밝혀낸 부분은 ‘오대양 이전’에 그치고 있다. 박순자씨의 지시로 직원들에 의해 송재화씨에게 보내진 금액은 4억6천만원이며 그 시기는 83년부터 84년 4월까지라는 것이다. 검찰은 이 돈이 세모 유사장에게 전달됐다는 물증을 잡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83년부터 84년 4월까지의 송금시기는 박순자씨가 동생 박용준씨가 경영하는 미양코리아의 대전지사장을 할 때이며, 송씨도 통용파의 리더로 수십명의 신도와 함께 비슷한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송금된 돈이 어떤 목적으로 송씨에게 간 것이며, 송씨가 이 돈을 유사장에게 보냈을 경우 무슨 명목으로 어떻게 전달했고, 유사장은(변제할 의사없이) 얼마를 받아 편취했는가 등이 정확히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다음 (주)오대양이 설립된 84년 5월9일 이후, 즉 사건 직후엔 89억원, 현재는 1백78억원으로 추정되는 ‘진짜’ 오대양 사채가 얼마나 세모로 유입됐느냐가 또 밝혀져야 한다. 검찰은 오대양이 세모 전신인 무역업체 삼우트레이딩과 수입대행?봉제완 구매매 등의 거래관계를 가진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따른 거래액과 구별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지만, 사채 유입액을 어느 정도 잡아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오대양 집단변사 사건과 관련해 작성된 91년 7월10일자 경찰 보고자료는 당시 오대양 회사자금은 사채 89억, 은행대출금 5억, 사업 운영자금 17억 등 총 1백11억원이었으며 이 자금은 사채이자(69억) 회사 및 육아원시설비(10억) 회사운영 경비(32억) 등으로 지출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검찰의 자신감으로 보아 이번 재수사가 위의 지출내역을 “상당 부분 수정시키게 될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인 듯한데, 이 사채행방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32명 집단변사의 사인이 모든 사람의 촉각이 집중돼있는 이번 수사의 ‘대미’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밝혀지지 않으면 오대양 집단변사와 세모가 관련됐으리라는 데서 출발한 가설은 마무리를 짓지 못하게 돼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집단변사 사인을 동반자살로 결론 내린 경찰의 수사발표를 믿는 국민은 현재 많지않은 것 같다. 배후세력이 있다고 주장한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은 사체발견 현장 또는 다른 곳에서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고, 일부는 “타살이 틀림없다”고까지 확신하고 있다. 송재화씨는 영수증을 남기지 않았으나 박순자씨는 지급보증 어음 등 흔적을 남겨 사채의 비밀이 탄로날 것을 우려한 유사장쪽에 의해 제거됐을 것이라는 추리도 나오고 있다.

오대양 생존자 정밀 재조사해야
여기에서 중요한 단서로 지적되는 것이 변사현장에서 발견된 2개의 쪽지이다. “지금 삼우는 무척 고통을 받고 있답니다.(어제 용주 다녀감)”라는 쪽지가 그 하나이다. 이는 천장 아래서 바깥 상황을 전달해준 김영자씨 또는 정화진씨가 올려보낸 것으로, 삼우트레이딩에 관계하던 박순자씨의 동생 용주씨(35)가 87년 8월 당시 삼우의 부도 위기를 전해주고 간 사실을 의미한다. 천장에 피신하고 있는 사람에게 전달할 만한 소식이었다면 삼우와 오대양은 결코 예사로운 관계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문제의 ‘개발비’단어가 든 쪽지이다. 당시 사망한 김명순씨가 마지막 날 쓴 것으로 경찰이 확인한 이 쪽지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반대다 완전 도전이다/넘기면 개발비 불게 하는 거다/다  나를 팔았기 때문에 절대XX디디라/이미 의식 없으시다/네시간 전부터/다섯명 정도 갔다/너만이 깨므러면/오늘중으로/갈 것같다/처음계획하고 온거다(성령 인도로 OOO버터라 저만 버터라).” “오대양에서는 사채를 개발비로 불렀다”고 한 지난 번 자수자의 진술로 미루어 위 쪽지는 사채의 내역이 알려지는(불게 하는) 문제와 죽음이 큰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사채행방과 별개로 당시 변사현장 주변에 있었던 사람, 즉 박순자씨의 동생 용주씨와 남편 이기정씨, 그리고 쪽지를 쓴 김영자?정화진씨 등 생존자들만 다시 불러 정밀 재조사해도 세모(삼우)-오대양, 세모-집단변사와 관련된 의혹이 어느정도 풀릴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미 수차례 경찰의 조사를 받고 언론과 인터뷰도 한 이들 생존자의 과거 진술에서 ‘타살 가능성’은 언급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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