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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종교를 다루는 방식
[887호] 2006년 10월 18일 (수) 문학산(영화 평론가)

영화는 상품성과 작품성의 자웅동체다. 상품성은 이윤으로 보상하고 작품성은 평가로 지지한다. 좋은 영화의 기준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연출력과 연기력과 주제적 깊이에 집중된다. 걸작의 반열에 기입된 텍스트는 먼저 철학으로 승격되고 그 다음엔 종교로 숭배된다. 종교는 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봉이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경주 석굴암에 대해 ‘동양의 종교와 예술의 귀결이며, 그 시대의 살아있는 종교 그 자체’라고 극찬한 바 있다. 그는 석굴암이라는 조각품으로 예술이 도달할 꼭지점에 종교가 자리함을 검증한 것이다.

하지만 상품 가치를 우선한 상업영화는 종교를 불편해 하거나 대중성 침해 요소로 간주한다. 이런 연유로 종교 영화는 관객들의 비판적 지지와 제작자의 일관된 외면 속에서 명맥을 유지해왔다. 종교영화가 부진했던 또 다른 이유는 종교 단체의 엄숙주의 때문이다. 1980년대 임권택 감독이 준비하던 <비구니>는 여승의 이미지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제작 중단되었으며, 성철 스님의 일대기도 도중하차했다.

한국의 종교영화는 불교영화, 무속(巫俗) 신앙을 다룬 영화와 기독교영화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제작 편수는 불교영화가 압도적이다. 기독교영화를 가톨릭과 개신교로 나눠서 보면 거의 비슷한 수준의 제작 편수를 보인다.

종교를 소재로 한 영화의 흥행 성적은 고르지 않다.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임권택의 <만다라>(1981)와 코미디물인 <달마야 놀자>(2001)는 흥행 성공했으나, 불교와 가톨릭의 화해를 모색한 <보리울의 여름>(2003)과 <오세암>(1990)은 외면 받았다.

불교영화는 작품성과 흥행 양면에서 비교적 고른 지지를 받았다. 불교영화는 불교적인 삶의 존재방식과 구도과정에 카메라가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이런 주제는 영화의 작품성을 고양시키는데 기여하지만, 해석의 난해함으로 인해 관객을 제한하기도 한다.

불교영화는 윤용규의 <마음의 고향>(1949)으로부터 주경중의 <동승>(2003)에 이르기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다.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한 김기영의 <파계>(1974)와 장선우의 <화엄경>(1993)에서, 유신 때 국책영화로 제작된 안현철의 <사명당>(1963), 전조명의 <서산대사>(1972), 장일호의 <호국 팔만대장경>(1979) 등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보인다.

국책 불교영화는 호국불교를 전면에 내세웠다. 호국불교는 국가의 보호라는 이념 강화를 위해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내세운 불교관이다. 호국불교는 유신시대와 일제 강점기에 국가를 위한 영화 동원이라는 국책영화에 종교를 끌어들였다.

중국의 불교영화는 <소림사>와 <달마대사>로 요약되는, 대표적인 사찰 소림사와 대표적인 선승 달마조사에 집중되어 있다. 이에 비해 서구는 티벳 불교와 달라이 라마를 주목하였다. <티벳에서 보낸 7년>과 <쿤둔>은 이국적인 볼거리로서 달라이 라마와 티벳 불교 상품화의 구체적인 예이다.

이렇게 외국의 불교영화는 장르 혼성과 역사적 인물을 통해 대중적 친화력을 높였다. 지나친 대중성에 대한 고려는 불교 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지만 관객과의 소통에는 성공했다.

송해성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등장하는 모니카 수녀(윤여정 분)는 종교적 헌신성을 보여준다. 헌신적 이미지는 가톨릭 영화 이미지의 전형이다. 박철수의 <오세암>(1990)에서 보육원 수녀와 이민용의 <보리울의 여름>(2003)에서 바실라 수녀(신애)는 종교적 헌신성의 복사판이다.

개신교영화는 위선적 목회자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위선적 목회자는 박찬욱의 <친절한 금자씨>(2005)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단편영화인 이세련의 <짜라파파>는 기독교인들의 위선을 보다 구체적으로 공격한다.
모든 개신교를 다룬 영화가 비판적인 것은 아니다. 모친으로부터 ‘활동사진을 통해 복음을 전달하라’는 소임을 받았던 유현목은 <순교자>와 <사람의 아들>을 통해 신앙의 빛과 그늘을 보여준다. 모범적인 목회자를 주인공으로 한 <낮은 데로 임하소서>(1982)는 이장호 감독이 연출하여 대종상 작품상과 흥행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이장호 감독은 허병섭 목사의 영향으로 종교를 자신의 영화 속으로 수혈했다. <과부춤>(1983)과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는 그 실례다.

불교영화와 가톨릭영화가 헌신적 신앙인의 이미지를 드러냈다면 개신교영화는 위선적 목회자 이미지로 귀결되었다. 개신교는 영화 속의 부정적 목회자 이미지 해소라는 과제를 떠안게 된 셈이다. 최근 불교와 카톨릭 신도 수에 비해 감소세를 보인 개신교 입장에서는 더 더욱 부정적 목회자 이미지에 대한 성찰이 요구될 것 같다. 영화에서 의사는 청진기로, 교수는 도수 높은 안경으로 표상되는 것은 현실 이미지를 수용한 것이다. 개신교의 목회자가 희화화되는 문제를 사회적 편견으로 치부하는 것은 다소 안일하다. 부정적 이미지의 고착화는 영화 연구자에게는 흥미로운 사안이지만,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해야 할 개신교 입장에서 반성과 긴장이 요구되는 사항일 것이다.

한국영화는 불교영화의 보편적 수용과 기독교영화의 부분적 수용으로 귀결된다. 기독교영화에 대한 대중적 거리감은 두 가지 요인에서 기인한 것 같다. 하나는 서양 종교가 주는 문화적 거리감이며 다른 하나는 반기독교 영화에 대한 기독교 단체의 비판적 태도다. 해독의 난해함은 접근기회를 제한한다. 또한 <거짓말>사태와 <다빈치 코드>에 대한 기독교단체의 비판적 대응방식은 다수의 영화인과 20대 영화 매니아들의 등돌림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대중문화의 장에서 펼쳐지는 종교영화의 헤게모니가 실제 종교 활동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종교영화의 난해성과 위선적 목회자 이미지와 엄숙주의적 태도는 20대 주력 관객층의 종교에 대한 친화력 저해 요소임은 분명하다. 성서는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기록했으며 불경에도 남에게 베풀라고 권하고 있다.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준 영화에 대한 관대한 태도는 종교와 예술에 대한 신앙을 회복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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