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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난에서 조우한 공자와 생강차

대만 타이난에서 조우한 공자와 생강차

지난 8월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대만(타이완)에서 처음으로 건립된 타이난(臺南)은 대만 최초의 수도였다. 타이완이라는 지명도 타이난 해안지역에 거주하던 원주민, 타이워완(臺窩灣)족과 그들이 살던 커다란 만을 지칭하던 대완(大灣) 또는 대위안(大員)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대만을 이주(夷州)로 기록했다. 한족이 이주했다는 첫 기록은 ‘진시황이 원하는 불로초를 구하지 못하고 실패한 서복(徐福)이 죽음을 피해 이주에 정착했다’는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에 나오는 사례가 처음이다. 

2018.11.15 목 서영수 차(茶) 칼럼니스트

한국인들 발길 많이 안 닿은 대만의 진주 같은 관광지

한국인들 발길 많이 안 닿은 대만의 진주 같은 관광지

지난 여름 대만을 다녀왔다. 대만은 해마다 100만명 넘는 한국인들이 다녀가는 곳이다. 대만은 음식이 맛있고 거리가 깔끔하고 전체적으로 가성비가 좋다. 대만 하면 타이베이(臺北)와 고궁박물원, 단수이(淡水), 지우펀(九分), 예류(野柳), 스펀(十分), 중동부의 화롄(花蓮) 정도가 떠오르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대만은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은 나라다. 아직 한국인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에 진주 같은 관광지가 널려 있다. 나는 대만 서부 해안선을 따라 남하했다. 타이중(臺中), 타이난(臺南), 가오슝(高雄)은 대만 서부 지역의

2018.09.22 토 대만 = 박영철 기자

대만의 고도(古都), 타이난을 가다

대만의 고도(古都), 타이난을 가다

지난해 대만의 한국인 관광객이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관광객 대부분은 대만의 수도인 타이베이에 머무르는 데 그치고 있다. 대만 교통부 관광국 관계자는 “지난해 한국인 관광객 수가 크게 늘었다. 2016년과 비교했을 때 20%가 늘어난 수치”라면서도 “전체 관광객을 10으로 봤을 때 7에 가까운 관광객이 타이베이에 몰려 있다. 관광객들에게 지방을 알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밝혔다. 대만 관광국이 자신 있게 추천하는 곳 중 하나가 대만 남쪽에 위치한 타이난(臺南)이다. 타이난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한국의 경주’라고 할

2018.09.11 화 조해수 기자

‘풀뿌리 혁명’뒤에 운명의 두 여인 있었다

‘풀뿌리 혁명’뒤에 운명의 두 여인 있었다

타이완 역사를 바꾼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의 정치적 성공은 두 여인과의 숙명적인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한 여인은 인간 천수이볜의 인성(人性) 형성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또 한 여인은 그가 정치에 입문하는 계기를 제공했고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천수이볜은 남부 타이난(臺南) 현사탕수수밭 노동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네에서는 그를 아벤이라고 불렀다. 일자무식이고 가난한 아버지는 공부 잘하는 아벤을 수도 타이베이에 사는 동생 집으로 보내 대학에 다니게 했다. 동생 집도 찢어지게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2000.04.06 목 타이베이 김진화 편집위원

[초점]대만의 선거 혁명 현장 리포트

[초점]대만의 선거 혁명 현장 리포트

“천수이볜 총통만세! 우리는 해냈다! 천총통 만세!" 어떻게 54년 동안이나 참아왔던 것일까. 3월18일 개표 시작 3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타이베이 시민들은 손에 손에 깃발과 폭죽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들은 천수이볜 새 총통의 이름을 연호하며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대만을 통치해온 국민당 정권이 침몰하는 동시에 아시아에서 또 하나의 독재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은 국제팀 김진화 편집위원과 사진부 안희태 기자를 현지에 급파해 대만에서 정권이 교체되는 생생하고 숨가쁜 상황을 취재했다.“천수이볜(陳水扁

2000.03.30 목 타이베이/글ㆍ金鎭華 편집위원 사진ㆍ安熙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