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창간 10주년 맞은 김종철 교수
  • 대구·이문재 편집위원 (moon@e-sisa.co.kr)
  • 승인 2001.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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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꾼 경제학자를 기다린다"
창간 10주년 기념호에 쓸 머리말을 수상 소감에 먼저 쓰게 되었다. "이 잡지를 통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라는 뚜렷한 설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세상 돌아가는 형편이 하도 답답하고 기가 막혀서, 스스로의 무능력을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시작했던 일이었다." 최근 제4회 교보환경문화상 대상(환경언론 부문)을 수상한 녹색평론사 발행인 김종철 교수(영남대·영문학)는 "그 사이에 어질고 순결한 영혼을 만나게 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김종철 교수는 <녹색평론> 창간 10주년을 앞두고 제 4회 교보 환경문화상 대상을 수상했다. 김교수는 격월간지와 단행본을 발간하며 우리시대에 가장 근복적이고도 새로운 생태주의 담론을 형성해 왔다.


지난 10월 그믐날,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 수성경찰서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녹색평론〉 편집실은 창간 10주년 기념호 마감이 한창이었다. 아크릴 칠판에는 박병상·권정생·나희덕 씨 등 낯익은 필자들의 원고 장수가 적혀 있었다. 오후 2시, 편집실로 출근한 발행인 겸 편집인 김종철 교수는, 호랑이 등에 탄 놈처럼, 이제는 그만둘래야 그만둘 수가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당초에 두어 권 내면 누군가 자극을 받아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10년 전, 당시만 해도 환경 관련 매체는 전무했다. 불씨만 지펴놓고 뒤로 물러날 심산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인수'하기는커녕,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했다. 〈오래된 미래〉와 같은 단행본을 펴내는 한편, 자생적으로 조직·운영되는 '녹색평론 독자모임'(현재 전국에 열한 군데)과 연계하면서, 지역 환경단체와 손잡고 매달 '생명 문화 아카데미'를 열고 있다.


'열혈 독자' 많고 전염성 강한 매체




〈녹색평론〉은 생태환경 전문지이지만, 의외로 폭넓은 독자층을 형성해 왔다. 문인·예술가·학자를 비롯해 전문직 종사자·가정 주부·농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현재 발행 부수 8천 부. 이 가운데 6천 부가 정기 구독이다. 결코 많은 부수는 아니지만 그 영향력은 일간지나 방송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녹색평론〉에 실린 최신 이론이나 그 실천 사례들이 열혈 독자의 글과 입으로 전파되었다. 뿐만 아니다. 녹색평론사가 펴내는 잡지와 단행본을 보고 '땅에 뿌리 박은 삶'을 실천하기 위해 도시를 떠난 독자도 제법 있다. 한마디로 전염성이 아주 강한 매체다.


〈녹색평론〉 지면에서는 거의 매호 전투가 벌어졌다. 산업 문명을 옹호하고 과학기술주의를 지지하는 쪽에서 보면, 녹색평론사와 김종철 교수는 '하찮은 게릴라'였지만, 게릴라 자신에게는 언제나 전면전이었다. 지금은 편집실이 어엿하지만, 초창기 몇 년 동안은 번역에서 원고 청탁, 교정까지 김종철 교수 혼자 도맡아야 했다. 건강까지 나빠져 있던 시절이었다. 김교수는 "안동에 사는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 같은 분이 없었다면 중도 하차했을지도 모른다. 권선생은 당신이 다른 곳에서 받은 원고료를 보내주시며, 잡지 만드는 데 보태 쓰라고 하셨다"라고 말했다.


창간 10주년 기념호 특집은 지역운동을 점검하는 데 비중을 두었다. 녹색평론사가 지향해온 소규모 지역 공동체 문화의 현주소를 짚고, 그 미래를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우선 생활협동조합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실무자들이 구체적 문제점을 토로하는 좌담회를 가졌고, 인천과 안산 지역에서 움트고 있는 지역 의료 생협 현장을 취재했다. 그리고 지역 문화 견인차인 지역 언론 성공 사례 등이 창간호 지면을 풍성하게 한다.




1983년, 목이 아프지 않았다면 김교수는 지금 영향력 있는 문학 평론가로 이름이 더 알려져 있을 것이다. 담배를 많이 피울 때였는데, 어느 날 목 부근에 통증이 왔다. 병원에 가서 두 차례나 검사를 받았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1년 뒤, 영 편치를 않아서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의 답변은 그대로였다. 김교수는 "내가 갑상선이 어떠냐고 물어보지 않았다면 또 그냥 넘어갈 뻔 했다"라고 말했다. 1985년 갑상선 절제 수술을 받으며,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환경에 대한 막연한 위기 의식은 1970년대부터 움텄으나, 1980년대라는 시대 상황에서 환경 문제는 '한가한 소리'였다. 갑상선 수술 이후 건강이 회복되지 않아 자연요법으로 섭생을 했는데, 그때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 있던 '아픈 몸'이 환경 문제를 발견한 것이다. 그후 〈작은 것이 아름답다〉와 같은 관련 서적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김교수는 절박했다. 천 년 뒤 인류의 미래가 아니었다. 당장 우리 2∼3세의 생존이 염려되는 것이었다. 삶의 모든 토대가 무너지는데 문학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김교수는 "인간으로서 내 자신의 삶을 의미화하고 싶었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삶, 인간으로서 품위 있는 삶을 모색하고 싶었다. 그것이 〈녹색평론〉이었다"라고 말했다.


다시, 아니 언제나 문제는 실천(리얼리즘)이다. 물과 공기가 오염되고, 숲이 사막화하고, 마음놓고 먹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이제 거의 없다. 그런데도 왜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일까. 김종철 교수는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하나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개인적 자각이다. 전체와 부분이 동시에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철 교수는 환경 근본주의자처럼 보이지만, 실천 차원에서는 그렇지 않다. 인간의 나약함과 간사함을 이해한다. 개인이 문명이 제공하는 편의를 거부하고 금욕주의자가 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김교수는 "이론과 윤리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경제 시스템이 변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전체적인 시스템이 변해야, 평범한 개인들이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생태적 삶의 방식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경제 시스템을 바꾸는 동력은 경제학자의 상상력에서 나와야 한다"라고 말한다. 생태적 이론과 상상력, 개혁 의지를 가진 경제학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등장한다면, 분위기가 급변한다는 것이다. 성장제일주의·수출지상주의의 한계를 자각하는 경제학자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하지만 이야기 마당이 없다. 새로운 논의틀이 세워진다면, 경제학은 마침내 미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김교수는 희망한다. 생태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싸움꾼 경제학자'를 김교수는 학수고대한다.


새로운 경제학이 공론화하는 동안, 개인들은 '이 세계에서 인간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생명과 인간, 우주와 인간과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다시 설정되는 것이다. 김교수는 새 삶의 모델을 노자와 불교 사상, 간디의 비폭력과 북미 인디언의 전통적 삶에서 찾는다. 그것은 농업 중심의 자치적 공동체이고,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한 삶'이다.


김교수는 자신의 에세이집 〈간디의 물레〉에서 이렇게 썼다. '간디는 언젠가 인간의 탐욕으로는 이 세상이 매우 궁핍한 곳일 수밖에 없지만, 인간의 필요를 위해서는 이 세상이 더없이 풍요한 곳이라고 말했다'. 녹색평론사는 김종철 교수가 돌리고 있는 '간디의 물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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