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노무현 고문
  • 이숙이 기자 (sookyi@e-sisa.co.kr)
  • 승인 2001.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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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고문측, 내가 탈당하길 바란다"
노무현 고문이 사면초가다. 신승남 검찰총장 사퇴를 주장했다가 당으로부터 경고를 받았고, 개혁주자 연대론은 별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쇄신 이미지를 퇴색시키면서까지 매달린 동교동 중립화 작전이 무산되고, 지지율도 답보 상태다. 하지만 11월23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씩씩했다. 검찰총장이 왜 물러나야 하는지 조목조목 설명한 그는 한광옥 대표에게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권노갑 전 고문을 비롯한 동교동 구파에도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다.




신승남 검찰총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가 무엇인가?


옷 로비 사건 때 보니 국민 감정은 논리가 아니더라. 당시 대통령께서 '뚜렷한 증거 없이 검찰총장을 몰아붙이는 것은 마녀사냥'이라고 했다가 상황이 아주 나빠졌다. 그런데 몇 달 전 신총장 동생 얘기가 나오자 또다시 민심은 의혹으로 휩쓸려 갔다. 그래서 검찰총장이 적절한 시기에 스스로 사임하지 않으면 정부에 큰 부담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민주당은 쇄신의 흐름을 타고 있다. 그런데 탄핵 공방이라는 악재가 이런 희망 만들기를 덮어버리고 있다. 현재 국회 구조로 보아 이 문제를 오래 끌 경우 민주당은 명분도 얻지 못하고 검찰총장을 지켜내지도 못한다.


"한광옥 권한대행이 나를 상대로 군기를 잡고 싶어하는 모양인데, 많이 참고 있다."


방법이 세련되지 못한 것 아닌가? 조용히 지도부에 건의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이 그렇게 민감하게 대응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그동안 당 안에서 딴소리 나온 적이 한두 번인가? 주 5일 근무제나 언론사 세무 조사 등 핵심 정책에 대해 딴소리가 나왔을 때는 가만히 있더니…. 아마 한광옥 권한대행이 나를 상대로 군기를 잡고 싶어하는 모양인데, 많이 참고 있다.


신 건 국정원장도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가 번복했는데, 어찌 된 일인가?


그건 내 실수다. 기자들이 신원장에 대해 묻기에 '그분이 뭐 잘못한 거 있나. 하지만 이런 판에 견디기 어려울 거다'라고 했는데, 그건 잘못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이렇게 흔들어대면 힘들 것이라는 의미였다. 나는 사실 한나라당이 겁난다. 저렇게 마구잡이로 권력을 휘둘러대고 있으니. 신원장에게는 개인적으로 전화해 사과했다.


이번 발언을 계기로 '노무현은 역시 불안정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그 주장이 안정감 문제로까지 비화하면 곤란해진다. 검찰은 근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지금 안정을 따지기보다 검찰의 잘못으로 정권이 흔들리는 것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신총장이 있으면 검찰이 제대로 일할 수 있겠는가?


노고문이 주장해온 연대 논의가 시들하다. 이인제 대세론에 힘만 실어주는 것 아닌가?


시들만 하지 아예 물 건너간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너무 일찍 제의한 것 같다.


연대의 주요 축인 한화갑 고문은 끝까지 가겠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얼마 전 한고문을 만난 것은 대권 선언이 전략적 포석인지 아닌지 진의를 알고 싶어서였는데, 끝까지 갈 모양이다. 한고문이 끝까지 가는 것이 반드시 해롭지만은 않다는 생각이다. 1차 투표까지 같이 가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김근태 고문과의 연대 논의는 어디까지 진행되었나?


'연대한다'는 큰 원칙에는 합의했다. 며칠 전 김고문을 만나 연대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기가 됐나 안 됐나 확인했는데, 김고문은 아직 멀었다는 쪽이고 나는 급하다는 쪽이어서, 아예 개혁 그룹에 결정을 맡기기로 했다. 김근태·노무현의 연대 시기·절차·기준에 대해 개혁 그룹이 결정을 내리면 따를 것이다.


"언론이 아니라 저격수인 <조선일보>를 적법하게 '응징'하겠다는데 무엇이 편협한가?"


김근태 고문에게 양보할 수도 있나?


그렇게 결정이 나면 따르겠다.


왜 대권을 위한 연대에만 집착하고 쇄신을 화두로 한 연대에는 소극적인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제도 쇄신은 10·25 재·보선 전에 이미 내가 제안한 것이다. 그런데 인적 쇄신이 먼저 불거져 나오는 바람에 내가 마치 쇄신에 반대하는 사람처럼 비치고 있다. 나는 권노갑 고문과 박지원 수석을 겨냥한 인적 쇄신은 야박하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순순히 희생양이 되겠다고 나서지 않는 한 그 화살은 다 대통령에게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동교동계가 막후 정치를 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는가?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막후 정치는 과거 정권부터 해오던 것이고, 그 강도는 예전보다 크게 줄었다. (동교동이) 한국 정치사의 마지막 막후 세력이 될 텐데, 그것만 가지고 증거 없이 사람을 찍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노고문이 두 사람을 옹호한 것을 두고 동교동 구파에 대한 구애라는 시각이 있다.


허참. 나는 과거 10년간 한번도 동교동과 한편이 된 적이 없다. 하지만 같은 당을 했고 정권 창출을 같이 이룬 신의는 있다. 그래, 노무현이 동교동 눈치 한번 살폈다 치자. 그럼 어디 한번이라도 동교동 눈치 안 본 사람 있으면 나한테 돌을 던지라고 해라.


최근 갑자기 '동교동은 내 편이 아니다'라고 한 이유가 궁금하다. 근거가 있나?


지금도 권고문 수하들이 이인제 지지를 떠들고 다니지 않는가? 지난번 권고문을 찾아가 본선 경쟁력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 달라, 경선을 공정하게 치르게 해 달라는 얘기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겠다고 해놓고 달라졌다.


수하라면, 이훈평 의원 등을 얘기하는 건가?


(고개를 끄덕끄덕)


개인 자격으로 하는 얘기라던데…


아무리 그럴듯하게 얘기해도 판단은 내가 한다. 그동안 그런 낌새가 있어도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표현을 안했는데, 이젠 공공연하게 편을 들고 다닌다.


어떤 증거가 있나?


그쪽 군사 중에는 사석에서 '노무현이 탈당해주면 좋겠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 그 논리는 곧 영남포위론이자, 영남배제론이다. 내가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불쾌했겠는가. 더 이상 부도덕한 행위를 하지 말고 '민주당은 국민 통합 정당'이라는 정강을 지켜 줬으면 좋겠다.


〈조선일보〉와 계속 각을 세우는 것을 두고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너무 편협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목소리를 높이며) 대통령은 밤낮없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저격범까지도 끌어안아야 하나? 〈조선일보〉는 언론이 아니라 저격수다. 내가 〈조선일보〉에 가서 불을 지르거나 테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적법하게 '응징'하겠다는 것인데, 무엇이 편협한가? 오히려 언론사 사주들에게 면회 못 가 미안하다는 메시지나 보내고, 한나라당처럼 〈조선일보〉가 주문하는 대로 정치하는 것이 비열하다.


국민 지지도가 답보 상태라 초조해진 것 아닌가?


최근 내 주장이 번번이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자 '노무현이 초조해져서 실수를 한다'는 얘기가 많더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지지도는 곧 올라갈 것이고 걱정 안 한다. 초조해 보인다니, 며칠 좀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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