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국민 경선’ 이인제 후보
  • 이문재 편집위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2.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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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마음만 보고 가겠다”
이인제 후보는 지난 3월31일 전북 익산에서 경선을 마치자마자 인천으로 이동했다. 인천 연수구에서 민박을 하며 지역 주민들과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눈 이후보는 이튿날인 4월1일 아침, 송도비치호텔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가졌다.

지난 3월25일부터 3일간 칩거하며 경선 포기를 검토하다가, 다시 경선에 참여하기로 한 이후보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경선 캠프를 해체하고, 자원봉사 조직을 동원하고 있다. 이후보는 익산 경선 결과에 고무되어 있었다. 노무현 후보의 호남 돌풍이 예고되었지만 개표 결과 ‘황금 분할’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세론이 통하던 때의 여유와는 다른, 어떤 결의가 엿보였다. ‘사면노가’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이후보는 이른바 ‘노풍’을 일시적 현상이라고 규정하면서, 특히 외부 세력 개입설(음모론)과 ‘국민의 힘’을 강조했다.

마산·익산 경선 결과를 어떻게 보는가?
지난 월·화·수 3일 동안 공백이 있어서 익산지구당 이외에는 다른 지구당을 한 군데도 방문하지 못했다. 그런 걸 감안하면 많은 지지를 보내주신 것이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른바 ‘노풍’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판단하는가?
그렇다. 이제 경쟁력이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노풍’이 왜 불었다고 생각하는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알 수 없다. 다만 우리 국민은 지난 4년 동안 구조 조정과 개혁의 진통을 겪으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같은 계층간 격차가 심해졌다. 그래서 서민과 중산층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회창 총재의 호화 빌라 사건이 자극적으로 폭로됨으로써,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던 사람들의 메마른 마음에 불이 붙은 것 같다. 노후보가 그 불길을 타고 있다고 본다.

경선 포기 검토 이후 전략이 많이 수정되었는데.
딱딱한 조직은 불필요한 경비가 들어가서 없앴고, 그야말로 자원봉사 체제로 전환했다. 지난 대선 때부터 열심히 지원해 주는 이른바 개미군단과 당의 뜻있는 동지들이 각자 자기 자리에서 알아서 도와주고 있다.

경선 캠프를 해체하면 집중력과 추진력이 크게 떨어질 텐데.
텔레비전 토론, 기자 회견, 현장 연설로 충분하다. 하여튼 국민의 마음 속에 나의 주장, 나의 정책과 비전을 말씀드리고 당당히 심판을 받겠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경선 포기 검토 때문에 일반 국민의 흥미가 식었다는 지적이 있다.
경선을 재미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차분한 가운데 이성적인 판단으로 국가를 경영할 인물이 누군가를 판단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내가 고민했던 이유도 과연 경선 과정이 자유롭고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느냐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자질과 비전과 역량을 부각하고 그것을 차분하게 판단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국민경선제를 반대하지 않았는가?
5만명 정도가 일시에 하자고 제안했었다. 왜냐하면 원래 대규모 경선은 1997년부터 당내에서 주장했고, 도지사 경선 때 현재와 같은 대규모 경선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미국식 예비선거제도가 그대로 들어왔을 때 당내 지역주의가 대두하게 될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그 우려가 현실로 많이 나타나고 있다.

경선 초기에는 대세론 때문에 무대응 전략으로 나왔는데.
그렇다. 나는 우리 후보들이 선의의 경쟁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유종근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가 나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1 대 5였다. 대응하기가 어려웠다.

이른바 ‘김심’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보는가?
김심이든 아니든, 국민 경선에는 권력의 의지나 외부 세력의 조직적 개입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그 권력의 의지나 외부 세력이 청와대인가?
그건 내가 알 수 없다. 내가 거명한 것도 아니다. 그런 소문이 파다하게 돌아다녔다. 앞으로 밝혀질 것이다.

참모들에 따르면, 거대한 음모가 있다는데.
수많은 설이 파다하게 퍼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정보기관이 아니어서 일일이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누구나 느낌이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 묻지 말라. 오히려 우리가 퍼뜨렸다고 덮어씌우는데, 음모를 꾸민 사람들이 가장 강하게 음모가 없다고 부정한다.

정치인이라면 자기 이해 관계에 따라 지원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국민의 뜻과 당원의 자유로운 판단에 위협을 줄 정도라면 안된다. 후보의 자질과 역량을 부각하는 노력은 당연하지만, 순리를 벗어나는 무언가가 만일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경선 초기에 후보들이 사퇴했는데, 그 배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알 수 없다. 사퇴한 후보 중 한 분은 권력 실세로부터 압력을 받았다고 기자들한테 밝히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 실세는 최근까지 만난 일이 없다고 부정하다가 유종근 지사 보좌관들이 성명서를 발표하니까 2월26일 밤 11시 반에 찾아간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제는 격려하러 갔다고 하는데, 밤 11시 반에 목발 짚고 격려하러 가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래도 누구 하나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 경선에 출마한 후보에게 경선을 도중에 포기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어디 있는가. 거기에 외압이 있었다면 중대한 문제다.

이런 분위기라면 이후보가 마지막까지 우위를 지킨다 해도 나중에 당 내에서 흔들 수도 있다는 예측이 가능하지 않은가?
그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하자. 나는 국민의 마음만 보고 가겠다.

이번 경선이 ‘거대한 시나리오’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라면, 이후보는 이길 수 없는 경선에 참여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여튼 가장 위대한 것은 국민의 힘이다. 두고 보자(이와 관련해 이후보의 한 측근은 “결국 당은 이념과 정책에 따라 분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측근 의원들이 불공정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후보에게 계속 경선에 참여하라고 권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스스로 판을 깨지 않고 경선에 계속 참여해 노후보와의 이념적 차별성을 집요하게 홍보한 뒤, 정치권이 색깔에 따라 헤쳐모일 ‘그때’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동서화합당’이라고 들어 보았는가?
영호남 화합당을 만든다고?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충청도, 경기도니까 거기 낄 필요가 없겠구만(웃음).

최근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총재를 상당 부분 앞섰는데.
일시적 현상이다. 주식 시장에서 회사의 실체는 변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주가가 폭등했다면, 배후에 뭐가 있는 것 아닌가. 각종 게이트가 바로 그런 것 아닌가. 그리고 그 주가는 때가 되면 다 빠지게 되어 있다. 지금은 국민들이 이성을 찾으면서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이회창 후보 지지율이 55%까지 올라갔다가 두 아들 병역 문제라는 검증에 걸리면서 10%대로 추락했다. 이번에도 호화 빌라 사건이 터지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한 인물의 역량과 비전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지 않은 지지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노풍’이 잦아든다면, 이후보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될 텐데, 그때 노후보가 이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와주리라고 보는가?
그런 강박 관념을 가지면 안된다. 경선 결과에는 누구나 승복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꼭 지원 유세에 쫓아다니는 것이 승복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면 안된다. 미국도 예비선거에서 후보가 되면, 그 후보의 비전과 정책을 가지고 그 팀들이 선거운동을 주도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자꾸 이상하게 생각한다. 경선 결과는 누구나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 후보 밑에 가서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 경선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비전과 자기 깃발을 가지고 정권을 만들어내야 한다.

대통령 선거는 당이 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당과 후보가 한다. 그러나 경쟁했던 후보는 누구나 자기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경선을 지켜 보는 국민 가운데에는 감정 싸움이 격해서 경선이 끝나면 갈라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누구나 당 안에서, 자기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꾸 일렬로 세우려 하면 안된다. 정당은 줄서기가 아니다. 조지 W. 부시가 후보가 되었을 때 매케인이 그 뒤를 따라다니면서 지원 유세를 했는가? 정치인은 다 자기 컬러와 비전이 있는 것이다.

요즘도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닮았다는 소리를 듣는가?
요즘은 그런 얘기 하는 사람 없다(웃음).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닮았다고 해서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다.

386세대에게 이후보가 어떻게 비치고 있다고 보는가?
글쎄, 내가 많이 보수화되었다고 들었다.

왜 그렇다고 보는가?
내가 튀는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세계 각국을 돌아보고 국내 민생 현장을 다니며 이 시대의 변화를 살폈다. 그러나 돌출적으로 튀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나는 항상 중심에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했다. 과거 노동부장관을 할 때나 경기도지사를 할 때에도 수많은 문제와 부딪치며 풀어나가고 개혁하고 새 일을 꾸려나갔지만, 나는 자랑하지 않았다. 나는 실천적·실용적인 개혁가이다.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사람이 아니다.

돈 안드는 경선으로 선회했다고 하지만, 일부에서는 훗날에 대비해 대세론이 통하던 시절에 모은 정치 자금을 잠근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치 자금 같은 것 없다. 과거에도 큰돈 쓴 적 없고 지금도 돈 없다. 돈과 나를 결부하지 말라. 가만히 보면, 상대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분들이 깨끗하다고 소리를 지른다. 나는 스스로 깨끗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나는 내 양심껏 티 한 점 없이 살아왔다.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공천 헌금이 들어오지 않았는가?
일전도 없다. 요구한 일도 없고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받을 수가 없고, 또 가져오는 사람도 없다. 돈에 관한 한 나는 당당하다. 그러나 내가 그런 것을 앞세우지 않는 것은, 내가 깨끗하다고 나서면 상대방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분들이 자기만 깨끗하다고 말하는 걸 보면, 환멸을 느낀다.

이후보를 ‘민주당에 와 있는 한나라당’이라고 지적하는 네티즌들이 있는데.
노후보가 제일 먼저 그런 얘기를 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가 최근 아주 좋은 말씀을 했다. 권영길 대표가 <말>지 3월호에, 노후보는 자기들하고 노선이 같으니까 빨리 탈당해서 민주노동당 예비 후보로 나오라고 했다. 내가 보기엔 민주노동당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노선을 갖고 있는 것이 노무현 후보다.

이번 주말 대구·인천·경북에서 경선이 이어지는데, 어떻게 임할 것인가?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는 이제 마음을 비우고 민주주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열의, 그리고 우리 당의 기본 노선인 중도개혁주의를 지켜가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나는 당연히 필승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승부에 집착하지 않고 그런 큰 가치를 위해 투쟁할 것이다. 반드시 결과적으로 승리할 것이다.


이인제 후보는 다음 일정 때문에 급히 자리를 떴다. 이후보 측근에 따르면, 이후보는 동교동 구파와 얽히면서 본 ‘피해’와, 이회창과 비슷한 귀족이라는 이미지를 씻어버리고, 본연의 정체성, 즉 서민과 중산층에 기반을 둔 젊고 당찬 지도자상을 구축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막 반환점을 돈 경선 정국이 4월로 접어들면서 한층 숨가빠지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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