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苦制苦 치료법’ 기막히네
  • 오윤현 (noma@sisapress.com)
  • 승인 2002.04.1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통을 고통으로 제거하는 ‘동종요법’ 각광…1년에 5억명 치료받아
대학생 유 아무개씨(22·울산)에게는 말 못할 고민이 있다. 생리통. 초경 때부터 아랫배와 골반 뼈가 빠져나갈 듯이 아프고, 간혹 구토까지 해서 생리가 악몽만큼이나 무서웠다. 당연히 용하다는 양방·한방 병원을 전전했으나 상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 바람에 얼마 전까지도 그녀는 ‘때’만 되면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요즘 그녀는 완전히 달라졌다. 때가 되어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다. 동종요법(同種療法)의 도움으로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차한방병원 대체의학센터 김영구 교수(방사선 전문의)는 동종요법을 ‘환자의 고통과 비슷한 고통을 인위적으로 유발해 병을 고치는 치료법’이라고 소개했다. 한마디로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제거하는 이고제고(以苦制苦) 치료법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감기에 걸린 환자는 콧물을 흘리며 연속해서 재채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콧물과 눈물을 나오게 하는 양파로 만든 약품을 이용하면 감기를 치료할 수 있다. 발진이 있는 피부병은 붉은 발진을 유발하는 겨자 가스(유독 물질)로 치료한다. 겨자 가스를 묽게 희석해서 알약이나 용액으로 섭취하면 신기하게도 피부병이 사라지는 것이다.




동종요법 약품 3천여 종…고름·종양도 사용


동종요법에서 쓰는 약품은 전세계적으로 3천 종이 넘는다. 형태는 알약·물약·연고·과립 등 다양하다. 이들 약품의 원료는 주로 할미꽃·측백나무·옻나무·야채 뿌리·뱀독·염분·씨앗·철·금·은·오징어 먹물 같은 동식물이나 광물에서 얻는다(앞에서 언급한 유 아무개씨는 할미꽃과 동물 젖으로 만든 약품의 도움을 받았다). 또 때에 따라서는 결핵 환자의 고름, 암 환자의 종양 같은 것을 약으로 쓰기도 한다. 더럽게 느껴지겠지만 아직까지 독성으로 인한 부작용이 보고된 예는 한번도 없었다.


자연에서 채취한 원료는 희석 과정을 거쳐 약품이 된다. 예컨대 양파로 약품을 만든다면 양파즙 한 방울에 물과 알코올을 섞은 용액 아흔아홉 방울을 섞는다. 그리고 그 용액 한 방울에 다시 물과 알코올을 섞은 용액을 아흔아홉 방울 섞는다. 이 과정을 수십∼수백 차례(많이 희석할수록 효과가 커진다) 반복하면 나중에 원액이 몇 십만·몇 백만 분의 1로 희석되는데, 이 용액이 바로 약품의 원료가 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흔들기이다. 김교수는 잘 흔들어 주어야 약효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처음에 섞은 약제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희석된 약이 어떻게 질병을 치료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사실 그 비밀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다(동종요법이 정식 의학이 아닌 대체 의학으로 분류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백여 년 전부터 동종요법을 널리 사용하고 있는 유럽에서조차 ‘약물에 내재한 에너지가 힘있게 흔들어주는 과정을 통해 증강하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추측할 뿐이다. 최근 ‘약제로부터 방사되는 전자파 형태의 에너지장에 특유의 정보가 실려 있으며, 이 정보가 희석제로 쓰이는 물과 알코올에 각인된다. 그 정보가 실린 물을 마시면 그 정보에 의해 인체의 에너지장이 교정되어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청진기·주사기 사용 안하고 대화로 진료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특히 과학자들은 동종요법이 터무니없는 치료법이라고 공격한다. 특정 증상을 유발하는 유독 물질이 오히려 특정 증상을 해결한다는 원리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또 농도를 묽게 하면 유독 물질 본래의 화학 작용을 담당하는 분자가 극미해서 신체 내에서 어떤 약리 작용도 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일부에서는 위약(플라시보) 효과가 아닌가 의심한다. 그러나 수많은 실험 결과 동종요법이 위약 효과보다 몇 배 더 많이 증상을 개선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동종요법은 암·심장병·고혈압·방광염·위장병·피로·생리증후군·두통·불안·우울증·잦은 감기·주의력 결핍 등 거의 모든 질병과 증세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이나 심리적 장애도 호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수술이 필요한 질병이나 골절, 선천성 질환에는 별 효과가 없다.


동종요법의 또 다른 특징은 신체의 질병은 물론 정신 질환까지 치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종요법의 진찰은 일반 병원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동종요법 의사는 청진기나 주사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정신과 의사처럼 환자의 사생활에 대해 시시콜콜 묻고 듣는다. 심지어 날씨나 기온에 따른 신체의 변화, 특별한 음식에 대한 반응까지 파악한다. 인천 길병원 동종요법 클리닉의 이성재 교수(심장 전문의)는 “환자의 몸과 마음의 고통스러운 사정을 잘 이해해야 그만큼 처방하기가 쉽다”라고 말했다. 진료 시간은 대략 1시간30분. 그래서 동종요법 의사들은 하루에 환자를 서너 명밖에 보지 못한다.


동종요법을 창시한 독일인 의사 한네만(1755∼1843)은 “병은 없다. 오로지 아픈 사람만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치료해야 할 대상이 병에 걸린 몸의 어떤 특정한 부분이 아니라,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임을 뜻한다. 따라서 동종요법에는 어떤 병에 맞는 특정한 약이 없다. 그 사람의 개인적 특성에 따라 그때그때 약이 처방된다. 즉 같은 고혈압 환자라도 환자에 따라 처방이 다 다른 것이다. 이런 이유로 동종요법이 환자의 아픈 부분만 치료하는 현대 의학의 대체 의학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세계에서 동종요법 치료를 받는 사람이 1년에 5억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한다. 특히 유럽과 남미 그리고 인도 사람들이 적극 활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국민의 40% 정도가 동종요법을 이용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기존 의사들의 견제로 1970년대부터 적극 보급되기 시작했다.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동종요법으로 환자를 진료하고 처방한 것은 1999년 8월 김영구 교수가 처음이었다.


현재 동종요법 클리닉을 운영하는 병원은 서울 강남의 차한방병원과 인천 길병원뿐이다. 길병원 이성재 교수는 “5월 말까지 진료 예약이 끝났다. 사람들의 관심이 그만큼 높다”라고 말했다. 두 병원은 동종요법 전문 강좌를 개설했거나, 개설할 예정이다. 차한방병원은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 동안 양·한방 의사·치과의사 들을 상대로 동종요법의 원리에서부터 임상 사례까지 강의하고 있다. 길병원은 오는 5월부터 6개월 과정으로 강의할 예정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