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가 먹는 맥주 맛 기막히네
  • 아산·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2.09.1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입에 딱 맞는 맥주 만드는 법/맥아즙 빨리 식히고 설탕 조금 넣어야
사람들 입맛이 까다로워지고 있다. 2백여 종의 수입 맥주가 쏟아져 들어오고 마이크로 브루어리(맥주집에서 직접 만드는 맥주)까지 생겨난 까닭이다. 홈브루(집 맥주)를 보급하려고 지난 2월에 문을 연 다음 카페의 ‘맥주 만들기’ 동호회 회원이 5천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맥주 박사’까지 탄생했다. 호서대 염행철 교수(46·생명공학)가 영국 양조연구소(IGB)와 양조협회(City and Guild)가 공동으로 실시하는 양조 기술 인증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염교수에 따르면, 영국 양조연구소와 양조협회는 세계적인 양조 기술 인증 기관이다. 시험은 보리의 싹 트기에서부터 완성된 맥주를 용기에 담기까지의 기술과 정보를 정확히 숙지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주관식 200개. 이번 시험에는 전세계 대형 맥주 공장의 팀 리더·매니저 등 전문 양조 기술자 1백70명이 응시했다. 합격자는 60여 명. 그들은 앞으로 영국 양조연구소 운영에 참여하고, 세계 어디에서나 ‘맥주 장인’ 대접을 받게 된다.


염교수와 맥주의 인연은 18년 전에 시작되었다. 미국 위스콘신 주 메디슨에 공부하러 갔다가, 근처 밀워키 브루어스의 소규모 맥주 시설을 둘러보면서 맥주 제조에 눈을 떴다. 그때 맛본 맥주는 모두 20여 가지. 그는 “맥주들 맛이 모두 다른 게 너무 신기했다”라고 회고했다. 미국 집 맥주 동호회에서 활동하던 그는, 1995년 한국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집 맥주 만들기를 시작했다. 전공과 맞물린 생화학·물리·미생물에 대한 지식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에게 집 맥주를 좀더 맛있고 좀더 신선하게 담가 먹는 법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일단 사람이 좋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 벌이기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유리하다. 거기에다 세심하고 예민한 사람이 더 맛있는 맥주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덧붙여 그는 맥주는 과학이라고 강조했다.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 화학·물리 원리들이 복잡하게 숨어 있는데, 그것을 꿰뚫어야 개성 있는 맥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 한국에 와서 그는 수입산 원액을 이용해 맥주를 담가 먹었다. 그러나 신선도가 떨어지는 수입산 원액으로 만든 맥주에 만족할 수 없었다. 다양하고 독특한 맛을 느끼고 싶었다. 그는 국산 맥주보리를 어렵게 구해 맥주를 만들어 보았다. 보리를 키우고 시간을 맞추는 일이 성가셨지만 수입산보다 훨씬 더 신선하고 맛이 좋았다. 요즘도 그는 시간이 나면 직접 맥주보리를 사다가 맥주를 담근다. 그럼, 이제부터 ‘맥주 박사’가 십수 년 간 갈고 다듬어온 집 맥주 담그는 기술을 배워보자.


구기자·오미자 넣어 독특한 작품 생산


집 맥주를 담그려면 우선 맥주보리 외에 호프·효모·물을 준비한다. 맥주의 맛은 바로 이 재료들을 어떻게 섞고 발효시키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재료는 되도록 신중하게 선택한다. 공정은 다른 술 담그기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먼저 맥주보리를 물에 담근다. 그리고 5∼6일 뒤 싹이 나오면 적당히 말리고, 그것을 약간 볶은 뒤에 분쇄한다. 이것을 뜨거운 물과 적당히 섞는다. 이때 곡물의 전분이 효소에 의해 당으로 전환하면서 맥아즙이 만들어진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식혜 만들기와 거의 비슷하다. 이후 공정도 어려운 일은 없다. 여과한 맥아즙을 끓이고, 거기에 맥주의 향신료라 할 수 있는 호프를 적당량 첨가하면 된다. 그리고 맥아즙을 재빨리 식힌다. 이때 가능한 한 빨리 식히는 것이 향미를 높이는 비결이다. 빨리 식히면 식힐수록 맥주 맛이 좋다. 상온 이하로 식힌 맥아즙을 발효조(통)에 붓는다. 그리고 거기에 효모를 첨가하면 1차 작업 이 끝난다(이때 구기자·오미자·생강 따위를 넣으면 독특한 맥주를 얻을 수 있다).


그 뒤 통 안에서는 효모 덕에 당분이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변하고, 맥아즙과 물은 점점 맥주가 되어 간다. 2차 작업은 1주일 정도 지나서 한다. 우선 숙성된 준(準)맥주를 깨끗이 씻은 유리병이나 페트병에 나누어 담는다. 병이 더러우면 잡균이 섞여 술맛이 시어지거나 변질될 수 있으므로 손과 병을 최대한 청결히 한다.


한 가지 더 참고할 것은 설탕이나 꿀을 한두 숟가락 첨가하면 알코올 도수가 올라간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알코올 도수를 높이겠다고 설탕을 많이 넣으면 효모가 죽어 술맛이 변하므로 최대한 자제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병을 밀봉하고 다시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난 다음 술병을 따면 드디어 나만의 맥주 맛을 음미할 수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술은 더 숙성되고 맛도 깊어진다.


맥주 만드는 현장을 직접 보면서 집 맥주 맛을 음미하고 싶었다. 염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양조실’로 안내했다. 멀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 질 좋은 떡갈나무 통에 든 묵은 맥주를 상상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대로 끝났다. 그가 안내한 양조실은 실험실 안에 있는 반 평 남짓한 창고였다. 그는 창고 문을 열며 “학생들 눈치 보며 맥주를 담가 먹고 있다”라고 말했다. 창고는 호밀이 든 자루와 술통 들이 널려 있어 복잡했다.


그가 보름 전쯤에 담갔다는 맥주 한 잔을 내밀었다. 술은 커피처럼 검었다. 그런데 거품이 안 보였다. “사흘 전쯤에 병을 개봉해서 그렇다. 그래도 맛은 기존 맥주보다 나을 것이다”라고 그가 설명했다. 한 모금 머금자 입안에 독특한 향이 가득 고였다. 약간 쓰면서 고소한 맛. 한 모금 삼키자 미세하게 보리 냄새가 느껴졌다. 지금까지 먹던 병맥주나 생맥주와는 확연히 달랐다. 별 다섯 개가 만점이면 ★★★☆(세 개 반) 정도.


벽장을 보니 알록달록한 상표가 붙은 깡통이 몇 개 보였다. 외국산 맥주 원액들이었다. 그는 시간이 없을 때에는 그것들로 맥주를 담가 먹는다고 밝혔다. “만드는 방법이 간편하고, 기술을 쉽게 익힐 수 있다”라며, 그는 초보자들에게 맥주 원액을 권했다(만드는 법은 85쪽 상자 기사 참조). 염교수는 이번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좀더 기술을 익혀 “세계가 알아주는 토종 맥주를 60 가지쯤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