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활짝 핀 북한 ‘통일의 꽃’
  • 부산·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2.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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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북한응원단 72시간 밀착 취재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던 10월3일 오전 11시10분. 부산 다대국제여객터미널(다대터미널) 주변에는 5백여 시민이 나와 있었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북한응원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9월28일 북한응원단 3백55명이 입항한 이래, 이제 다대터미널에서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다. 주말이면 더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더 별난 장면이 펼쳐진다. 경기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관중의 시선은 경기나 선수들이 아니라 늘 북한응원단에 닿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른 나라 임원들이 “이번 아시안게임은 북한(응원단)을 위한 것 같다”라고 푸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만경봉호가 트로이 목마라고?


일부에서는 만경봉호를 ‘트로이 목마’에 빗댄다. 만경봉호를 타고 온 미모의 북한응원단이 ‘북한에 대해 동경심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선한 것이라고 홀리게 될 때 미인계는 적중한다’(<○○일보>) 같은 논리의 비약도 보인다. 그렇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들을 긍정적으로 반기는 듯했다. 10월29일부터 매일 다대터미널에 나와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이희완씨(부산 다대포1동)는 “이들이 남북을 가깝게 이어주는 가교가 될 거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반 세기 동안 계속된 한반도의 냉전을 녹이는 데 일조하고, 부산 아시안게임의 최고 스타로 떠오른 북한응원단의 일상을 밀착 취재했다.
10월3일 오후 1시10분, 기자들이 버스에 오르는 북한응원단에게 달려들어 질문을 퍼붓는다. “시민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 “아무 말이라도 좋습니다.” “….” 10여 명의 단원은 방긋방긋 웃을 뿐 묵묵부답이다. 버스에 오른 한 단원에게 차창을 통해 이름을 묻자 명찰을 들어올린다.

리만선. 몇 살이냐고 묻자 스물다섯이라고 했다. 한 방송국 여기자가 자기와 동갑이라고 하자,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인다.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녀가 입 모양으로 “참·곱·습·니·다” 하고 말했다. 방송국 여기자가 머리에 노랑 물을 들인 한 총각을 가리키며 “이 총각 어떠냐?”라고 묻자,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가로저었다.


오후 2시20분, 남북한 남자 농구 경기가 열리는 금정체육관. 3시부터 경기가 시작되는데, 체육관 안에는 이미 2백여 명의 북한응원단이 와 있었다. 그들은 하얀 모자에 하얀 운동복 차림이었다. 가슴에 단 복권 만한 인공기와 우표 만한 김일성 배지가 눈에 띄었다. 북한 선수들이 소개되자 주걱같이 생긴 ‘딱딱이’를 요란하게 흔들며 우레 같은 함성을 지른다.


남북이 엎치락뒤치락하자 북한응원단은 환호하다가 의기소침하다가 자지러지다가 안타까워했다. 북한 팀이 앞서 나가자 딱딱이를 흔들며 ‘으싸! 으싸! 으싸…’를 연호한다. 이번에는 북한 팀의 힘이 달리자 “이겨라! 이겨라! 우리 선수 이겨라!” 하고 소리친다.

건너편 아리랑응원단이 ‘조∼국·통·일!’을 외치자 기다렸다는 듯 ‘조·국·통·일!’ ‘우·리는 하·나다!’를 외친다. 10여 차례 그렇게 외친 뒤 갑자기 북한응원단이 ‘조·국’까지만 외치고 일제히 남쪽 응원단을 쳐다본다. 남쪽 응원단에서 눈치를 채고 ‘통·일!’ 하고 대답하자, 이번에는 ‘우·리·는’을 선창한다. 또다시 남쪽 응원단에서 ‘하·나·다!’ 하고 응대하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10여 차례 ‘조국’과 ‘우리는’을 선창했다.


쉬는 시간에 무용수 리성애씨에게 “얼마나 연습했냐?”라고 묻자 그녀는 “연습 안했습니다”하고 맞받았다. “(응원) 도구는 몇 개나 준비했지요?” “보면 압니다.” “그러지 말고 정확하게 알려주시죠.” “셀 수 없습니다.” “남북이 함께 응원하니까 어떻습니까?” “통일이 된 것 같아 좋습니다.” 기자들이 계속 질문을 퍼붓자 그녀는 “고만 합시다. 경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고는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점수 차가 좁혀지자 북한응원단이 신명을 냈다. 응원가 <통일아리랑> <우리는 하나> 등을 부르며 인공기를 흔든다. 3m×1.5m쯤 되어 보이는 대형 인공기가 펄럭였다. 어느 순간 붉은 별이 그려진 인공기가 뒤에 선 경찰과 국정원 직원들의 머리와 옷깃을 스친다. 아무도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사실 체육관 안에서 인공기는 북한의 상징이 아니라 단순한 응원 도구처럼 보였다. 김종헌씨(38·부산 해운대구)는 “(인공기에 대해) 별 느낌이 없다. 지면이나 텔레비전에서 많이 보아 익숙해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경기가 끝날 때쯤 기자들이 임원으로 보이는 중년의 북한 남성에게 “왜 통일이 안된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노력이 부족해 그렇지.” 그는 자신들이 언론에 어떻게 비치는지 궁금했는지 “(기자) 여러분은 우리가 여기(남한에) 와 응원하는 걸 어케 생각하는가?” 하고 물었다. 한 기자가 뭐라 어물어물 대답했다. 그렇지만 그 말은 함성에 묻혀 잘 전달되지 않았다. 북한 남성이 귀를 기울여 다시 대답을 요구했지만, 더 이상 대화는 진행되지 않았다. 과연 그가 원했던 답은 무엇이었을까.


북한 국가 연주되자 눈물 글썽


경기장 바깥은 북한응원단을 기다리는 인파로 북적거렸다. 서장훈·김주성·이상민이 끼여 있는 ‘드림팀’을 기다리는 사람은 여고생 20여 명에 불과했다. 평소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북한응원단이 줄지어 나타나자 박수와 함께 환호가 터진다. 버스에 오른 리성애씨에게 창 밖에서 ‘저도 이산 가족, 아버지 고향 안변’이라고 써서 보여주자, 그녀가 측은한 눈길로 손을 흔든다. “몇 시에 잡니까?”라고 묻자 그녀가 손가락으로 12를 그려 보인다. ‘어디에서 왔습니까?’라고 써서 물으려는데 버스가 출발한다. 아쉬웠다. 그녀도 서운한지 고개를 돌려 손을 흔들었다.


10월4일 오후 2시10분 탁구 여자 단체전(준결승)이 열리는 울산 동천체육관은 비교적 한산했다. 북한응원단은 30여 명. 모두 정장 차림이었고, 머리와 얼굴에 한껏 멋을 냈다. 그들 가운데 예닐곱 명이 쉬는 시간을 이용해 화장실로 향하자, 경찰이 급하게 따라붙었다.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 밖에 남녀 관객 10여 명이 경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이 화장실 밖에 모습을 드러내자 관객들이 환호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북한응원단도 “반갑습니다” 하면서 갑자기 손을 쑥 내민다. 경찰과 국정원 직원 서너 명이 기겁을 하며 그들 틈으로 끼여든다. 정지. 모두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때 누군가 볼멘 소리로 말한다. “아니, 왜 악수도 못하게 하는 거야!” 경기장 안에서 ‘조선은 하나다!’ ‘통일 조국!’ 구호가 들려왔다.


저녁 7시10분, 세계 최강 중국과 북한 여자 축구팀이 맞붙는 창원종합운동장은 관중이 3천여 명에 불과했지만, 경기 전부터 뜨거웠다. 북한응원단이 대거 몰려온 것이다. 화려한 복장의 취주악대 100여 명이 분위기를 돋우었다. 7시17분, 북한 국가가 연주되었다. 기립해서 북한 국가를 듣는 몇몇 관중의 표정이 복잡해 보였다.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국가를 따라 부르는 북한응원단의 표정은 자못 감격스러워 보였다. 몇몇 단원의 눈에는 글썽글썽 눈물까지 비친다.





시퍼렇게 멍들도록 온몸으로 응원


저녁 8시4분, 휴식 시간에 종이 비행기가 경찰의 삼엄한 경비망을 뚫고 북한응원단의 맨 뒷줄에 떨어졌다. 지도원으로 보이는 한 북한 여성이 얼른 그것을 집어든다. 그와 동시에 국정원 직원이 그녀에게 달려간다. 국정원 직원이 달라고 손을 내밀자, 그녀는 종이 비행기를 구기며 고개를 젓는다. 짧은 승강이 끝에 두 사람이 구겨진 종이 비행기를 함께 펼쳐 글을 읽는다. 두 사람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옆에 서 있던 북한 남자 단원이 슬쩍 읽고는, 비행기가 날아온 뒤쪽을 쳐다보며 씩 웃는다. 국정원 직원에게 “무어라 써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물쩍거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나중에 북한 여성 지도원에게 물었더니 그녀가 말했다. “‘우리 힘으로 통일을 이루자’라고 써 있었습니다.”


북한응원단 곁에 앉은 창원 시민이 한 단원에게 질문을 했다. “북한에서는 헤딩을 무어라 합니까?” 북한 단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창원 시민이 머리로 공 받는 시늉을 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머리받기요.” “그럼, 코너킥은 뭐라고 해요?”라며 골대 옆을 가리키자, “구석볼차기요”라는 대답이 나온다. 한 50대 창원 시민은 북한응원단과 함께 응원하는 소감을 묻자 “감개무량하다. 그러나 부산이 6·25 때에도 인공기가 날리지 않았던 지역이라, 아이러니컬한 기분도 든다”라고 말했다.


10월5일 오후 2시30분, 버스 18대가 대기하고 있는 다대터미널 앞으로 북한응원단 2백여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다리고 있던 시민 천여 명이 박수와 환호로 그들을 반긴다. 그러나 북한응원단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1주일째 강행군. 지칠 때도 된 것 같았다. 몇몇 단원의 종아리에 시퍼런 자국까지 보인다. 자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바람에 멍이 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금세 펴졌다. 일부 시민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즉석에서 건네고, 휴대폰에 메시지를 띄워 보여주자 굳었던 얼굴에 배시시 웃음이 물린다.


밤 11시30분, 다대터미널 주변에는 보기 드물게 2천여 시민이 나와 있었다. 기다림에 지쳤는지 대부분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남자 축구 북한 대 쿠웨이트 경기를 응원하고 울산에서 돌아오는 북한응원단을 기다리는 인파였다. 11시56분, 누군가 “온다!” 하고 소리치자 여기저기에서 “온대” “온대” 하는 말이 들불처럼 번진다. 그러나 정작 인파 앞에 나타난 것은 방송국 차량. 사람들은 실망한 표정으로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0시6분 드디어 빨간 경보등을 켠 선도 차량이 나타나자 박수와 환호가 소낙비처럼 쏟아진다. 지친 얼굴로 차창에 기대고 있던 북한응원단이 몸을 추스르며 손을 흔든다. 몇몇 단원이 버스에서 내리며 아이들에게 과자를 건넸다. 북한응원단이 줄지어 만경봉92호 안으로 사라지자, 시민들이 발길을 돌렸다. 뜨거운 만남과 아쉬운 작별이 엇갈리는 부산에서의 ‘작은 통일’은 10월14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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