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인터뷰 노무현 후보
  • 대담:문정우 취재부장, 정리:안철흥 · 이숙이 기자 ()
  • 승인 2002.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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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절차 빠진 후보 단일화는 대단히 위험”
인터뷰 시간이 길지 못할 텐데 약속 시간 10분이 넘도록 노무현 후보가 나타나지 않아 초조했다. 측근들에게 묻자 ‘김원기 고문과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 날(10월28일) 오후에 있을 한국기자협회 초청 후보 토론회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노후보가 토론에는 선수라고 하지만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들에게 책을 자주 잡혀 강화 훈련을 하는 듯했다.

잠시 후 노후보는 김고문과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들어섰다. 김고문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가 배석했으면 좋겠는데, 안되겠지?”라고 묻고는 자리를 떴다. 노후보는 김고문이 ‘염려한 대로’ 인터뷰 내내 어떤 질문에든 돌아가는 법이 없었다. 참모들이 ‘제발 그만 끝내 달라’고 계속 쪽지를 들여보내는데도 모른 척하면서 묻고 싶은 것은 다 물어보았다.


요즘 분위기가 좀 좋아지는 것 같다.

어렵지만 희망이 제일 큰 밑천이다.


지지율 추이가 앞으로 어떻게 되리라고 보는가?

나는 결과를 사전에 예측하기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키는 가운데 새로운 희망이 생기고 죽었던 정치 생명도 되살아나곤 했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정치공학적인 표 계산을 하지 않는다. 대신 전체 시대의 흐름과 바닥을 흐르는 민심, 그런 걸 크게 짚어가며 살아왔고, 지금도 국민들은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고 있고 내가 지금 가는 방향이 그런 변화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다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정치공학적으로 표 계산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래도 당선 가능성이 있어야 부동표 등에도 영향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국민들이 누가 몇 표 있느냐는 복잡한 계산을 하지 말고, 누가 자기들을 위해줄 것인지, 자기들을 잘 섬길 것인지 그걸 제대로 골랐으면 좋겠다.



후원금 답지나 지지율 상승은 기존 지지자가 뭉쳤기 때문이지 새로운 지지층이 형성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언제나 정치 바람이 일어날 때는 기존 지지자로부터 일어난다. 기존 지지자가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면서 주변을 변화시켜 나가는 거다. 실제로 내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오늘 내가 몇 사람을 설득했다’ ‘이런저런 방향으로 설득하는 게 좋은 방법이더라’는 얘기가 올라와 있다. 그만큼 내 지지층은 무기력한 지지자가 아니라 적극적 지지자라는 얘기다.



노후보가 원칙과 정도를 강조하는 동안에도 정치권 이면에서는 그것과 상관없는 ‘음모론’이 나온다. 정몽준 후보에게 힘이 쏠리는 데에 뭔가 힘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데, 노후보도 같은 생각인가?

정치권에 음모는 항상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음모로는 민심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게 내 믿음이다.



정몽준 후보 배후에도 음모가 있다는 얘기인가?

그건 아니다. 민심이 움직이는 것을 음모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배후로 정균환 총무를 찍어서 말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것은 나를 흔드는 게 아주 조직적이라는 점을 지적한 거다. 음모라는 표현을 쓴 것은 아니다.



정총무가 중도개혁포럼 회장이자 범동교동계를 상징하는 측면이 있는데, 정총무와 이렇게 각을 세우는 이유가 있나?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가 이처럼 민심을 잃은 데에는 책임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지금 민주당에서 자꾸 주도권을 행사하려고 한다. 그런 차원에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자숙하라, 주도권을 행사하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은 시대를 거꾸로 가는 것이다’ 하는 점을 지적한 거다. 정치 개혁은 제도 개혁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사람, 특히 주도권이 바뀌는 게 중요하다.



한때 체중감량론을 내세우기도 했는데, 노후보에게 비우호적인 인사들은 차라리 탈당하기를 바라는 것 아닌가?

모든 것이 양면성이 있다. 내가 장기적으로 정치 세력 교체를 추구하고 있지만, 매번 하나하나의 사안에 관해서 사람을 밀어내는 것 같은 언행을 하는 것은 또 다른 비판이 따른다. 따라서 지금 누구를 나가라고 하는 것보다는 점차 당 주도 세력을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주류측에 주도권을 내놓으라고 하면 탈당하라는 얘기 아닌가?

나는 15년간 주도권을 갖지 못하고도 정치를 잘 해왔다. 김근태 고문이나 내가 언제 당의 주도권을 행사해 봤나? 비주류이든 중립권이든 그것도 수용해야지, 언제까지 자기들만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 그러면서 자기 혁신을 하고, 자기 혁신을 못하면 낙오해야 한다.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는 후보 단일화라는 게 중론이다.

나는 정치를 개혁하자는 사람이다. 그런데 정후보와 단일화하는 것은 원칙 없는 정치를 반복하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해서는 이기지도 못한다. 원칙 있는 단일화를 해야지, 원칙 없는 단일화를 해서는 이길 수 없다. 그리고 검증 절차 없이 단일화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거다. 지금 당장 주가 조작 같은 문제가 터져나오고 있잖은가? 이런 문제에 대한 검증 없이 단일화하라는 것은 정말 전략 없는 사람들 주장이다.



문제는 민심이 단일화를 원하고 있다는 건데.

민심으로만 따지면 나도 이미 대통령이 됐을거다(웃음). 민심이라는 것은 언제나 바뀌는 것 아닌가? 몰랐을 때와 알았을 때… 국무총리 세 사람 검증하면서 구 시대를 적당히 살아왔던 사람들의 문제가 국민들한테 실망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검증받은 국무총리 세 사람하고 지금 대통령 선거에 나와 있는 사람하고 비교해 보면 그들이 훨씬 더 깨끗하다. 국무총리는 그렇게 까다롭게 검증하고 그보다 훨씬 큰 의혹 덩어리를 가지고 있는 대통령 후보들은 제대로 검증하지 않는 걸 납득할 수 없다. 아직 50일간 검증 기간이 남아 있는데, 언론이 정말 확실하게 검증해야 한다.



노후보도 한때 정후보를 염두에 두고 경선하자고 한 적이 있었잖은가?

김근태 고문도 국민 경선을 통한 단일화를 주장하길래, 그 의견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참모들에게 검토해 보라고 했다. 상호 질문 20분 이상이 보장되는 토론 다섯 번 이상을 전제하고 국민 경선을 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느냐, 그리고 이런 조건을 놓고 하루 이틀 만에 (상대 후보와) 협상이 끝날 수 있겠느냐고 질문했다. 안 그러면 협상하느라고 오락가락하면서 판 다 깨져버리니까. 그랬더니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되지도 않을 일 가지고 괜히 국민들 어지럽게 하고, 자꾸 샅바잡기 할 필요가 있겠느냐 싶어 내부에서 한두 사람하고 얘기해 보다가 폐기했다.



단일화를 거부하는 데는 차라리 이회창 후보에게 내주는 게 낫지 정후보는 절대 안된다는 내부 판단이 작용한 것 아닌가?

이제 반DJ, 반창 이런 정치는 그만하자. 누구누구 반대하는 정치 그만하고, 누가 정치를 바로잡아 나갈 것이냐를 경쟁하는 쪽으로 하자. 그리고, 은폐 정치, 의혹 정치, 폭로 정치 이것 좀 끝내자. 끝내자면 다음 대통령은 무슨무슨 의혹을 안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세계 정치사에서 은폐와 음모가 없었던 적이 있었나?

그래도 시작할 때부터 이런 엉터리는 없었다. 시작할 때부터 이만한 의혹이 있으면서 지도자가 된 사람이 있나?



정후보의 주가조작 연루설이 터졌는데, 후보 자격에 문제가 된다고 보는가?

아주 중요한 문제다. 1천5백억원 부당 이득을 챙긴 사건인데, 사실이라면 범죄 행위 아닌가. 뻔한 얘긴데, 언제나 그랬듯이 힘센 사람들은 다 빠져나가고 하수인들만 감옥에 들어갔다. 매우 부도덕한 일이다.



이미 수사가 되었던 사안이다.

당사자가 이렇게 발설한 이상 다시 수사해야 하지 않겠나? 게다가 지금도 하수인이라는 사람이 현대중공업에서 일하고 있는 것 아닌가?



(병풍 당사자인) 김대업씨도 자수했는데 수사 안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많은 것을 덮어가면 다음 정부도 일 못한다. 이 정부가 대단히 잘못하고 있는 것은 이런저런 의혹 사건을 덮어두는 거다. 그러면 다음 정부가 어떻게 일하라는 건가?


검찰이 할 일을 안한다는 건가?

검찰의 행위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법무부장관·검찰총장은 구경만 하라고 만들어 놓은 자리가 아니고, 이런 문제에 대해 명쾌히 처리하라고 만들어 놓은 자리다. 그런데 지금 앉아서 오히려 거꾸로 가는 것 아닌가.


검찰도 죽을 지경일 거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번갈아 압력을 넣으니까….

주가 조작 문제도 배후설이 나오는데, 배후가 있고 없고 공작이 있고 없고 다 필요 없다. 사실대로만 가버리면 그만인데, 검찰이 왜 정치적이고 정책적인 판단을 하느냐는 거다. 사실만 밝히면 그만인데.



검찰의 병풍 수사 결과에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다고 보는가?

안 그러면 이렇게 수사할 수 있겠는가?


정후보가 끝까지 가리라고 보는가?

가봐야 알겠다.



일각에서는 정후보가 지지율이 꺾이면 다른 대안을 찾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대통령은 혼자 국정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고 같이 정치를 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현재 어떤 사람들이 주변에 있고 앞으로 어떤 사람들이 함께 할 것인지를 국민들이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대위 내부에도 천정배·신기남 의원 같은 급진 개혁파와 온건파 간에 개혁 수위나 방법을 놓고 논란이 있는 것 같다. 두 의원이 ‘탈레반’이라는 얘기까지 나오는데….

그 사람들이 급진적이라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과거 정치 체질에 너무 익숙해 있다. 과거 정치 체질에 익숙해 있는 관점에서는 그 사람들이 급진파이고 탈레반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헛말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느 사회에서나 앞서가는 사람이 있고 거기에 민심이 따라가고, 그 다음에 현상 유지하던 사람들이 민심을 보고 따라가는 것이 변화의 과정이다. 그래서 그 두 개를 갈라서 마치 대결적인 것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게 보면 정치가 발전하지 않는다.


개혁파 의원들을 만나보면 원칙과 명분을 가지고 끝까지 선거운동을 하면 져도 괜찮다는 말을 하는데.

그런 얘기는 금기다.



밖에서 보기에, 김근태 고문 같은 사람도 자기 편으로 만들지 못하고 어떻게 대통령이 되겠느냐는 의문이 있다.

김근태 고문은 개성이 강한 분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심복으로 만들지 못했잖은가. 다 걱정되니까 그러는 것이고, 전술상의 이견이 있을 수는 있는 것이다.



예전에 YS나 DJ는 밤중에 사람들을 찾아가 담판을 벌이곤 했다. 노후보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게 바로 옛날 보스 정치 스타일이다. 손잡고 무조건 도와줘 하는 식으로. 그런데 이제는 대화하고 토론하는 방법이 더 합리적인 정치 방법이라고 본다.



북한 핵문제가 터지자, 노후보한테는 왜 나쁜 일만 생기냐는 말이 나온다. 동의하는가?

나는 나쁜 일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정치 하는 사람은 어떤 일이라도 불리하다고 생각하기보다 그 상황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내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 북한 핵 문제를 잘 풀어내면 남북 관계나 북·미 관계까지 포괄적으로 해소할 수도 있지 않겠나.


이회창 후보 입장은 명확하다. 북한이 핵 포기를 선언하거나 사찰받지 않을 경우에는 남북 교류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그렇게 하면 상황이 대단히 악화한다.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 전체가 풀리지 않고 점점 더 불안과 긴장이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한국 경제가 무너질 수도 있다. 이쪽이 강경책을 쓰면 반드시 상대방도 강경책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쉽사리 굴복할 사람들이 아니다. 강경책끼리 맞부딪쳤을 때 북·미 관계나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로를 놓쳐버리는 거다. 다만 온건책이 나쁜 점이 하나 있긴 하다.

뭔가 대가를 주고 상대방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비싸다. 그런데 강경책을 쓰다가 실패했을 경우에는 그 대가가 훨씬 더 비싸다. 에이펙에서 한·미·일 정상이 합의한 것은 남북 관계와 북·일 관계를 잘 풀어서 이것을 통로로 활용하겠다는 것이고, 미국도 여기에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회창 후보는 미국보다도 더 강경하단 말이다. 무모한 모험주의자이다. 전쟁 위협을 너무 쉽게 생각한단 말이다.



한반도를 보는 시각과, 국제 문제를 보는 시각이 다 연동되어 있다고 보는데,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한 노후보의 생각은 무엇인가?

세계 질서가 일방적인 힘의 우위로 끌고 갈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어느 나라도 세계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다. 설사 또 미국이 세계 여론을 무시하고 가려고 하는 경우는 있겠지만, 그런 추세는 오래가지 못한다. 때문에 한국도 이런 문제를 단기적인 이해관계에서 보지 말고 멀리 내다보고 세계 여론으로부터 고립되지 않도록 입장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한국·칠레간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었다. 계속 이런 협상을 해나가야 한다는 입장이 있고, 농민단체는 반대하고 있다.

득이 있으니까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국내적으로 보면 이득이 있으면 손해 보는 쪽도 있고, 특히 포도 농가 같은 경우는 몹시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런데 이 점에 관해 충분한 조사가 부족하고 피해 농가에 대한 사후 대책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이번에라도 자유무역 추진과 이행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점들을 보완해 가는 법안을 만들어서 사후 대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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