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 장영희 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2.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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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자, 공직 사회 혁명적으로 바꿔라”
박용성 회장. 재계의 대표 격인 대한상공회의소(상의) 회장으로서 그는 올해 내내 정부와 노동·시민 단체에 ‘쓴소리’를 퍼부어 화제를 모았다. 이번에도 재계의 적들에 대한 그의 공격은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대선을 코앞에 둔 미묘한 시점인 데다 두 후보가 워낙 박빙으로 경합하는 탓일까. ‘욕 먹어도 할 소리는 한다’는 박회장도 지지 후보나 당선자를 언급하면서는 조심하는 기색을 보였다. 12월11일 상의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문초하라’며 입을 떼었다.






투표할 생각인가? 해외 출장 중인 재벌 회장이 많더라.


투표? 국민의 권리인데 왜 안하나. 요즘은 비자금 갖다주고 하는 거 없어져 편하다. 정치 하는 양반이 죽겠다며 도움을 청하면 계좌 번호 물어 돈을 주었다. 양당의 공식 후원회에도 갔었는데 야당 것도 텔레비전에 나오더라. 좋은 세상 된 것 아닌가. (양당에 얼마나 냈느냐고 묻자) 묻지 말라.


대통령 당선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업 하기 좋은 나라 만들어야 한다. 동북아 허브(중심) 어쩌고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되면 외국 기업들이 구름같이 몰려올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있던 외국 기업도 떠날 것이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란 무엇인가?


기업을 둘러싼 모든 환경, 법과 노동, 금융 여건을 자유롭게 해주어야 한다. 이중 삼중 사중 덮어씌우기 규제가 얼마나 많은가. 경제 위기가 다시 온다면 그것은 금융이나 외환 위기가 아니라 기업 위기다. 타이완은 기업의 5분의 1이 중국으로 도망가 산업 공동화 문제가 심각하다. 이렇게 되기 전에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어야 한다. 그래도 대기업은 버틸 여지가 있지만 중소기업은 없다. 우리 산업의 뿌리인 중소기업을 다 엑소더스(탈출)하게 만들면 어떻게 먹고 살 거냐. 역대 정권 가운데 규제 완화 얘기 안한 정권이 있었나. 당선자가 공직 사회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혁명적 생각이 없는 한 껍데기만 살짝 바꾸는 규제 완화가 되풀이될 것이다.


박용성의 정부 개편안이 있는가?


그동안 연구 기관들이 많이 연구했기 때문에 이미 정답을 갖고 있다. 문제는 당선자의 실행 의지다. 정부가 해야 할 일과 안해야 할 일을 분별해야 한다. 일을 줄이면 그에 알맞은 조직이 나올 것이고, 남는 사람을 정리하면 된다. 사람이 남아도니까 안해도 될 일을 주물러 터뜨리고 있다. 작고 강한 정부를 외쳤다가 늘 크고 힘없는 정부로 귀결되었다.


김대중 정부 5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해외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거시 경제 운용은 잘했다. 4대 개혁 과제 가운데는 기업과 금융 개혁은 성과가 높았는데 공공 부문과 노동 개혁은 지리멸렬했다. 30대 그룹 가운데 16개 그룹이 망했고 그 관련자들이 국립 호텔(감옥)에 가지 않았나. 그 많던 금융기관들도 상당히 정리되지 않았나. 그런데 공공과 노동 부문은 무엇이 달라졌나.


공기업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고 정리해고제가 도입되지 않았나.


민영화는 정부가 주식을 판 것일 뿐 개혁도 아니다. 정리해고제? 법 좀 읽어봐라. ‘경영상의 긴박한 사유’ 때문에 왕창 적자를 내고 기업이 망가져야 해고할 수 있다. 선제적으로 해고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사측 입맛대로 정리 해고를 할 수 있으면 악용될 것 아닌가. 박회장이 이끄는 두산중공업은 올해 내내 노사 갈등에 휩싸인 사업장 아니었나.


정리 해고 못하고 돈 주고 명예퇴직시켰다. 언론도 양비론으로 가지 마라. 47일 간의 파업이 왜 일어났는지 따져봐라. 금속노련이라는 상급 노조에서 기본 협약이라는 것을 들고와서 한 자도 못 고친다는데 내가 왜 서명하나. 정치 활동 하려면 민노당으로 가라. 두산중공업을 디딤돌로 삼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한다. 노조 말살 같은 갖은 악담에 화형식까지 당했다. 두산중공업 경영진은 잘못한 것 없다. 법대로 처리했다.


출자총액제나 집단소송제 같은 조처에 대해 전경련처럼 반대하는가?


일본에서도 집어치운 쓰레기 같은 출자총액제를 왜 주워다가 기업을 못살게 구는 거냐. 집단소송제도 미국에서 소송 남발로 원성이 드높은 제도다. 기업은 물론 소송을 낸 소액 주주들까지 이익이 없는, 오로지 상어 같은 변호사들에게만 좋은 제도를 강행하려는 저의가 뭐냐?


재벌 체제가 온존하기 때문에 여전히 이런 재벌 조처가 논의되는 것 아닌가. 지배 구조가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재벌 개혁이랍시고 무슨 제도 도입하려고 하지 말고 시장에 맡겨라. 왜 정부라는 보이는 손을 작동해 규제하려는 것이냐. 최근 몇 년 사이 많이 투명해지고 있지 않나. 어떻게 하루아침에 유리알처럼 맑아지나. 정경 유착이 여전하다고 하는데, 한보 정태수 회장 이래로 정말 의미 있는 건이 있었나. 다 조무래기 벤처 게이트 사건이다. 지배 구조도 외환 위기 이후 엄청나게 달라졌다. 외국인 주주 비율이 50%가 넘는 삼성전자와 포스코를 보자. 경영진이 잘못하면 당장 주가가 떨어지고 주주들이 경영진을 갈아치우려고 할 거다.


패밀리 비즈니스(가족 경영)는 필패하고 비즈니스 패밀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공허하게 들린다.


오너의 자식이라고 해서 능력이 안되는 사람이 경영하면 망하는 것을 뻔히 보지 않았나. 그래서 비즈니스 하는 패밀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경영 능력을 누가 평가하느냐가 중요한 것 아닌가?


그것은 밖에서 할 수 없다. 스스로 하든가 아버지가 하면 된다. 아버지가 보기에 넘겨줬다가 말아먹겠다 싶으면 이양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능력 안되는 오너 자식이 경영권 물려받으면 주가가 떨어질 거다. 가령 삼성 이재용 상무보가 안된다고 생각하면 외국인 투자가가 들고 나올 것인데 왜 걱정하나. 답답하다. 외부에서 이러쿵저러쿵할 필요없다.


박회장도 두 아들을 경영 수업 시키고 있던데, 결국 오너 자식들은 출발점이 다른 사람들 아닌가?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능력을 발휘하면 놔둘 것이다. 오너의 아들들이 빨리빨리 올라가는 것조차 무시하면 그것이 자본주의냐? 열심히 번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라고 하는데, 그러려면 왜 돈 버냐? 인간인 이상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이 본능이다. 유산 안 남기기 운동 하는 사람 치고 유산 있는 사람 없더라.


왜 기업인들이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고 보나?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고? 대학생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인물이 이건희 회장 아닌가. 씹으면 씹을수록 단물 나온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기업인을 못살게 굴고 못잡아 먹어서 안달하는 나라 치고 잘되는 곳이 있나 봐라. 옛날같이 임금 착취하고 세금 떼먹으면 모를까. 물론 기업을 풍비박산 내고 주식을 휴지조각 낸 기업인은 당해도 싸다. 하지만 투명성 높이고 지배 구조 개선하고 있는 기업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정치를 잘해서 언론이 잘해서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줄 아는가. 일등공신은 기업인들이다. 노사는 하나라는 소리도 그만 하자. 계약 관계일 뿐이다. 아직도 전태일 시대의 노사 관계 들먹이고 새마을운동 시절을 얘기하고 있다.


미국식도 일본식도 아닌 한국식 경영 모델을 수립할 때가 되지 않았나?


성과를 철저하게 따지고 현금 중시 경영을 하자는 것이 미국식이다. 채찍과 당근을 확실히 휘두르는 것이다. 엔론과 월드컴 사건이 있었지만 여전히 가장 기업 투명성이 높은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식을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한국식 하자고 설치면 또 나라 망친다.


최근의 반미 기류를 어떻게 생각하나?


두 소녀가 죽은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미국이나 한국이나 대처를 잘못해 일을 키웠다. 상당히 많은 물건을 미국에 팔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반미 반미 하다가 그쪽에서 반한 반한 하면 어쩔 거냐. 빨리 해결해야 한다.


참여연대가 제기한 두산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건에 대한 입장은?


(금감원이) 조사 중이니까 할 얘기 많지만 안하겠다. 시민단체도 할 일과 안할 일을 가려야지, 잘하는 기업 순서로 조지고 있다. 아무리 떠들어도 (CJ그룹) 이재현 회장처럼 사채 인수권 포기 안한다. 법대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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