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편의점 “변신은 무죄”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3.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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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위주에서 택배·공공요금 수납 대행까지…물류 유통 첨단 거점으로 떠올라
'밤의 구멍가게’로만 여겨지던 편의점이 달라지고 있다. 2002년 12월26일 낮. 서울 광화문에 있는 LG25는 한낮인데도 남녀노소 손님들로 붐볐다. 20여 분 사이에 찾아온 40여 명은 분주하게 자기 볼일을 보았다. 두 어린이는 컵 라면을 후루룩대며 먹었고, 긴 외투를 입은 젊은 여성 두 사람은 삼각김밥과 우유를 챙겼다. 남자 고등학생 셋은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빼냈고, 오리털 점퍼를 입은 한 여성은 포장된 물건을 맡기며 택배를 부탁했다. 짧은 시간 동안 편의점은 우체국·음식점·구멍가게·은행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편의점이 탈바꿈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89년 5월 국내에 첫선을 보인 뒤, 편의점은 거의 매달 ‘표정’을 바꾸어 왔다. 그 덕에 한국의 편의점 산업은 보기 드물게 급성장했다. 2002년 말 현재 전국의 편의점 수는 5천6백여 개. 한국편의점협회에 따르면, 이는 2002년(3천8백70개)보다 무려 50% 가까이 늘어난 수치로, 하루 5.4개꼴로 늘어났다. 매출액도 45% 가량 늘어나 2조6천5백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한국편의점협회 김점욱 전무에 따르면, 편의점 급증은 여러 의미를 띤다. 편의점이 100개 생길 때마다 새로운 일자리가 7백70개 생기고, 납품 업체가 한 개씩 늘어난다는 것이다.



편의점의 기본 상품은 업체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보통 1천5백 가지가 넘는다. 그 상품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왜 편의점 산업이 급성장하고, 21세기 물류 유통의 ‘첨단 기지’로 떠오르는지 알 수 있다. 포장 용기와 상품 크기가 그 어느 곳보다 빠르게 바뀌고, 상품 종류도 하루가 멀다고 바뀌고 있는 것이다. 훼미리마트 홍보과 서원덕 과장은 “주요 고객이 변화에 민감한 10∼20대 젊은층이다 보니, 잦은 변화로 그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LG25를 비롯한 몇몇 업체는 택배 서비스와 공공요금 수납 등을 통해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LG유통에 따르면, 편의점이 택배를 취급한 건수는 지난해 5월에 비해 열 배 이상 늘었다. LG유통 홍보팀 김일진씨는 “앞으로 편의점이 전자 상거래의 거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택배 서비스와 공공요금 수납, 다양한 자사 상표(PB) 상품이 급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동네 슈퍼마켓 문닫는 밤 12시 이후부터 ‘북적’



365일 밤낮 가리지 않고 영업하는 편의점의 특성상 주요 돈벌이는 역시 먹거리이다. 그러나 시간에 따라 상품의 ‘색깔’과 고객층이 다르다. 이른 아침에는 주로 출근길 직장인이 들러 우유나 즉석 식품, 샌드위치 등을 먹고, 낮 시간에는 학생·직장 여성 들이 찾아와 삼각김밥이나 용기 면을 주로 사간다. 더러 커피나 디저트 류를 사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골목마다 커피 테이크아웃점이 들어선 뒤로 서서히 줄어드는 추세이다.






위치에 따라 판매 상품과 손님이 달라지기도 한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편의점에는 외국인이 자주 드나들기 때문에 신라면·김·민속주·외국 맥주 같은 상품이 많이 나간다. 서울역 근처의 한 편의점에는 ‘뜨내기 손님’이 많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소주가 많이 팔린다. 점주 최 아무개씨(33)는 “여행객이 많은 주말이면 특히 술이 많이 팔린다”라고 말했다. 반면 주택가에 위치한 편의점에는 어깨 처진 가장, 택시 기사, 어린이 등 다양한 손님이 찾는다. 서울 중계동에 있는 세븐일레븐의 40대 점주는 “동네 슈퍼마켓이 문을 닫는 밤 12시부터 2시 사이에 특히 손님이 많다. 찾는 상품은 캔 맥주·신문·어묵·담배 등 다양하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2002년 한 해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은 무엇일까. 편의점 업체에 문의한 결과, 품목 별로는 역시 패스트푸드 음식이 가장 많이 팔렸다. 특히 삼각김밥(아래 상자 기사 참조)의 인기가 눈에 띈다. 1천4백3개 매장을 운영하는 훼미리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은 호빵·삼각김밥·컵라면·우유(바나나우유, 쵸코우유, 흰 우유 순)·포테토스틱·신라면 순이었다. 미니스톱은 2002년 11월 말 현재 삼각김밥·소주·맥주·호빵·바나나우유·용기 면 순으로 많이 팔았다.



바이더웨이도 별로 다르지 않다. 우유·과즙음료·캔 맥주·병 맥주·아이스크림·용기 면·스낵 종류·탄산음료·삼각김밥 순으로 많이 팔았다. 그러나 단품으로는 역시 삼각김밥을 제일 많이 팔았다. 바이더웨이 상품기획팀 함성근 과장은 “추워지면서 호빵 때문에 판매량이 조금 줄었지만, 삼각김밥의 인기는 여전하다”라고 말했다. LG25도 비슷한 판매 순위를 보였다.



2002년 편의점 상품 판매 동향에서 특기할 점은 즉석 건강 식품과 패스트푸드류가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현대인이 바빠지고 건강을 염려한다는 반증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이제 그 변화를 실감하려면 편의점에 한번 가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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