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음악 유통, 서광이 비친다
  • 곽동수 (한국 싸이버대학 교수) ()
  • 승인 2004.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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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품’ 노래 사이트 등장…네티즌 호의적 반응
올해로 데뷔 27년을 맞은 가수 인순이씨가 최근 16집 앨범 를 발표했다. 펑키와 트로트까지 다양한 장르를 담은 이 앨범의 또 다른 특징은 온라인으로 구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공식 홈페이지(www.insooni.com)에 접속하면 누구나 4천5백원에 앨범의 전곡을 구입할 수 있다. 벨 소리와 음악 메일도 함께 제공받는다.

지금까지 히트곡이나 싱글을 온라인으로 발표한 예는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가수가 자신의 앨범을 통째로 홈페이지에서 직접 내려받기 방식으로 판매한 예는 없다. 벨 소리 등을 함께 제공하는 것 역시 국내 최초다. 인순이씨의 새로운 시도는 불법 음악의 천국으로 여겨지던 국내 인터넷 시장이 바뀌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가수 인순이의 신곡 판매 실험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라며 정보화 선진국을 자부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온라인 음악 시장은 문제가 많았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자연스레 등장한 소리바다·벅스뮤직 등을 가만 놓아둘 수 없다며 음악업계는 전면전을 벌였고, 이는 ‘MP3 휴대전화 싸움’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결과 가수들이 통신회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이같은 ‘불법 음악과의 전쟁’이 2년 넘게 계속되었지만, 오히려 소비자들의 반감만 불러일으켰을 뿐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데는 실패했다.

물론 그 여파가 없지는 않았다. 소리바다가 새로운 서비스를 내세우며 변신하고 있고, 벅스뮤직은 유료화를 선언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불법 음악 유통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강력한 기능을 가진 파일 공유 서비스를 통해 필요한 음반을 온라인에서 내려받는 사용자가 많기 때문이다. 음반 업계는 네티즌이 달라져야 한다며 각성을 촉구한다. 그러나 별다른 대안이 없는 외침은 공허할 뿐이다. 다행히 온라인 음악 판매 서비스를 통해 디지털 음악을 구입하는 사용자가 조금씩 늘고 있다. 가수 인순이씨가 인터넷을 통해 신곡을 판매하는 ‘실험’은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디지털 음악 유통은 이제 막 시작되었지만, 한국과 유사한 상황이던 미국은 일찌감치 싸움 대신 현실적인 방법을 택했다. 2003년 4월28일, 미국 애플 사는 쉽고 빠르게 인터넷에서 음악을 구입할 수 있는 뮤직 스토어를 열었다. 5대 메이저 브랜드(BMG·EMI·소니·유니버설·워너브러더스)의 노래 20여만 곡을 쟁여놓고, 노래 한 곡에 99센트, 앨범 한 장에 9달러99센트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년 만에 7천만 곡이 팔렸다. 최근에는 영국·프랑스·독일에까지 온라인 뮤직 스토어를 열었는데 유럽 네티즌들의 반응이 제법 호의적이다.

그렇다면 구미의 가수와 음반 제작자 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뮤직 스토어 탄생 6개월을 기념해 2003년 10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플 사의 뮤직 이벤트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롤링스톤즈의 믹 재거가 영국 런던에서 축하 인사를 보냈고, U2의 보노는 더블린에서 화상 채팅을 통해 박수를 보냈다. 사라 맥라클란은 무대 위로 올라가 노래를 부르며 축하 자리를 빛냈다.
사이트 10여 개, 외국 수준에 한참 뒤져

애플 사가 디지털 음악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자사의 MP3 플레이어 아이팟이 효자 노릇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아이팟 성공에 자극을 받은 국내 업체가 있다. 미국에 아이팟이 있다면 국내에는 아이리버가 있다고 할 정도로 시장 점유율이 높은 아이리버는, 애플 사의 온라인 음반 정책을 벤치마킹한 뒤 블로그나 포토 슬라이드 쇼 같은 국내 네티즌의 성향을 가미한 음악 유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4월20일 문을 연 펀케익(funcake.com)은 디지털 싱글과 앨범을 구입할 수 있는 사이트인데, 코카콜라·의류 브랜드 EXR 등과 연계해 공동 마케팅을 진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이 사이트는 세븐·윤도현밴드·DJ DOC 같은 굵직한 가수들을 내세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또 다른 음악 유통 사이트 아이팝(ipop.co.kr)은 이효리·세븐·김진표 등 가수 11명의 미발표 곡을 담은 디지털 싱글을 내놓으며 네티즌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외에도 국내에는 10여 개의 디지털 음악 유통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 하지만 외국과 비교해 보면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순수한 음악 판매 사이트를 찾아보기 힘들다. 블로그나 파일 내려받기 같은 여러 가지 서비스를 혼용해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서비스의 양과 종류는 다양하지만, 막상 원하는 음악을 구입하기가 번거롭다. 게다가 여러 회사가 난립하다보니 구입하려는 가수의 앨범을 어느 사이트에서 판매하는지 일일이 찾아 다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저작권 보호와 관련된 장치도 불편하다. 불법 복제를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겠지만, 특정 MP3 플레이어와의 연계만 가능하도록 제한하지 않았는지 일일이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메이저 사이트는 아직 방향 못잡아

저작권 보호 표준 장치를 채택했지만 메이저 사이트들이 독자적인 방식을 선택해 호환성 면에서 많이 떨어진다. 자신의 MP3 플레이어에서 재생되지 않는 노래를 굳이 정품으로 구입할 사용자가 많지 않으리라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몇 년 전에도 이같은 사례가 있었다. 음반 제작사들이 제각기 온라인 사이트를 구축하고 판매에 나섰는데, 사용자들이 불편을 느껴 불법 음악 유통 쪽으로 눈을 돌렸던 것이다. 메이저 사이트들은 아직도 방향을 잡지 못한 듯하다.

컨소시엄 형태가 되었건 합작회사가 되었건, 음악 유통 사이트에 접속하면 국내에서 발매된 거의 모든 음악을 내려받아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받은 디지털 음악을 국내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MP3 플레이어에서 자유롭게 재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국내 음악산업도 회생할 수 있을 것이다. 조각조각 나뉜 채 고객 서비스를 하고 있는 모습은 안타까움 그 자체이다.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디지털 음반을 판매하는 인순이씨의 도전에 눈길이 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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