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주년 맞은 전윤철 감사원장
  • 장영희 전문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4.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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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안 고치면 못배기게 하겠다”
“일부 피감 기관들이 조직·인력 축소나 예산 감소를 걱정해 조직적으로 반발했는데, 기관 이기주의 차원의 저항에는 굴하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경호실과 대통령위원회에 대한 재무 감사를 곧 실시한다. 내년에는 처음으로 정당에 대한 감사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41년 역사상 감사원이 올해처럼 시끄러운 때가 있었을까. 지난해 11월10일 전윤철 전 부총리가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감사원은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전원장이 ‘시스템·정책 감사’를 화두로 감사원 혁신을 부르짖었기 때문이다. 1년 가까이 감사원이 터뜨리는 특감 결과에 언론과 일반인의 반향은 컸지만 피감 기관에서는 냉소나 부정적 평가가 없지 않았다. 시스템 감사나 정책을 평가할 역량이 안되는 감사원이 무리한 감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전원장은 1주일 만에 기각되기는 했지만 피감 기관에 의해 검찰에 고발까지 당했다. 이런 반발 기류에 대해 전원장은 시스템에 손을 대자 기관 이기주의가 발호했다고 일축하며 시스템 감사를 밀어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지방 공기업 경영혁신 실태, 국·공유지 관리 및 활용 실태, 국방연구개발·전략투자사업 실태, 교통·환경 등 4대 영향평가 개선 방안, 기업 민원 처리 실태 등에 대해 특감을 벌이고 있거나, 할 계획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감사원장회의에 참석하고 중국을 거쳐 막 귀국한 그를 10월27일 집무실에서 만났다.

취임 1주년이 되어 가는데, 소회가 궁금하다.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 없이 보냈다. 질풍노도 같은 한 해였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첫 감사원장으로서 ‘감사원이 변하면 공공 부문이 바뀌고, 공공 부문이 바뀌면 국가가 변한다’는 신념으로 공공 부문과 행정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 사건·건수 위주의 합법성 감사 방식에서 근원적인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정책·시스템 감사로 전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감사원의 국제 위상을 높인 것도 기억에 남는다. 한국은 세계감사원장회의(1백85개국)에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해당하는 재무행정위원회(7개국) 일원이 되었다. 회의를 마치고 중국에 들렀는데, 특히 상하이의 기세는 무서울 정도였다. 중국 얘기하면 열이 난다. 정부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시스템·정책 감사를 주창했는데, 지난 1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그동안 KBS 경영 실태·지방자치단체 기금 운용 실태·단체 수의 계약 등 공공구매 제도 운용 실태·국방 조달물자 계약 관리 실태·공항 확충 사업 추진 실태·금융 감독 특감·첨단 기술 중복 투자 실태 같은 시스템 감사를 해왔다. 감사 결과에 대한 후속 조처로 피감 기관들이 관련 법률을 제·개정하거나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국민들도 지지를 보냈다. 감사 방식을 대전환해 7백명의 감사관들이 몹시 힘들어했지만 차츰 자기가 한 일이 정책이나 국가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1년간 겨우 시스템 감사의 초석을 놓았지만, 2~3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 공공 부문 혁신에 상당한 성과를 내리라고 본다.

피감 기관의 반발과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반발하는 것을 이해한다. 문제 발생의 근본 원인을 찾아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시스템 감사는 회계 위주의 합법성 감사에 비해 파급 효과가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일부 피감 기관들은 조직·인력이 축소되거나 예산이 줄어들 것을 걱정해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원래 시스템을 손댄다는 것은 부처 이기주의를 자극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감사원 손길이 미치지 못했던 성역을 건드렸으니 기관 차원의 대항이 나오는 것이다. 좋은 예가 국방부 고등훈련기 특감이다. 그런데 피감 기관이 감사원법에 따라 이의 신청이나 재심 요구를 하는 것을 (언론이 감사원의) 영이 안선다고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감사원은 피감 기관들이 감사 결과를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각적으로 노력하겠지만 기관 이기주의 차원의 저항에는 굴하지 않을 것이다.

의욕 과잉 혹은 역량 시비가 나오는 밑바탕에는 시스템 감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 아닌가?

시스템 감사는 곧 평가 행위다. 감사원 소속 기관으로 ‘평가연구원’을 설치하는 조항을 담은 감사원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내년 4월쯤 평가연구원이 발족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 평가 인프라의 중추가 될 평가연구원은 시스템 감사에 필요한 조사·분석 업무를 수행한다. 평가 제도와 기법을 연구하고 평가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도 맡는다. 핵심 연구 인력 40명을 전원 외부에서 데려온다. 미국 회계감사원(GAO)도 벤치마킹하고 있는데 내년 초 15명을 파견해 실전 경험을 쌓게 할 계획이다.

감사 결과 이행 여부를 적극 챙기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입으로만 떠든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렇지 않다. 사무총장을 국무회의에, 제1사무차장을 차관회의에 배석시켜 감사 결과(시정·권고·통보) 추진 사항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기획예산처와 ‘감사결과 예산반영협의회’도 갖고 있다. 이행을 독려하는 ‘3개년 집중 관리제’도 도입한다. 피감 기관이 개선하지 않으면 못배기게 하겠다.

국감 등에서 금융감독 특감이 관료를 위한 특감이었다는 공격이 나왔다.

왜 장관들을 봐주었냐는 얘기 아니냐. 정부가 무분별한 카드 발급에 제동을 걸었어야 한다는 지적에는 공감하지만 규제를 확 풀어 카드 사용을 너무 촉진했다고 비난하기에는 당시 내수 경기가 너무 나빴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카드 대란은 카드 회사·이용자·정부라는 3자의 합작품이다. 정부에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금융감독 기능이 삼원화(재경부·금감위·금감원)해 있어 책임질 기관과 누구 잘못임을 딱 꼬집기 어려웠다. 금융감독 시스템을 바꾸는 데 감사의 초점을 둔 것도 감독의 효율성을 높이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리기 위해서다.

성역 없이 감사하겠다는 취임 초의 의지가 구현되고 있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11월 하순 청와대 비서실·경호실과 7개 대통령 위원회에 대한 재무 감사를 벌인다. 정책기획위원회 용역 비리 의혹 같은 불거진 현안들도 들여다보겠다. 국정원은 김선일씨 사건을 감사하면서 들여다본 셈이다. 또 국방부 재무 감사와 국방조달물자 계약관리 실태 감사를 벌였고 10월11일부터 국방부와 3군 본부를 대상으로 국방연구개발·전력투자사업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의 경우 각각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밀 사항과 기소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서는 감사할 수 없다.

바로 그런 조항 때문에 사실상 감사의 손길에서 벗어나 있지 않나. 또 하반기로 예정된 정당 감사는 손도 못대고 있지 않나?

그렇지 않다. 회계 감사는 철저히 하고 있다. 청와대도 2년마다 회계 감사를 받았다. 물론 국정원의 경우 예산을 총액으로 편성하고 1차 수령자에게 지급하면 사용 증빙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정기감사를 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정당 감사가 미뤄진 것은 올 3월 정치자금법이 대폭 개정되면서 선관위가 국고보조금 사용을 어떻게 모니터링할지 검토를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직접 정당을 감사할 수도 있지만, 일단 선관위가 방침을 정하면 우리도 감사 지침을 정할 것이다. 내년에는 가능하리라 보는데, 감사원 역사상 첫 정당 감사가 된다.

공기업이나 민간 기업이 유독 감사원 출신을 선호하던데, 사실상 낙하산 인사 아닌가?

재무제표를 읽는 능력과 풍부한 감사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퇴직 후 기업행이 어떻게 낙하산이냐. 대차대차표나 손익계산서도 못 읽는 사람들이 어떤 힘에 의해 떨어질 때 낙하산이지. 피감 기관에 감사원 출신 감사가 있으면 도덕적 해이나 봐주기가 있으리라고 보는 모양인데 어림도 없다. 혹여 감사원 출신을 앞세워 로비하려 들면 더 ‘조질’ 것이다. 기업이 감사원 출신을 선호하는 것은 그로 인해 내부 긴장도가 높아져 예방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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