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은 어떻게 관절염 치료하나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4.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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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독’의 멜리틴 성분이 염증 발생 억제…국내 연구팀이 세계 최초 규명
흔히 독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쓰기 나름이다. 최근 주름 제거와 경련 완화 목적으로 사용되는 보톨리눔 독소(보톡스)가 대표적이다. 보톨리눔 독은 원래 매우 치명적인 신경 마비 물질이다. 그렇지만 첨단 기술 덕에 오히려 사람에게 이롭게 쓰이고 있다. 벌이 가지고 있는 봉독(蜂毒)도 마찬가지이다. 잘못 쓰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만, 잘 쓰면 병까지 고칠 수 있다.

맑고 투명한 봉독은 특별한 물질로 알려져 있다. 열과 추위에 무척 강해 100℃로 열흘 이상 펄펄 끓여도 성질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영하의 기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절대 변하는 법이 없다. 특이한 것은 알코올에는 약하다는 점이다. 봉독의 주성분인 멜리틴은 알코올에 닿기만 하면 무력해진다. 침, 위액, 장내 효소들도 마찬가지여서 봉독의 멜리틴과는 상극이다.

전설처럼 전해오는 봉독의 효과는 무척 다양하다. 염증을 가라앉히는 소염 작용, 통증을 진정시키는 진통 작용, 피를 맑게 해주는 조혈 작용, 혈압 강하, 몸속 불순물과 병원균 제거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무어니 무어니 해도 봉독의 힘이 가장 확실하게 작용하는 질환은 류머티스 관절염이다. 한의원과 민간 요법에서는 벌침과 봉독으로 만성 관절염과 류머티스 관절염을 치료한 사례가 수없이 많다.

하지만 봉독을 널리 사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했던 것이다. 홍진태 교수(충북대 약대)와 김기현 교수(경원대·한의학)가 손잡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3년 전 가을, 그들은 봉독이 류머티스 관절염을 어떻게 치료하는지 알아내는 실험에 착수했다. 그것을 알아내야 더 많은 관절염 환자들이 안심하고 봉독을 쓸 수 있게 될 터였다.

실험은 여러 단계에 걸쳐 복잡하게 진행되었다. 우선, 실험용 쥐의 발에 관절염을 일으켰다. 그런 다음 봉독 주사를 놓았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염증과 부기가 눈에 띄게 사라졌다. 봉독이 관절염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홍교수 연구팀은 곧바로 봉독이 어떻게 류마티스 관절염을 낫게 하는지 그 약리 작용을 밝혀나갔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봉독의 주성분인 멜리틴(melittin)이라는 펩타이드 성분이었다. 연구진은 이 멜리틴을 이용해 실험 쥐의 대식세포와 관절염 환자의 무릎 부위 활액 세포에서 염증 전 유발 인자인 프로스타글란딘 E2와 나이트릭옥사이드의 생성 억제 효과를 살펴보았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멜리틴이 프로스타글란딘 E2와 나이트릭옥사이드 생성을 매우 효과적으로 억제할 뿐만 아니라, 세포 내 염증 발생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핵인자 카파비(NF-kB)의 p50과 멜리틴이 강하게 결합해 염증 발생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이다.

“봉독의 산업화·세계화 길 열렸다”

연구팀이 밝혀낸 내용은 세계적인 관절염 전문 학술지 <아트리스 앤드 류머티스> 11월호에 소개되었다. 그리고 그 논문은 ‘주목할 만한 논문’으로 선정되었다. 연구에 참여한 손봉주 박사(충북대 약대)는 “예로부터 많은 환자가 봉독 효과 덕을 보았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가 미흡해 산업화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에 그 약리 작용이 밝혀져 산업화·세계화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현재 연구 결과를 토대로 몸에 붙여 류마티스 관절염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할 예정이다. 그러나 임상 시험 같은 수많은 난관을 남겨두고 있어 환자들이 혜택을 보기까지는 조금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고 해도 문제가 남는다. 수많은 환자의 관절염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벌의 희생이 뒤따르지 않을까. 홍교수는 그 질문에 대해 “다행히 아주 소량으로도 관절염 치료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봉독은 (전압을 이용해) 벌을 놀라게 해서 벌이 봉독을 떨어뜨리면 그것을 채취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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