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잡자”…“당신들 미쳤나”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5.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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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장생포 주민·환경단체, 포경 허용 여부 놓고 정면 충돌

 
"그린피스고 뭐고 장생포엔 한 발짝도 못 들여놓을 거요." 울산 장생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손남수씨(70·장생포포경재개추진준비위원회 대표)는 이렇게 잘라 말했다.

세계적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 ‘레인보 워리어 2’ 호가 장생포에 입항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면서 현지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3월18일 인천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레인보 워리어는 서해안과 남해안을 거쳐 4월4일 장생포에 입항할 예정이다.

그린피스가 장생포에 오는 것은 5월27일~6월24일 울산에서 국제포경위원회(IWC)가 열리기 때문이다. 고래 자원 보존과 이용을 위해 설립된 국제 기구인 국제포경위원회는 최근 몇 년간 회원국 간의 갈등으로 진통을 겪어 왔다. 고래를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포경 반대국과 고래잡이를 일정한 선에서 허용해야 한다는 포경 지지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국제포경위원회 무용론까지 등장한 것이다.

이번 울산 대회에서도 포경 허용 여부가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에 고래보호운동을 적극 펼쳐온 그린피스가 일찌감치 세 과시에 나선 것이다. 뿐만 아니다. 그린피스는 몇년 전부터 한국을 일본과 더불어 ‘요주의 국가로 점찍고 있었다. 2003년 한국에서 혼획된 고래는 모두 84마리(혼획이란 의도적으로 잡은 것이 아니라 어망 등 어획 도구에 ‘우연히’ 걸려들어 잡은 것을 말한다. 고래잡이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혼획·좌초된 고래만이 합법적으로 유통될 수 있다).

같은 기간 일본에서 혼획된 고래는 1백12 마리였다. 곧 한·일 양국이 혼획한 고래가 모두 1백96 마리인 셈인데, 문제는 이것이 전세계에서 혼획된 고래(2백26 마리)의 87%에 해당하는 양이라는 것이다. 그린피스의 의심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한·일 모두 고래고기를 즐겨 먹는 나라라는 점도 이들의 의심을 키우는 데 한몫을 했다. 이번에 그린피스와 공동으로 '고래야 돌아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환경운동연합 최예용 기획실장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유독 혼획되는 고래 숫자가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이는 혼획을 핑계해 불법 포획되는 고래가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장생포 주민들이 정면으로 반발하고 있다. 장생포발전협의회·장생포청년회·장생포통장회 등 5개 지역 단체 명의로 장생포포경재개추진위원회를 결성한 이들은 포경 재개를 주장하는 첫 번째 근거로 지역 정체성 회복 및 경제 발전을 꼽고 있다. 마을 주민 이광부씨(66)는 “장생포 하면 고래 포구 아입니꺼? 그런데 고래잡이를 못하게 되면서 동네가 폭삭 가라앉아 버렸지예”라고 주장했다.

장생포는 유서 깊은 고래 포구이다. 선사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울산 언양읍 대곡리의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 285호)에는 여러 사람이 배를 타고 작살을 던져 고래를 잡는 장면, 잡은 고래를 해체하는 장면 등 고래와 관련된 그림 60여 점이 새겨져 있다. 그만큼 이 지역의 고래잡이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얘기이다. 장생포는 또 근대 포경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일본이 세운 동양포경주식회사의 한반도 기지가 바로 장생포였다.

고래잡이가 허용되던 시절, 장생포는 늘 흥청댔다고 한다. “고래잡이 배가 들어오면 동네 개들도 만 원짜리 지폐를 입에 물고 다녔다”라고 회고하는 최환곤씨(택시 기사)는, 그때만 해도 울산 내 최대 부촌이 장생포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1985년 정부가 국제포경위원회에 가입하고 포경을 금지한 이후 장생포는 쇠락한 포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재 석유화학단지 등 여러 공단이 빽빽하게 들어선 장생포에서 옛 포구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단지 부둣가에 띄엄띄엄 들어서 있는 고래고기 식당과 ‘고래 도시 울산’을 홍보하는 대형 입간판만이 과거의 영화를 희미하게 상기시킬 뿐이다.

 
이런 장생포를 되살리려면 고래잡이가 반드시 다시 허용되어야 한다고 손남수씨는 주장했다. 주민들은 또 고래고기 먹는 것을 야만시하는 국내외 환경단체에 대해서도 반감을 표시했다. “외지 사람들은 비리다고 고래고기를 잘 먹지 못한다. 그렇지만 목포 사람들이 홍어 빠진 잔칫상을 생각할 수 없듯 울산 사람들은 고래 빠진 잔칫상을 생각할 수 없다”라고 최환곤씨는 주장했다. 자칫하면 고래고기 논쟁이 제2의 개고기 논쟁으로 비화할 판이다.

그러나 환경단체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지난 3월4일 울산에는 주목할 만한 시민단체 하나가 결성되었다. ‘고래사랑회’라는 단체가 그것이다. 이 단체가 눈길을 끄는 것은, 포경 금지와 고래 보호를 공식 목표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포경 재개 지지가 대세인 지역 분위기에서 이들은 분명 이질적인 존재라 할 만하다.

이 단체 회원들은 입회할 때 두 가지 서약을 해야 한다. 하나는 고래 사랑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서약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고래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서약이다. 고래사랑회 임현성 사무국장은 “반달곰이 몸에 좋다고 잡아먹자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펴는 사람은 없다. 왜? 반달곰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래에 대해서는 이런 인식이 아직 부족한 것 같다”라고 꼬집었다.

고래잡이가 다시 허용되면 지역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들은 부정적이다. “고래고기를 먹는 것은 울산·포항 일대 주민들뿐이다. 고래고기를 대중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하는 김현배 대표는, 오히려 이보다는 고래 관광·고래 유적 탐사 등 고래와 관련된 문화·관광 이벤트를 발굴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지역 경제에 훨씬 이득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생포 주민들이 고래잡이 재개를 주장하는 또 하나의 이유, 곧 고래가 어민들의 생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찬반이 팽팽하게 엇갈린다. 동해안 일대 어민들은 포경 금지 이후 고래가 지나치게 늘어나면서 오징어·정어리·멸치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 큰 피해를 보고 있는 만큼 ‘솎아내기’ 차원에서라도 부분 포경을 허용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포항에서 오징어채낚기 어선을 운영하는 이상표씨는 “오징어를 잡기 위해 집어등을 켜면 돌고래가 떼로 달려들곤 한다. 이 녀석들이 얼마나 엄청난 양을 먹어치우는지 우리로서는 죽을 맛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근거 없는 억측일 뿐이라고 울산 환경운동연합 오영애 차장은 잘라 말했다. 어민들이 손해를 보는 것은 돌고래 때문이라기보다 최근 오징어잡이 배가 기하급수로 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찬반 양론이 팽팽한 가운데 최근 국회에서 부분 포경 허용안이 발의될 조짐이어서 눈길을 끈다.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울산 남구)은 “상업 포경은 계속 금하더라도 고래 생태 조사를 위한 과학 포경 등은 앞으로 적극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해 수산업법 개정안을 준비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김의원은 또 어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솎아내기 포경’ 또한 일부 허용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과학 포경은 상업 포경으로 가기 위한 전초 단계라는 것이 환경단체들의 견해이다. 고래사랑회 임현성 사무국장은 “과학 포경을 핑계로 매년 고래를 2백~3백 마리씩 잡아들이고 있는 일본의 전철을 우리가 밟아서는 안된다”라고 주장했다.

환경운동연합 최예용 실장은 나아가 과학 포경을 허용하기는커녕 오히려 지금 있는 포경 금지 조항도 더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래고기에 관한 상업적 유통을 일절 금지시켜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고래고기를 팔 수 있게 하니까 어민들이 불법으로 포획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것 아닌가?”라고 그는 반문했다. 실제로 동해안 인근에서는 불법 포획한 고래를 어망에 걸려든 고래라고 속여 팔다가 적발된 사례가 해마다 늘고 있다.

환경단체와 장생포 주민의 엇갈린 고래 사랑은 조만간 충돌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장생포 주민들은 이들 환경단체에 대해 정서적 반감마저 드러내고 있다. “해상에서 시위하는 것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그린피스가 포경 국가의 관할 수역이나 항구에 들어가 포경 반대 운동을 벌였다는 얘기는 일찍이 듣지 못했다”라는 변창명씨(한국포경재개추진협의회장)는 그린피스의 장생포 입항이야말로 한국 정부를 얕보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4월4일 이들의 조우가 주목된다

 
하지만 절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한국계 귀신고래는 이미 멸종된 것으로 1974년 학계에 보고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오호츠크 해에서 다시 귀신고래가 관측되면서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어 일본 남해 연안과 남중국해에서도 귀신고래가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귀신고래가 동해안을 따라 남하할 날이 올 것이라고 학계는 기대를 걸고 있다. 울산시는 국제포경위원회가 열리는 기간에 맞추어 문을 열 고래박물관(장생포 소재)에 실물 크기(길이 13.5m)의 귀신고래 모형을 설치하는 것으로 귀신고래 회귀에 대한 염원을 담아냈다. 

  현재 귀신고래는 볼 수 없지만 상괭이 등 돌고래류는 연안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국립수산연구원은 4~5월 서해안에만 약 5만 마리의 상괭이가 분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돌고래와 달리 맛이 좋아 미식가들에게 인기가 좋은 밍크고래는 현재 2천 마리 가량이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동해안에서는 대형 고래류인 향고래가 8마리나 한꺼번에 발견되기도 했다.
 
환경단체는 한때 멸종 위기에 처했던 고래들이 한반도 연안에 되돌아오고 있는 이같은 흐름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래는 한 번에 수천·수만 개씩 알을 낳는 어류가 아니라 2~3년에 한 마리씩 새끼를 낳는 포유류이다. 번식률이 낮은 고래를 당연히 보호해야 한다”라고 고래사랑회 임현성 사무국장은 주장했다.
 
그러나 고래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으면서 불법 포획 유혹 또한 증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망에 걸린 고래는 어판장에서 보통 2천만~3천만 원대에 거래된다. 몸집이 큰 고래는 억대를 호가하기도 한다. 덕분에 고래에 붙은 별칭이 ‘바다의 로또’이다. 그린피스와 환경운동연합은 이번 캠페인 기간에 울산·포항 일대의 고래고기 식당들이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고기를 유통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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