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는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2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4.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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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번 회부터는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키신저의 한국 책략을 감상하시겠습니다.
키신저는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얘기하기 앞서 불쑥 백년 전 얘기부터 꺼냅니다. 바로 1904~1905년의 러일 전쟁. 청나라의 영향력이 사라지면서 이 시기 한국은 일종의 '권력의 진공 상태'에 빠집니다. 이 때 러시아와 일본중 누가 한국을 먹을 것이냐를 두고 전쟁을 벌였습니다. 승리는 일본에 돌아가고, 키신저의 감상으로는, 일본은 1908년 한국의 독립을 날려버렸다는군요(우리는 보통 조선이 일본에 먹힌 때는 1910년 한일합방으로 보는데, 국제 정치 감상법으로는 2년이 앞서는군요).
그 뒤는 우리 모두가 아는 바 데로입니다. 1945년의 이른바 '광복'. 38선 분할, 1950년 전쟁...그리고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키신저는 그 사이 역사에 대한 별다른 언급 없이 문득 클린턴 정부 시절 얘기를 꺼냅니다.
이 대목도 음마할만 합니다. 우리는 분단 50년을 고통 속에 보내고 무수한 사건을 겪었지만, 미국측 입장에서는 한반도 상황에 큰 변동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클린턴 시절이냐? 기억에도 새로운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마침내 '한반도의 미래가 갑자기 중심 무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In the last year of the Clinton administration, the future of the Korean peninsula suddenly moved to center stage)'는 겁니다. 이 말을 다시 풀면, 한반도는 적어도 1950년 한국전 이래 큰 변동 없던 상태였다가 '갑자기'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갑자기' 미국의 전략적 고려에 상당히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키신저의 눈은 예리합니다. 미국 전략가들이 놓쳐서는 안될 대목이 있다는 겁니다. 대개 다음과 같습니다;겉으로 보면 휘황찬란한 변화가 발생했지만 그 정도로는 해결 안되는 '긴장'이 존재하고 있다. 첫째 통일 과정에서 서울과 평양이 차지하는 상대적으로 다른 비중. 둘째 북한 변화 시나리오. 셋째,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을 포함한 외부 세력의 역할. 넷째, 아시아 속 미국의 군사적 정치적 위상에 심대한 의미를 갖고 있는 주한 미군의 계속적인 주둔.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넷째입니다. 세계를 주무른 전략가답게 키신저는 한반도에서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비상한 상황이 일단 벌어지자마자 미국 국익의 관점에서 이를 어떻게 요리할지를 4가지 구체적인 잣대를 가지고 기민하게 내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 4가지 기준은 앞서 랜드 보고서의 한반도 책략 사고 방식과 큰 틀에서 다를 게 없습니다. 기실 랜드 보고서를 읽다보보면 군데군데 보고서 작성자가 키신저가 제시한 '가이드 라인'을 상당히 비중 있게 참고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시간을 거슬러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상황을 반추해보면 미국은 분명 이같은 조지 부시 대통령은 바로 이같은 가이드 라인에 따라 움직인 흔적이 역력합니다. 부시가 대통령이 될 무렵, 미국은 자칫 하면 북한과 수교까지 갈 뻔 했을 정도로 북미 관계가 숨가쁘게 진전됐었습니다. 부시는 일단 대통령이 되자 이같은 상황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도무지 속 모를 사람이라고... 이렇게 시간을 벌고 나서 부시 정권은 북한 문제를 한반도 전략 전체의 틀에서 리뷰흘 했을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나서 급기야 2002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본격적인 압박 내지 봉쇄 정책 구사 등의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키신저로 돌아가서, 키신저는 1994년의 북미 기본 합의가 실패작이라고 규정합니다. 미국측 입장에서 북미 기본 합의의 주된 취지는 '비확산'이었는데, 실제로는 북한이 1998년 대포동 미사일을 쏘아올리게끔 시간을 벌어주는 등 정반대의 효과를 냈다는 겁니다.
또 하나 키신저가 클린턴 시절의 대북 정책을 '실패'로 규정하는 근거는 클린턴 정부가 북한과 직접 대화를 추구함으로써 동맹인 한국을 소외시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키신저가 앞서 적시한 가이드 라인 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키신저 식 한반도 접근법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철저히 한국을 끼고 장사를 할 것'.
그럼 이 대목에서 왜 키신저는 한국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까요. 50년 혈맹이기 때문에? 일단은 맞습니다. 맞고요. 그러나 이게 다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시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로 돌아가서, 키신저는 김정일이 남북정상회담으로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확 풀게 한 뒤, 미국이든 유럽연합이든 너도나도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평양을 방문케 하면서 외교 고립도 탈피하고, 다시 서울을 소외시키려고 시도했다고 평합니다. 즉 다시 말해 김정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미 대유럽 접근을 위해 패감으로 써먹었다는 것이지요. 이 부분은 일정 정도 사실일 것으로 판단됩니다.
여하튼 키신저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한국을 참여시켜 북한 견제용으로 삼자는 것입니다. 키신저를 '세력 균형 책략의 명수'라고 하는데, 한국을 끼워넣어야 된다는 주장은 말하자면 '한반도판 세력 균형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로 견제하고, 각축케 함으로써 국면을 유리하게 끌고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다음 키신저는 실질적으로 중요한 말을 합니다. 이 대목은 다음 회에 감상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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