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 같은 인도 물가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4.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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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다녀온 뒤 가장 많이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돈이 얼마나 들었느냐’이다. 인도에서 돈을 얼마나 쓰느냐는 마음먹기 나름이다. 인도 물가는 고무줄처럼 늘이려면 한없이 늘어나고, 줄이면 얼마든지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빈부 격차가 심한 나라답게 같은 종류의 물건도 선택이 폭이 아주 넓다. 주머니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골라잡을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담배로 예를 들어보자. 돈 없는 서민들이 즐겨 피는 담배는 한 갑에 5루피(130원꼴)도 채 안한다. 반대로 한 갑에 70루피(1900원꼴)도 넘는 고급 필터 담배도 있다. 호텔비도 마찬가지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하룻밤에 5백원도 안되는 게스트하우스가 수두룩한 반면, 하룻밤 자는 데 몇 십만원씩 하는 호텔도 즐비하다. 그래서 어떤 생활 수준을 유지하느냐에 따라 인도에서의 생활비는 큰 폭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보통 사람들이 인도에서 살려면 생활비가 얼마나 들까. 나는 아이들 둘을 데리고 뱅갈로르로의 아파트형 빌라에서 생활했는데, 집 월세를 포함해서 매달 평균 110만원~120만원 가량을 썼다. 내 생활비내역을 공개해보겠다. 뱅갈로르는 인도에서 대여섯번째로 큰 도시인데다 인도 IT 산업의 중심 도시여서 물가가 비싼 편에 속한다.

내가 살던 집은 뱅갈로르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외곽 지역이었다. 서울을 기준으로 하자면 상계동쯤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아파트 월세가 좀 싼 편이었다. 방 세 개짜리 아주 넓은 복층 빌라였는데, 평수로 치자면 1, 2층 합해서 50평쯤은 족히 되는 것 같다. 이 빌라는 우리나라 아파트처럼 단지를 형성하고 있어서 단지 안에 수영장, 헬스클럽, 탁구장, 놀이터 같은 편의시설이 잘 만들어져 있다.

난 외국인이어서 좀 비싸게 세를 낸 편인데, 월세가 30만원 가량이었다. 뱅갈로르는 열달치 월세를 보증금으로 미리 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보증금 3백만원을 내고 이 아파트를 빌렸다. 우리 집 정도의 도심 아파트를 빌리자면 보통 40~50만원 하고, 주재원들이 사는 아파트는 1백~2백만원짜리 월세 집도 있다. 아파트 관리비는 따로 없는 대신 편의시설을 이용하는 비용을 좀 낸다. 우리 아파트의 경우 월 1만원쯤 내야 했다.

인도에서는 수도세는 안 내고, 전기세만 낸다. 전기 요금은 한국이랑 비슷하던지 조금 더 비쌌던 것 같다. 우리 집에 있는 전자제품이라고 해봤자 몇 개 안되는데도 매달 3만원쯤 전기요금을 내야했다. 전자제품은 소형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 노트북, 믹서기 정도였다. 그리고 툭하면 정전이 돼서 하루에 몇 시간씩은 전기를 쓰고 싶어도 못 썼는데도 월 3만원씩 내야했다면 한국보다 비싼 수준인 것 같다.

전화요금도 한국보다는 쌌지만, 만만치는 않았다. 국제전화를 5분씩 열통쯤 하고, 시내 전화만 주로 쓰는데도 5만원 가량 나왔으니까. 전기요금, 전화요금, 인터넷 요금으로 매달 10만원 이상씩 내곤 했다.

인도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은 교통비였다. 물론 시내 버스 요금은 130원꼴밖에 안했지만, 외국인들이 버스를 이용하기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폐차 직전의 버스들만 모아놓은 데다 사람은 많고 노선도 많지 않아서 우리는 주로 오토릭샤(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를 타고 다녔는데, 30분 가량 떨어진 곳을 가려면 3천원쯤 들곤 했다. 그리고 좀 더 먼 거리를 가려면 승합차인 콜택시를 부르는데 그 요금은 두 배. 그래서 많이 돌아다니지 않았는데도 교통비만 월 20만원 이상 들었다.

하지만 식비는 적게 드는 편이었다. 감자 양파 토마토는 1킬로그램에 우리 돈으로 3백원쯤 했고, 망고나 포도같은 과일도 천원만 주면 한보따리씩 살 수 있었다. 계란 한 줄에 3백원쯤 했고, 우유도 한 봉지에 3백원쯤 했다. 소고기 값도 엄청 쌌다. 아무리 비싼 집에 가도 1킬로그램에 2천원을 채 안주었다. 돼지고기나 닭고기는 그보다 약간 더 비쌌다. 배추는 인도인들이 즐겨먹지 않는 품목이라 비싼 편이었다. 제 철에는 1킬로그램에 3백원까지도 내려가지만, 철이 지나면 1킬로그램에 천원도 넘었다.

또 공장에 들어갔다 나온 물건들은 전부 비쌌다. 화장지는 품질이 한국 것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데도 가격은 세 배. 아이들 과자 값도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인구가 많으니까 사람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은 오히려 싸고, 기계를 거친 것들은 더 비쌌다.
여기에 외국인들은 툭하면 바가지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불필요한 돈을 쓸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오토릭샤는 요금이 정해져 있는데도 툭하면 1.5배 요금을 요구해서 싸우지 않을 수 없게 한다.

10루피(270원) 때문에 오토릭샤꾼과 핏대 올리며 싸우는 내 모습을 보고 간 한 선배는 ‘안은주가 인도 가더니 짠순이 아줌마 됐다’고 놀려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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