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검사=인권 침해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5.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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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세상]
 
 일기장만큼 처지에 따라 달리 보이는 ‘물건’도 드물다. 어렸을 때에는 누구나 일기 숙제를 하느라 고역을 치렀을 텐데, 어른이 되면 그 유용성에 쉽게 이끌린다. 자기가 쓰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일기장을 기웃거리는 것이다. 글쓰는 실력도 보고 자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내는지도 알 수 있으니 그보다 편리한 물건이 없다.  

  ‘상을 주기 위한 일기장 검사는 인권 침해’. 지난 4월7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교사가 일기장을 검사하는 것은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 등 헌법에 보장된 어린이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뜨겁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교육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수고롭게 일기장 검사를 해온 교사들도 노고를 인정받기는커녕 인권 침해를 일삼았다는 말이냐며 섭섭한 기색이다. ‘인권위가 별 걸 다 간섭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오는 모양이다. 

  솔직히 현실에서 초등학생의 일기는 사생활 영역이 아닌, 글쓰기 지도 혹은 의사 소통의 마당으로 간주된다. 중·고등학교까지 일기장을 보자고 하는 사람은 없으니, 초등학생의 일기는 일기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되 질적으로 다른 그 무엇이다. 인권 침해로 보는 것이 오히려 교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아니면 일기란 홀로 꽁꽁 싸매고 쓰는 것이라는 관념 자체가 낡은 것일지도 모른다. 사이버 공간에 널린 개인 홈페이지와 미니 홈피, 개인 블로그는 사실 개인 일기의 확장이다. 그런 일기 가운데에는 매일 수천 명이 접속하는 ‘스노우캣 다이어리’와 같은 메가톤급 일기장도 있다.   

  아이들이 숙제로 쓰는 일기는 사생활 침해 어쩌고 할 필요도 없이 이미 검사용으로 내용이 평준화했을 터. 어쩌면 인권위는 이번 결정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일기로 복권시키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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