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감옥’ 서울 이 숨차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5.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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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오염으로 따지면 서울은 이미 ‘준재난 지역’이다.

 
대기오염으로 따지면 서울은 이미 ‘준재난 지역’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둔 가정은    당장 서울을 탈출하라’는 경고도 나온다.

주부 류성희씨(33·서울 서초구 우면동)는 4년 전 ‘그 날’을 잊지 못한다. 문제의 그 날, 류씨는 두 돌을 갓 넘긴 딸 수지와 함께 백화점 나들이에 나섰다. 그 날 따라 수지가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자, 류씨는 백화점 지하 식품 매장에서 우유와 버터가 듬뿍 든 과자를 사서 수지에게 안겼다. 그리고 불과 몇 분 뒤였다. 과자를 먹던 수지의 몸에 이상한 뾰루지가 돋아나기 시작한 것은.

처음에 한두 개씩 토돌토돌 돋아나던 뾰루지는 에스컬레이터가 지상 6층에 도달할 무렵 붉은 반점으로 변해 아이의 온몸을 뒤덮어 버렸다. 수지는 악을 쓰며 울어댔고 류씨는 혼비백산했다. 병명은? 여러 병원을 전전해 본즉 현대판 불치병이라는 아토피였다. 그 날 이후 류씨는 수지의 병을 고치려 고군분투했다.

류씨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에도 진학했다. 환경성 질환이라는 아토피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싶어서였다. 물론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해서 모든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류씨는 한 가지만은 확실히 깨달았다. 대기 오염과 아토피·천식 간에 밀접한 상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류씨는 학교에 설치되어 있는 미세먼지측정기의 농도를 거의 날마다 체크했다. 그리고 알았다. 미세먼지의 농도가 올라간 다음날이면 수지의 아토피 증세가 어김없이 더 악화했다.

류씨의 의심은 아직 심증 수준이다. 아토피나 천식을 앓는 그 어느 환자의 진단서에도 ‘대기 오염’이 공식 원인으로 지목되는 일은 없다. 그렇지만 류씨와 같은 의심을 품은 부모들에게 서울은 재앙의 도시이다. 주택난·교통난·빈부 양극화…. 서울살이를 팍팍하게 하는 요인은 많고 많지만 그 중에서도 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직접 위협하는 최대 요인은 누가 뭐래도 세계 최악 수준의 대기 오염이다.

OECD 국가 중 ‘최악’

 
그렇다 한들 서민 일반은 ‘목구멍이 포도청이어서’ 또는 ‘서울 공화국이 주는 각종 특혜를 포기할 수 없어’ 체념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서울 사람들의 호된 각성을 촉구하고 나선 이가 있어 화제를 낳고 있다. <아픈 아이들의 세대>(뿌리와이파리 펴냄)를 쓴 우석훈씨(경제학 박사)가 그 사람이다. 에너지관리공단·국무조정실에 근무하며 수 년간 기후변화협약 정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국제 협상에 참가했고, 현재는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인 우씨는 이 책에서 단도직입으로 이렇게 선언한다. ‘서울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서울은 이미 ‘준 재난 지역’이다. 특히 서울의 미세먼지 오염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단연 최악이다. 서울시 또한 대기 오염의 최대 주범으로 미세먼지를 꼽고 있다. “아황산가스(SO2)나 일산화탄소(CO)는 어느 정도 잡았다고 자신한다”라고 서울시 대기과 관계자는 말했다. 1980년대 서울 전역에 도시가스가 보급된 이후 이들 물질의 농도는 10분의 1 가까이 낮아졌다.

그러나 오존(O3)과 미세먼지(PM10)는 여전히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애를 먹이는 것이 미세먼지이다. 2003년 말 현재 서울의 연평균 미세먼지 오염도는 69㎍/m3으로 뉴욕(21) 런던(20) 파리(22) 도쿄(33) 같은 외국 주요 도시와 비교해 2~3배 가량 높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 호 교수는 “저개발 국가라면 몰라도 명색이 OECD에 속한 국가로서, 한국은 소득 수준에 비해 미세먼지 오염도가 너무 높은 편이다”라고 지적했다.

미세먼지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일단 생활에 불편을 주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는 시정 장애를 일으키는 주요인으로 도시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불쾌감을 준다.

시정 장애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미세먼지가 건강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한다는 점이다. 환경학자들은 미세먼지의 주요 특성 중 하나로 ‘문턱점’ 곧 역치(임계치)가 없다는 점을 꼽는다. 일반 대기 오염 물질은 일정 수준 이하에서는 건강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를테면 일산화탄소 같은 경우 환경 기준치(8시간 기준 9ppm) 이하 농도에서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미세먼지는 다르다. 미세먼지는 말 그대로 가느다란 먼지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50분의 1에 불과한 이 입자는 너무 가늘어 비가 와도 잘 씻기지 않는다. 대기중에 오랫동안 떠다니다가 인간이 호흡할 때 몸 안으로 따라 들어가 폐 깊숙이 안착해 각종 질환을 일으킨다는 것이 미세먼지의 무서운 점이다.

 
이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어린이라고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밝혔다. 이 ‘소리도 냄새도 없는 침묵의 살인 물질’은 한참 자라나는 어린이의 스펀지 같은 허파 조직으로 소리 없이 스며들어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입힌다. 뿐만 아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보다 호흡하는 횟수가 많기 때문에 작은 몸집에 비해 더 많은 양의 유독 물질을 흡입하게 된다. 키가 작아 승용차나 버스에서 배출되는 배기 가스도 더 가까운 높이에서 마시게 된다.

기준치 초과 일수·최고치 기록도 ‘상상 초월’

이 모든 것이 어린이에게는 치명적이다. 실제로 천식·아토피 같은 환경성 질환의 피해는 어린이에게 집중되어 있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0~9세 어린이가 전체 천식 환자의 47.6%, 아토피 환자의 63.6%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준치 초과 일수로 보아도 서울은 이미 ‘준 재난지역’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서울에 있는 주요 미세먼지 측정소의 단기환경기준(1일 150㎍/m3) 초과 현황은 다음과 같다. 잠실동 57일, 방학동 51일, 신정동 38일, 남가좌동 31일(국립환경연구원). 곧 웬만한 측정소의 측정치는 30~50일 가량 법정 기준 일수를 초과한 셈이다.

이들 측정소가 기록한 최고치도 상상을 초월한다. 인체 위해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연 평균치보다 중요한 것이 1일 평균치이다. 순간 피크로 올라갈 때 폐는 더 큰 손상을 입기 때문이다. 그런데 광진구·강북구 측정소의 경우 2003년 미세먼지 1일 최고 오염도는 각각 299㎍/m3이다.

서울시 분류 기준에 따르면 1일 오염도 201~300㎍/m3은 ‘나쁨’ 상태에 해당한다. 노약자나 호흡기 질환자는 외출을 자제하고, 학교는 실외 수업을 자제해야 한다. 301㎍/m3 이상이면 ‘매우 나쁨’ 상태이다. 노약자 외출 금지는 물론 유치원·초등학교에는 휴교가 권고된다.

황사가 심했던 2002년에는 더 믿기 어려운 수치가 등장한다. 2002년의 경우 구의동측정소가 세운 1일 최고 오염 기록은 무려 1,510㎍/m3. 이밖에 한남동(1,461) 방학동(1,341) 오류동(1,321) 반포동(1,222) 등 11개 측정소가 줄줄이 1천㎍/m3를 넘기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수치로만 보면 이 속에서 사람이 살아 남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이쯤되면 정부가 ‘미세먼지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선 것도 당연한 일이다. 올 초 환경부는 오는 2014년까지 수도권 미세먼지 발생량을 절반 수준(1만5천6백t→7천8백t)으로 줄이기 위한 10개년 계획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서울시 또한 지난 2월1일부터 미세먼지 예보 및 경보 제도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처럼 노력하면 상황이 갈수록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낙관론에 대해 우석훈씨는 소금을 확 뿌린다. 우씨가 주목하는 것은 올해부터 본격화할 33개 뉴타운 개발 사업 및 1천여 개에 달하는 소규모 재개발 사업이다. 이들 사업이 본격화하면 반경 2km 안에 건설 현장 없는 동네가 드물어질 텐데, 그렇게 되면 서울은 ‘거대한 PM10 공장’으로 화할 것이라고 그는 경고한다.

특히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 거대한 토목 공사를 7년 안에 모두 해치우겠다는 ‘무모한’ 발상이다. “선진국들이 보통 30~40년에 걸쳐 도시의 모습을 조금씩 바꿔가는 것은 그들이 바보여서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우씨는 주장한다. 그보다는 단기간에 공사를 펼칠 경우 도시 생태가 도저히 이를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도시 생태가 무너질 경우 최대의 희생양은 어린이가 될 수밖에 없다고 우씨는 주장한다. 이름하여 ‘아픈 아이들의 세대(Sick Baby Generation)’가 조만간 도래하리라는 것이다. 특히 서울에서 앞으로 5년 사이에 태어나거나 유아기를 보내게 될 아이들은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각종 질환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그는 경고한다. 그러니 결론은 하나밖에 없다. 특히 임신부나 아토피·천식을 앓는 아이를 둔 가정을 향해 그는 이렇게 호소한다. “지금 당장 서울을 탈출하라!”고.

“뉴타운 건설되면 더 심각해질 것”

 
이같은 우씨의 주장은 극심한 찬반 양론을 낳고 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환경연구부 김운수 부장은 “대규모 공사로 인해 서울이 죽음의 땅으로 변할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치게 과장됐다. 미세먼지 발생원 중 공사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종태 교수(한양대·환경보건학)는 또 공사장에서 주로 발생하는 비산먼지는 상대적으로 입자가 큰 편이어서 자동차 등이 배출하는 미세먼지에 비해 인체에 큰 위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대규모 공사장의 경우 먼지 저감 대책도 충분히 수립되어 있다고 서울시는 주장한다. 공사 면적이 3백평이 넘는 건설 현장에 대해서는 방진막 설치와 물 뿌리기를 의무화하는 등 다양한 먼지저감책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학자들도 대체로 동의한다. 문제는 3백평 이하 건설 현장에 대해서는 이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웃에 소규모 빌라나 다가구 주택이 새로 들어서면서 유해한 먼지를 풀풀 날려도 창문을 닫고 참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 시민들의 현실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공사장을 드나드는 차량들에서 발생한다. 박동욱 교수(방송대·환경보건학)는, 공사장을 드나드는 차량 거개가 디젤 차량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세먼지의 최대 주범이 자동차라는 데 대해서는 환경부나 서울시 모두 이의를 달지 않는다. 환경부에 따르면, 미세먼지의 56%는 자동차 등 이동 오염원에서 발생하는데, 이동 오염원 중에서 미세먼지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것이 버스·트럭 등 디젤 차량이다. 이들 차량이 발생시키는 미세먼지는 이동 오염원 전체 배출량의 약 67%를 차지한다.

이들 디젤 차량은 미세먼지(PM10)보다 인체에 훨씬 더 위해하다는 초미세먼지(PM2.5)를 다량 배출한다는 점에서 요주의 대상이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공사장을 쉴새없이 드나드는 굴착기·지게차·레미콘 차량은, 그런 측면에서 ‘움직이는 살인 가스 배출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몰고 올 영향에 대해서는 아무런 예측도, 대책도 세워져 있지 않다. 서울시 관계자는 “뉴타운 사업이 대기 오염에 종합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지 따로 연구한 바는 없다”라며 제대로된 실태 파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우석훈씨는 여기서 더 나아가 공사총량제를 제안했다. 각 공사 별로 우선 순위를 정한 다음 불필요한 건물들, 특히 지자체 단체장들이 선거를 염두에 두고 벌이는 공사들은 최우선으로 막아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운수 시정개발연구원 부장은 “공사총량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침해할 수 있다”라며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개발이 환경을 압도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시민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라’는 주장은 공염불에 그치기 십상이다. 이런 사회를 향해 데브라 데이비스(카네기 맬런 대학 객원 교수)는 이렇게 경고한다. “중요한 것은 대기 오염이 아주 심해질 때가 아니라 가장 낮은 수준의 대기 오염이 축적될 때다. 건물이나 다리라면 정부는 이것들이 무너진 뒤에야 보강 공사를 벌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대기 오염과 관련해서는 이런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이미 대기 오염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증거가 수북이 쌓여 있는데도, 필요한 조처들은 늘 수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려 죽은 뒤에야 취해진다.”(<대기오염, 그 죽음의 그림자>, 에코리브르) 그 속에서 죽어나는 것은 우리의 아이들이다. 

 
최근 박동욱 교수(방송대·환경보건학과) 외 2명은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을 발표했다. 이들이 지난 1월 중 서울 지하철 1,2,4,5호선 내부의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한 결과, 미세먼지 농도는 ‘외부 대기 <지하철 승강장 <객차’ 순으로 높았다(그림 참조). PM10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 외부 대기의 미세먼지 농도가 35~81㎍/m3인 데 반해, 승강장과 객차의 평균 농도는 각각 이보다 훨씬 높은 125.8㎍/m3과 144.0㎍/m3이었다.

외부 대기보다 지하철 공기가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그러나 승강장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리라고 믿었던 객차 내부의 미세먼지 농도가 오히려 더 높게 나왔다는 것은 충격이다. 박동욱 교수는 “객차에 신선한 외부 공기가 전혀 공급되지 않아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3월 말 발행될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실릴 이 논문은 두 가지 심각성을 일깨웠다. 하나는 실내 공기 오염의 심각성이고, 다른 하나는 초미세먼지(PM2.5)의 심각성이다. 박교수팀은 이번에 미세먼지(PM10)뿐 아니라 초미세먼지 농도도 함께 측정했다. 그 결과 지하철 초미세먼지 농도는 미국 환경청(EPA)의 대기 기준(24시간 기준 65㎍/m3, 1년 평균 15㎍/m3)을 크게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세먼지 중 초미세먼지가 차지하는 비율 또한 평균 83.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홍콩 지하철 내 미세먼지 중 초미세먼지 비율(72~78%)에 비해 크게 높다.

지하철뿐만 아니다. 올 초 환경부는 수도권의 초미세먼지 측정치를 일부 공개했는데, 이에 따르면 수도권의 초미세먼지 오염도는 27~45㎍/m3로 미국의 연간 환경 기준을 2~3배 가량 초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한 것은, 미세먼지보다 건강에 끼치는 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먼지는 입자가 작을수록 대기 중에 더 오래 머무르고, 더 멀리 확산된다. 입자가 작은 초미세먼지는 허파꽈리에까지 침투해 폐에 직접 손상을 입히거나 염증을 통한 2차 피해를 주고, 심하면 심장에까지 치명타를 입힌다.

그런데도 환경부나 서울시는 아직껏 미세먼지만을 대기오염 기준 물질로 고수하고 있다. 환경부 대기보전국 관계자는 “초미세먼지를 기준 물질로 삼는 것은 아직 시기 상조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양대 이종태 교수는 “초미세먼지의 위험성을 감안한다면 관련 기준을 하루빨리 도입할수록 좋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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