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터지는 한나라 당
  • 이숙이 고제규 차형석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5.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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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도시 특별법 국회 통과로 촉발된 한나라당의 내분이 당권과 대권을 둘러싼 권력 투쟁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도지사 사이에 피말리는 머리

 
지난해 8월, 연찬회 때 박근혜 대표는 앓던 ‘이’를 뽑으려 했다. 자신을 흔든 이재오 의원을 향해 ‘당을 떠나라’고 일갈했다. 박대표의 발언에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이의원은 정면 대응을 피했다.
지난 3월2일 이번에는 이재오 의원이 ‘박’을 깨려 했다. 이날 저녁 10시45분 이의원은 의총장을 박차고 나왔다. “반대하는 의원만 따라 오라.” 행정도시 특별법(특별법)에 대한 반대뿐 아니라, 박근혜 대표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박대표는 의총장 맨 앞자리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이재오 의원의 뒤를 따라 김문수·박계동·배일도·전재희·안상수 의원이 본회의장으로 돌격했다. 이들은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육박전을 치렀다. 본회의장에 들어선 박대표는 몸싸움을 지켜보았다. 특별법이 통과되자 박대표는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인면수심, 인간도 아니다.” 이재오 의원은 떠나는 박대표를 향해 막말을 내뱉었다. “당을 팔아먹은 X들.” 안상수 의원도 가세했다. 안의원은 “박근혜 대표 사퇴를 권고하자”라며 더 나아갔다.

박근혜 대표가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특별법으로 불거진 내분이 당권과 대권을 둘러싼 권력 투쟁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3월4일 과거사법과 특별법을 빅딜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추락하는 박대표에게 날개가 없는 격이었다. 박대표는 이번에도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그러나 지난해와 달리, 자신감보다는 위기감이 짙게 깔려 있다. 앓던 이(이재오) 뒤에 숨은 송곳니 때문이다. 이재오 의원 뒤에 있는 또 다른 ‘이’, 바로 대권 가도의 최대 경쟁자 이명박 서울시장의 급격한 ‘떠오름’이다.

 
박근혜 대표측은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대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인으로서도 치명타라는 위기감이다. 지지도에서 이미 빨간불이 켜졌다. 한때 50%까지 올랐던 박대표 지지도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최근에는 오차 범위 이내이지만 이명박 시장에게 추월까지 당했다(아래 표 참조).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들었다. “박근혜 대표의 장점이 유연하고 합리적인 이미지다. 그런데 지난해 말 4대 법안 처리 과정에서 그 이미지를 다 잃었다. 게다가 끊임없이 불거지는 당내 갈등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면서 불안한 리더십을 보였다.” 또 다른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미지로 쌓은 지지도는 그만큼 쉽게 빠진다. 박대표가 이슈를 선점하지 못했고, 자신만의 콘텐츠도 제시하지 못했다”라며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했다.

당내 평가도 엇비슷하다. 당내에서는 지난해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구했다는 부채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한 의원은 부채감을 덜어내야 박대표도 살고 당도 산다고 말할 정도다. 이번 사태로 친박-반박 구도 자체가 바뀌었다. 한때 친박으로 분류된 박찬숙·김애실·박 진 의원이 박대표와 결별했다. 특히 박세일 의원과의 결별은 박대표에게 뼈아프다. 한 의원은 “총선을 함께 치른 제갈공명을 놓쳤다. 박세일 의원마저 등을 돌린 것을 두고 내용이야 어떻든 리더십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평가가 퍼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시장, <영웅시대> 업고 상승세

박대표가 추락하는 동안 이명박 시장에 대한 지지율 상승세는 뚜렷하다. 이시장은 손학규 지사와의 격차를 더블스코어로 벌였다. 이시장측 관계자는 “경쟁자는 박근혜 대표다”라고 말했다. 손지사의 행보는 더 이상 염두에 두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명박 시장 지지도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다져진 지지도다. 실적을 토대로 차근차근 다져진 지지도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지난해 6월 시내버스 개편 때 교통 대란으로 바닥이었는데, 그 이후 꾸준한 상승세다.”

최근에는 이미지 프리미엄까지 누리고 있다. 3월1일로 막을 내린 MBC 드라마 <영웅시대> 효과다. 탤런트 유동근씨가 열연한 박대철(이명박 역)은 후반부의 주인공이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청와대 경호실장과 맞장을 뜨고, 주판을 엎자며 정주영 회장을 설득하는 박대철 효과를 이시장이 누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20대 젊은층에게는 특효였다. 드라마를 통해 학생운동권 출신의 샐러리맨 신화가 다시 조명되었기 때문이다. 젊은층 호감도는 최근에도 확인되었다. 지난 3월2일 서울시립대 입학식장에서 이시장은 예상도 못한 폰카 세례를 받았다. 이시장은 “학부모들한테 인기는 있었는데, 젊은이들이 환호한 것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3월1일 보신각 타종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이시장을 보고 ‘박대철이다’라며 환호했다.

상승세를 굳혔다고 보는 이명박 시장측은 이제 지지율 다지기에 들어갔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가자는 계산이다. 한 예로, 5월이면 공사가 끝나는 청계천 준공식도 예정대로 10월1일에 하기로 했다. 일부 참모들이 준공식을 앞당기자고 제안했지만, 자칫 여름 장마 때 청계천이 범람하기라도 하면 치명타를 입을 수 있어 그 사이 점검 또 점검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광주 방문에 이어 최근 부산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이것도 취소했다. 시정보다 대권 행보만 한다는 역효과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시장측은 당장 충청권 인심은 잃겠지만, 만회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특별법을 놓고 불거진 한나라당의 갈 길은 두 갈래다. 봉합과 분당. 그러나 어느 누구도 당이 깨지는 막다른 길로 접어들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여진은 계속되겠지만 박대표 중심으로 당이 추슬러질 것으로 본다. 박근혜 대표의 조기 낙마를 원치 않기는 이명박 시장측도 마찬가지이다. 박근혜-손학규-이명박, 이른바 빅3이 당분간 함께 가야 열린우리당의 공격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박대표 체제 조기 붕괴 가능성은 낮아

3월4일 과거사법과 특별법 빅딜설이 제기되면서 반대파 의원들은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혁신위원장을 맡은 홍준표 의원까지 가세했다. 홍의원은 “자기 약점을 덮으려고 수도를 팔아먹는 꼴이다”라고 말했다. 홍의원은 오는 5월 초까지 당권-대권을 분리하는 혁신안을 만들고, 7월에 전당대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이때 새 지도부를 뽑자는 계산도 깔려 있다.

혁신위원장으로 돌아온 ‘대표 위의 준표’까지 가세했지만, 비주류의 공세가 박(근혜)을 깰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반대파 세가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3월2일 몸싸움이 끝난 뒤 본회의장에서는 뜻을 같이하겠다는 의원이 52명에 달했다. 하지만 다음날 정작 서명을 받아보니 32명으로 줄었다. 이날 오후 서명한 의원들이 47명까지 늘기는 했지만 대응 수위와 방식은 제각기 다르다. 당내 모임도 박근혜 문책론보다는 단결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자유포럼’의 이방호 의원은 “책임져야 한다면 김덕룡 원내대표로 충분하다. 박대표까지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수요모임’도 책임론보다는 수습이 중요하다며 박대표에게 힘을 싣고 있다. ‘국민생각’도 마찬가지이다.

반대파 의원들이 각자 자신의 정치적 야망에 따라 선명성 경쟁을 하고 있다는 당내의 비판적 시각도 반대파를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이재오·박 진 의원은 서울시장에 뜻을 두고 있고, 김문수·전재희 의원은 경기도지사를 노리고 있다. 3월4일 김덕룡 원내대표가 사퇴함으로써 조만간 치러질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김문수·박 진 의원이 예비 주자다. 지금은 동지이지만, 잠재적 경쟁자이다.

한나라당은 김원내대표의 사퇴로 일단 봉합 국면에 들어섰다. 김원내대표는 “당을 추슬러 함께 가자”라는 사퇴의 변을 남겼다. 특별법이 통과된 이후, 정부와 정치권은 1백90개 정부 산하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후속 협상에 들어간다. 이 협상에서 자기 지역구로 몇 개를 옮기느냐가 의원들에게는 재선의 발판이 된다. 협상 국면으로 들어가면 박대표를 중심으로 한 지도부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한 당직자는 지역 여론이 의원들을 가만두지 않고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대표는 당분간 휴지기를 거친 다음 반대파 의원들을 설득할 예정이다. 후속 대책 협상을 주도하면서 국면 전환을 꾀할 작정이다. 4월 재·보궐 선거 국면도 박대표에게는 불리하지 않다. 박풍의 특징은 선거에 강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4월 거센 박풍이 몰아쳤듯, 오는 4월30일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 때도 특유의 악수 정치가 빛을 발할 것으로 박대표측은 기대한다. 특별법 통과를 계기로 박대표가 충청권을 공략할 기반을 닦은 점도 길게 보면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박근혜·이명박 그리고 손학규 진영 간의 치열한 머리싸움이 시작되었다. 봄 꽃보다 먼저 터진 한나라당 대권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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