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활황에 드라마속 남성캐릭터도 활짝 기지개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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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캐릭터 중심의 <불량 주부><신입사원> 등 인기... 홈드라마, 사극도 남주인공으로 중심 이동

 
SBS 드라마 <불량 주부>가 화제다. 손창민과 신애라라는 약체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김재원·이지훈·유 진·한은정 등 아이돌 스타가 총출동한 <원더풀 라이프>와 <쾌걸 춘향>의 높은 시청률을 승계해 조용히 순항하던 <열여덟, 스물아홉>을 멀찌감치 따돌리면서 월화 드라마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불량 주부>가 성공한 요인으로는 탄탄한 스토리와 손창민·신애라의 열연이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연기 변신을 시도한 손창민은 마초 남편에서 전업 주부 남편으로 변신하는 구수한의 캐릭터를 구수하게 그려냈다. 오랜만에 안방 극장에 컴백한 신애라 역시 전업 주부에서 주부 가장이 되는 최미나의 캐릭터를 맛깔스럽게 살려냈다.

<불량 주부>가 성공한 또 다른 요인으로는 사회 트렌드를 반영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얼마 전까지 트렌디 드라마의 내용은 여성이었다. 여성 시청자의 아바타 격인 ‘캔디렐라’ 여주인공이 나와서 현대판 ‘백마 탄 왕자’인 재벌 2세와 사랑을 이루는, 여성 시청자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암울한 현실을 상징하는 평범한 순정남 캐릭터는 오히려 무언가 마음에 맺힌 것이 많은 악역으로 그려지기 일쑤였다.

경기 불황 때문인지 여성들의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 심리’를 자극하는 드라마들이 인기였다. ‘캔디렐라’(<천국의 계단>의 최지우, <불새>의 이은주, <파리의 연인>의 김정은, <풀하우스>의 송혜교)가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백마 탄 왕자’(<천국의 계단>의 권상우, <불새>의 에릭,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 <풀 하우스>의 비)와 사랑을 이룬다는 천편일률적인 이야기였다.

그러나 경기가 살아나면서 드라마 속 남성 캐릭터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여자 주인공 위주로 풀려가던 이야기의 중심도 남자 주인공으로 옮겨왔다. <열여덟, 스물아홉>(박선영)이나 <원더풀 스토리>(유진) <건빵선생과 별사탕>(공효진)처럼 여자 주인공 중심의 드라마보다 <불량 주부>(손창민) <신입사원>(에릭) 등 남자 주인공 중심의 드라마가 시청률이 높다는 것으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김수현 드라마에도 든든한 가부장 등장

<불량 주부>의 마초 남편 겸 실업 가장인 구수한(손창민)과 <신입사원>의 구제불능 백수인 강호(에릭)는 처음에는 천덕꾸러기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가정적이고 믿음직한 남편으로, 회사의 엘리트 사원으로 거듭나 여성 시청자의 시선과 남성 시청자의 시선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홈드라마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해까지 홈드라마에 등장하는 가부장의 캐릭터는 대부분 모든 집안 문제(경제 파탄, 불륜)의 원흉이었다. 그러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부모님전상서>에서 극중 화자로 등장하는 시아버지(송재호)는 가족의 든든한 기둥이 되고 있다. <부모님전상서>가 대표적인 여성주의 작가 김수현씨의 드라마라는 점에서 가부장에 대한 이런 시선의 변화는 의미가 크다.

사극에서도 변화의 징후가 읽힌다. <대장금>(이영애), <다모>(하지원) 등 여주인공 위주의 사극에서 <해신>(최수종·송일국), <불멸의 이순신>(김명민) 등 남주인공 위주의 사극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아 모성이 배제된 <해신>이나 여성캐릭터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불멸의 이순신>이 인기가 있다는 사실은 이런 변화를 방증하는 것이다. 

드라마 속 남성 캐릭터가 변하는 것에 대해 드라마 평론가 윤석진 교수(충남대·국문학)는 “경기가 바닥을 치고 살아난 것처럼 드라마 속 남성 캐릭터도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는 여성들이 ‘캔디렐라 콤플렉스’에서 깨어나 내 남편, 내 애인을 다시 보는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기사 후기

거칠게 말해서 광고는 미래의 우리들 모습을 미리 그려 사람들이 따라오게 만들고,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해 현실에서 채우지 못한 욕망을 채워주고, 개그프로그램은 지나간 과거를  되돌아보게 만들어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듭니다.

대중문화 장르 중에 드라마만큼 현실을 반영하는 장르도 없을 것입니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드라마의 성공의 관건의 관건으로는 탄탄한 스토리, 매력적인 캐릭터, 카리스마 있는 배우의 연기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조건만 충실히 만족해도 드라마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현실의 욕망을 반영하는 드라마가 대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해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파리의 연인>을 보면 이런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IMF 때보다 더 심한 불황’이라는 수식어가 언론에 수시로 등장하던 지난해에는 여성들의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드라마가 인기였습니다.

<파리의 연인>은 그런 드라마 중에서도 백미였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가 재벌2세라는 백마탄 왕자와 결혼하는 신데렐라가 되는 ‘캔디렐라’ 드라마의 전형을 보여준 <파리의 연인>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경기불황 속 여성의 불안심리를 채워주는 극적 구성이 있었습니다.

기나긴 불황의 터널을 지난 경기가 회복세을 들어선 요즘, 확실히 여성들의 시선은 예전보다 누그러졌습니다. <불량주부>의 선전은 ‘찌질이 남편’을 다시 보기 시작한 여성들의 시선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못난 ‘내 남편(<불량주부>의 손창민)’ ‘내 아들(<신입사원>의 에릭)’을 껴안는 여성들의 따뜻한 마음이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견인차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또 다른 관점으로는 드라마 제작진이 남성의 시선과 남성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천국의 계단> <불새> <파리의 연인> <풀하우스>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철저하게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드라마였다는 것입니다. 여성의 시선에 따라 여성 주인공이 여성의 욕망을 풀어가는 것이 이들 드라마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불량주부>와 <신입사원>은 여성의 시선뿐만 아니라 남성의 시선도 담겨 있고 여성주인공뿐만 아니라 남성 주인공 역시 남성의 욕망을 풀어가고 있습니다. 

드라마가 우리 대중문화에서 차지하고 있는 영역은 거대합니다. 대중문화의 영역을 정당에 비유하자면 드라마가 열린우리당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비해 그동안 <시사저널>에서는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대중문화의 여당인 드라마에 대한 다양한 기사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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