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만난 트렌스젠더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5.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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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도 트렌스젠더가 있을까. ‘인도는 한참 뒤떨어진 나라’라는 편견을 가진 이라면 ‘인도인 트렌스젠더’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도에도 트렌스젠더가 있다.

인도에서 만나 친해진 나의 인도 친구 가운데도 트렌스젠더가 있다. 그녀는 두 달 가량 내게 영어를 가르쳐준 선생님이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함께 지내는 동안에도 나는 그녀가 전에 남자였다는 사실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내 눈에 비친 그녀의 첫 인상은 아주 아름답고 상식과 교양이 풍부한 인도 여성이었다.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목소리가 약간 허스키하다는 것만으로 그녀가 전에 남자였다는 사실을 눈치채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게다가 그녀는 유부녀여서 사람들은 그녀의 과거를 상상하기 힘들다. 그녀의 남편은 아침마다 학원 앞까지 그녀를 배웅해주곤 했다. 나는 그 친구 집에 몇 번 놀러갔었는데, 남편과 함께 있는 그녀의 모습은 여느 아내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학생들과의 첫 대면 시간에 자신이 트렌스젠더라는 사실을 밝힌다고 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 듣게 되면 서로 더 힘든 상황이 되기 때문이란다. 인도에는 한국처럼 남녀를 구분하는 주민등록번호가 없어서 트렌스젠더들이 살기가 나은 편이다. 성 전환 수술을 한 뒤 고향만 뜨면 새로운 곳에서 바뀐 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트렌스젠더인 것이 드러나면 사람들은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것은 한국이나 다를 바가 없다. 내 친구인 그녀도 살면서 그런 경우를 하도 많이 당해서 이제는 아예 지속적인 인간 관계를 유지할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자신의 과거를 밝힌다고 한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까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남자로 살았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삶을 사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스무살이 되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기 위해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그녀는 남자로서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감을 느꼈다고 했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연로한 부모님까지도 그녀의 선택을 지지한다고 했다. 

그 친구와 나는 연배가 비슷하고 같은 유부녀 처지여서 이야기가 잘 통하는 편이었다. 짬날 때마다 이런저런 수다를 많이 떨었는데, 특히 남편을 도마 위에 올려놓을 때는 찰떡궁합이 따로 없었다.

남편들은 왜 하나같이 게으른지, 남자들은 여자의 마음을 왜 헤아리지 못하고 둔감한지 등 각자의 남편을 흉보면서 우리는 ‘맞아 맞아’하며 낄낄댔다.

그 친구는 고민도 잘 털어놓곤 했다.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낳을 수 없는 처지여서 슬프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입양을 권유했지만, 자신의 처지로서는 그 역시도 쉽지 않다는 대답만 들었다.

인도에서도 입양 절차를 밟기란 쉽지 않다. 합법적으로 입양하려면 부모의 직업, 생활 방식 등을 꼼꼼히 따진다. 게다가 남편은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그 친구의 또 다른 고민은 유방암으로 일찍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여성으로 계속 살아가려면 정기적으로 여성 호르몬을 주입해야 하는데, 여성호르몬을 장기 투약할 경우 유방암에 걸리기 쉽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래도 여자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냐’고 조심스럽게 묻곤 했는데, 그녀의 대답은 늘 같았다. 단 하루를 살아도 여자로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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