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공습, 대재앙 전조 인가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5.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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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못지 않은 무더위가 일찌감치 찾아오면서 올해가 100년 만의 최고 기온을 기록하는 해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5월 날씨가 심상치 않다. 지난 5월4~8일, 서울의 최고 기온은 21~27℃를 오르내렸다. 겨드랑이와 등에 땀이 차서 마치 여름이 온 듯했다. 거리는 반팔 옷을 입은 사람과 양산을 쓴 사람 들로 북적였다. 한 20대 여성은 “부산에 폭설이 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름이다”라고 말했다. 봄이 사라져 봄옷 장사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기상청은 이미 한 달 전에, 올 봄의 기온이 평년(13~20℃)보다 높고, 5월 중순과 하순에 일시적인 고온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 예보와 달리 고온 현상이 더 일찍 찾아온 것이다. 김승관 기상청 예보관은 “동중국에서 고온다습한 공기가 유입되고, 북쪽에서 따스하고 깨끗한 공기가 내려와 기온이 일시 상승했다”라고 설명한다. 

 그래도 사람들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더위에 약한 사람들은 지난 4월28일 경북 영덕의 최고 기온(34℃)을 주목한다. 34℃는 우리 나라가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4월 기온으로는 최고치.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사람들의 관심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 산하 고다드 우주연구소 제임스 핸슨 박사의 예보로 쏠린다.
 
핸슨 박사는 연초에 1998년이 19세기 후반 이후 기온이 가장 높은 해였으며, 2002~2004년이 2~4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2005년이 지난 3년보다 더 덥고, 어쩌면 1998년보다 더 더울지 모른다고 예측했다. 즉 올해가 100년 만의 최고 더위를 기록하는 해가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기상청은 핸슨 박사가 기온 분석에 사용한 ‘지구 에너지 불균형’ 학설이 아직 학계의 검증을 받지 않았고, 100년 만의 최고 기온도 여름철 기온이 아니라 연평균 기온이라고 설명했지만 너무 일찍 찾아온 더위에 놀란 가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아직도 ‘봄이 이렇게 더우니 여름은 얼마나 더울까?’ 하는 걱정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재호 교수(부경대·환경대기학과)는 “핸슨 박사의 예보가 맞을 확률은 높지만, 한반도가 무덥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지구 전체를 놓고 분석한 결과여서, 한반도에 불볕 더위가 찾아올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오교수에 따르면, 이제 ‘100년 만의 무더위’라는 말은 새로운 표현이 아니다. 매년 그 기록이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지구환경연구소 수석연구원  정예모 박사에 따르면, 1960년대에 서울의 최저 기온이 영하 10℃ 이하로 내려간 날은 연 평균 11.3일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그 수가 3.8일로 대폭 줄었다. “반면 한밤 기온이 25℃를 넘는 열대야는 같은 기간에 4.2일에서 8.2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었다”라고 정예모 박사는 말했다. 
 
얼마 전 오재호 교수는 기상청의 지원을 받아 1910~2000년 한반도의 기후 변화 유형을 분석하고, 2001~2100년 기후를 예측한 보고서(<지구 온난화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를 발표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한반도의 기온은 2℃ 정도 올랐다. 그리고 앞으로 100년간 평균 기온이 5~6℃ 정도 상승한다. 또 부산에는 봄이 8일, 여름이 81일 늘어나고, 가을은 4일 줄고 겨울은 아예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에서만 급격한 기후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지난 100년간 지구의 평균 온도는 0.6~1℃ 올랐고, 그 여파로 빙하와 적설 지대 면적은 20% 감소했다. 반면 해수면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앞으로 100년간 평균 기온이 1.4~5.8℃ 오르면 해수면이 9~88cm까지 높아진다.   
 한반도의 기온이 5~6℃ 정도 올라간다는 것은 바다와 육지에 엄청난 변화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빙하기를 간빙기로 바꾸어놓은 기온 차이가 2.5℃였음을 떠올리면 두렵기까지 하다. 그렇게 기온이 빠르게 상승하면 한반도에서는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전문가들은 숲과 바다, 인간들의 생활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국립수산과학원 정희동 박사(해양연구팀)에 따르면, 한반도 연근해의 수온은 지난 35년간(1968~2002년) 평균 0.84℃ 상승했다. “남해의 상승 폭이 0.93℃로 가장 컸다. 동해와 서해는 각각 0.79℃, 0.81℃ 올랐다”라고 말했다. ‘고작 0.84℃’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여파는 크다. 어종이 눈에 띄게 바뀐 것이다. 우선 과거에 자주 잡히던 명태·대구·도루묵 같은 한류성 어종의 어획량이 크게 줄었다. 대신 그물에 자주 걸려 올라오는 어종은 멸치·고등어·오징어 같은 난류성 어종이다. 1930년대와 1970~1980년대 어부들로 하여금 풍어가를 부르게 했던 정어리·말쥐치는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변화는 가리비 어획량이 줄고, 명태와 가리비의 분포 지역이 동해 남부 해역에서 동해 중부 해역으로 북상한다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아열대성 보라문어과에 속하는 대형 문어와, 노랑가오리 속에 속하는 대형 가오리까지 잡힌다. 일본에서 횟감으로 가장 인기 좋은 어린참다랑어도 북상을 계속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최광호 수산연구사(자원연구팀)는 “어린참다랑어의 경우 비교적 따스한 일본 근해에서 주로 잡혔는데, 최근에는 남해를 거쳐 동해에까지 올라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어업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해파리도 급증하고 있다. 해파리들이 설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천적이라고 할 쥐치·병어·거북이가 감소하고, 수온 상승으로 서식 지역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나라 근해에서 발견되는 해파리는 약 40여 종. 그렇지만 아직 마땅한 퇴치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강영실 박사(유해생물팀장)는 “해파리가 침입하지 못하는 어구를 만들거나, 새로운 어법을 개발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한반도에서 사과가 사라진다? 
 
기온 상승은 바다에만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과일의 생장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서형호 농업연구사(원예연구원)는 최근 의미 있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한반도의 평균 기온이 0.5~6℃ 오르면, 국내 사과 재배 면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예측·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는 놀랍다. 현재는 서울·부산·대구 같은 대도시와 인근 지역, 그리고 백두대간의 고산 지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사과 재배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기온이 1~2℃만 올라도 놀라운 변화가 나타난다. “기온이 2℃만 올라도 전국이 사과 재배 불능 지역이 된다”라고 서연구사는 말했다. 반면 너무 추워서 사과나무가 자라지 못하던 백두대간의 고산지대에서는 사과 재배가 가능해진다(지도 참조).  

 배·복숭아·포도·단감도 연평균 기온이 3.5℃ 정도 상승하면, 재배 지역이 북쪽으로 이동한다. 이미 과수 재배에서 그같은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상록 과수로 알려진 제주한라봉이 이미 전라도 지역에서 자라고 있고, 뉴질랜드 특산품으로 알려진 키위(참다래)의 재배 지역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열대 작물인 벼도 재배 면적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소출 증가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고온 때문이다.
 
이상 기온은 외래 잡초들을 기세등등하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농업과학기술원 이양수 농업연구사(환경생태과)는 “기상 이변으로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가 외래 식물의 침입이다”라고 말했다. 외래 식물들이 들어와 토착종을 몰아내면 잡초 방제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더위와 외래 식물 탓에 토착 작물이 절멸할 수도 있다.   

 곤충계나 균류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남부 지방에서만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진 벼줄무늬잎마름병은 이미 서해안을 따라 북상해, 강화도까지 진입했다. 아열대성 수목병원균인 푸사리움가지마름병도 원래는 멕시코·일본 오키나와 등지에 분포했는데, 1996년 이후 우리 나라에서 연일 확산 중이다. 소나무 재선충을 매개하는 솔수염하늘소도 터전을 남부 지역에서 중부 지역으로 확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진딧물류가 연중 발생할 수도 있고, 벼오갈병을 유발하는 끝동매미충은  북상 속도를 높여 더 많은 농민을 골탕 먹일 수도 있다. 
 
핏빛 동백꽃이 피고 지는 서울

 기온 상승은 산림도 가만 놔두지 않는다. 지구 온난화는 필연적으로 산림 식생대의 분포를 바꾸고, 생물 다양성과 수목의 생육 시기에 영향을 미친다. 지구 온난화가 몰고 올 산림 생태계의 가장 큰 변화는 삼림 식생대의 변화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남부 해안 지대와 제주도 저지대에는 난대림(상록활엽수림 지대)이 분포되어 있다. 반면 육지의 대부분 지역에는 낙엽 활엽수림과 소나무가 많은 온대림이 펼쳐져 있고, 높은 산지에는 아한대림(아고산 침엽수림)이 있다. 기온이 오르면 이 ‘삼각 틀’이 깨질 확률이 높다. 즉 난대림이 확장되면서 온대림이 북상하거나, 표고가 높은 산지로 이동하는 것이다. 높은 산 정상 근처에 남아 있던 아고산침엽수림은 아예 사라지거나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좋은 예가 있다. 동백나무는 난대림의 대표 수종이다. 현재 동백나무는 제주도와 남부 해안 지역에서만 자란다. 그러나 연평균 기온이 2℃ 정도 오르면 사정이 달라져, 서울 등 중부 지역에서도 동백꽃이 핀다. 거문도까지 내려가지 않고도 핏빛 동백꽃 무리를 서울에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임종환 박사(산림생태과)에 따르면, 2003년 11월 중순 서울 홍릉 수목원에서 난데없이 철쭉꽃이 피었다. 임박사는 “그동안 우리 나라에서는 어느 정도 추운 기간이 지난 뒤, 따뜻한 봄 이후에만 꽃이 피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그 규칙이 깨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요즘에는 1년에 두 번 이상 꽃을 피우는   개나리와 목련이 적지 않다. 추운 겨울이 줄고 따스한 날이 늘었기 때문이다. 

 
 나무 이파리가 돋는 시기도 점점 빨라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996~2000년 봄, 국립산림과학원은 강원도 계방산의 신갈나무 이파리들이 언제 돋는지, 5월10일을 기준으로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기온이 1℃ 상승하면 5~7일 먼저 돋았다. 이같은 변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띤다. “꽃이나 새 순을 먹는 곤충류의 애벌레가 이 시기를 잘못 맞추면 번식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활엽수가 잎을 내기 전에 생활사를 마치는 얼레지 같은 초본류도 마찬가지다”라고 임박사는 말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기온 상승의 원인은 여럿이다. 도시 확대로 인한 열섬 현상 증가, 프레온 가스,이산화탄소, 산림 훼손, 대형 산불, 화석 연료 등이 주요 용의자들이다. 문제는 이들 용의자들을 묶어둘 마땅한 방법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방치할 수는 없다. 기후학에는 ‘고무줄론’이 있다. 기후가 고무줄처럼 서서히 늘어나지만(변하지만), 어느날 고무줄을 갑자기 놓는 것처럼 기후가 악화하면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이론이다. 더위뿐만이 아니라, 모든 자연 재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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