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습관, 나쁜 영화
  • 김영하 (소설가) ()
  • 승인 2005.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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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독설가로 유명했던 마크 트웨인은 평생 골초였다. 생활은 불규칙했다. 열두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인쇄소 견습공, 미시시피 강의 수로 안내인, 광산 기사, 신문 기자 등으로 일했다. 그런데 이 양반이 19세기 말에 증기선을 타고 적도를 따라 전세계를 여행한 일이 있다. 그러면서 쓴 책이 그의 마지막 여행기 <마크 트웨인의 19세기 세계 일주>다.

그는 배 위에서, 술을 끊지 못해 직장도 못 구하는 캐나다 젊은이를 만났다. 그러면서 자신의 흡연 문제로 이야기를 옮겨간다. 욕망은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커진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욕망과 함께 평생을 보내야 한다는 걸 인정하는 길’밖에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더 이상 맹세 같은 것은 하지 않겠노라 결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심한 요통 때문에 자리보전을 하게 되었다. 의사는 모든 치료를 다 해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며 담배를 줄이라고 권유했다. 그리고 커피와 차도 줄이고 과식도 삼가하라고 말했다.

마크 트웨인은 그럴 수는 없다고 거부했다. 자기는 의지가 박약하기 때문에 한번 입에 대면 절제가 안된다, 그래서 아예 끊으면 끊었지 줄이는 것은 안된다고 주장했다. 의사가 떠난 후, 마크 트웨인은 의사가 말한 모든 ‘나쁜 습관’을 끊고 과식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요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건강도 되찾았다. 그리고는 다시 그 ‘기호품’들을 접하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끝내면 마크 트웨인이 아니다. 그는 여기서 발견한 ‘건강의 비결’을 어떤 부인에게 추천하리라 결심했다. 너무 쇠약해져서 어떤 약도 듣지 않는 부인에게 1주일 안에 제 발로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그 방법이란 ‘사흘간 맹세, 음주, 흡연을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부인은 그 방법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런 ‘나쁜 습관’이 애당초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크 트웨인은 개탄했다. “버릴 만한 나쁜 습관이 하나도 없다니. 그야말로 도덕군자형 극빈자로군”이라고 평한다. “배의 침몰을 막기 위해 무거운 화물들을 배 밖으로 던져버려야 할 상황인데, 그녀는 화물을 하나도 싣지 않은 배와 같았다”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준엄히 결론을 내렸다.

“나쁜 습관이란 젊을 때부터 몸에 들여놓아야 나이가 들고 병이 들었을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어느 보험회사에선가 조사를 해보니 나이가 들수록, 즉 청년보다는 장년이, 장년보다는 노년이 건강하고 체력이 좋더란다. 혈압이 높을수록 건강하다는 결과도 나왔다고 한다. 이럴 수가! 그렇다면 건강해지기 위해선 일단 빨리 나이를 먹고 혈압을 높여야 하나?

나이 들어 끊으려면 젊을 때 즐겨라

물론 아니다. 이런 통계는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안된다. 건강에 대한 염려가 많은 중년과 노년은 젊은층에 비해 운동과 섭생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더 건강한 것이고, 젊은 층은 음주와 흡연을 많이 하고 노동 강도도 높기 때문에 그만큼 몸이 허약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조사 결과는 마크 트웨인의 독설처럼 젊은이들에게는 은밀한 기쁨과 우월감을 준다. 그것은 아직 ‘버릴’ 몸과 탕진할 젊음이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

어쩌면 ‘나쁜 습관’이란 인생 최고의 사치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음주와 흡연, 맹세(이것이야말로 정녕 나쁜 습관일지도!)를 삼가는 젊음보다는 이를 밥먹듯이 하는 젊음이 보기에는 더 그럴듯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생 최대의 사치를 즐기고 있는 중이므로. 태생부터 젊음의 예술이었던 영화는 오랫동안 청춘과 청춘의 ‘나쁜 습관’을 편애해 왔다.

영화에서 ‘나쁜 습관’을 추방하려는 도덕주의자들의 시도가 번번이 실패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실제 인생에서 감히 누릴 수 없는 사치, 그것을 감상할 권리를 관객들이 순순히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쁜 영화’를 관람하는 ‘나쁜 습관’도 젊었을 때 들여놓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늙어서 고상한 취향을 가꾸기 좋을 것이다. ‘나쁜 영화’만 끊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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