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과 들꽃 눈부신 숲길의 비경
  • 글,사진/이두영(여행 작가) ()
  • 승인 2005.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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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연인과 함께 가볼 만한 무공해 트레킹 명소 다섯 곳

햇살이 제법 따가워지는 6월은 나무 그늘 밑에 앉아서 쉬기 좋은 때이다. 잠시 그늘에 몸을 맡기면 선들선들한 바람과 새소리에 눈꺼풀이 저절로 감긴다. 지금 숲속의 나무들은 더위에 지친 사람을 기다리듯 짙은 녹음을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진향 향기를 품어내는 들꽃들이 도열해 있다. 전국 곳곳에 무한한 생명력을 발산하는 숲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 가운데 가족·연인과 함께 가볼 만한 무공해 자연 트레킹 명소 다섯 곳을 소개한다.

분주령 야생화 초원
100만평이 넘는 오색 들꽃 천국

 
상쾌한 초원과 소박한 야생화, 피톤치드를 내뿜는 침엽수림, 매일 2천t씩 바위 틈으로 용틀임하며 쏟아내리는 검룡소의 신비한 물줄기! 초여름 트레킹을 하기에 딱 좋은 강원도 태백의 금대봉(1418m)과 대덕산(1307m) 일대의 풍경이다.
 
두 봉우리 사이에는 분주령이라는 초원이 있다. 분주령에서 검룡소로 가는 숲길에서 눈부신 야생화 군락을 만날 수 있다. 이 곳 1백26만 평 삼림은 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태백시청 환경보호과의 허락을 얻어야 출입이 가능하다. 산행 출발 지점은 정선과 태백의 경계인 두문동재(태백 지방에서는 싸리재라고 부름)이다.

금대봉을 지나 분주령에 이른 다음,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 쪽으로 내려가면 꼬박 세 시간 이상이 걸린다.  분주령에서 대덕산까지 갔다 오려면 더 오래 거려서 6시간은 잡아야 한다. 분주령 일대는 봄부터 가을까지 현호색·얼레지·벌깨덩굴·하늘말나리·동의나물·벌개미취 같은 알록달록한 오색 들꽃들이 끊임없이 피고 진다. 

 
검룡소의 물은 한여름에도 발이 시리다. 이 물은 정선 아우라지, 영월 동강, 양평의 양수리 등을 지나, 서울시를 가로지르는 한강이 된다. 검룡소에서 안창죽마을 주차장으로 가는 숲길도 싱그러운 싸리나무와 들꽃이 무성해 상쾌하다. 약 5백m 길이인데, 정갈한 숲 때문에 저절로 숨을 고르게 된다. 

 승용차로 분주령에 닿으려면 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제천IC-영월-신동-사북-두문동재를 거쳐야 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태백행 고속버스를 타거나, 청량리역에서 태백역에 서는 열차를 타도 된다. 음식은 정선군 신동읍 예미리 정원광장(033-378-5100)의 곤드레나물밥이 별미이다. 태백시의 너와집 식당(033-553-4669). 시골보리밥(033-55 3-3343)에서도 토속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월출산 차밭
편의 시설이 없어 더욱 좋다

 
차밭이 있는 풍경은 복잡한 머리를 맑게 씻어준다. 사철 붐비는 보성 차밭에 비해 머리를 더 맑게 씻어주는 한적한 차밭이 있다.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월출산 자락에 숨어 있는 차밭이다. 기이한 바위산을 배경으로 비스듬히 펼쳐진 이 차밭은, 대기업(태평양)의 녹차 원료를 생산하기 때문에 편의 시설이 전혀 없다. 그래서 오히려 한적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융단 같은 밭의 총 넓이는 27만평. 밭 사이의 좁은 도로를 산책하면서 사진을 찍거나 콧노래를 부르면 엔돌핀이 솟구친다. 
 
보성 차밭과 또 다른 풍경은 여기저기 서 있는 바람개비들이다. 네덜란드의 풍차를 떠올리게 하는 이 바람개비들은 겨울에 땅이 얼어 차 나무가 동사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지상의 공기를 순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차밭에서 고개를 넘으면 약 2km 떨어진 거리에 무위사(061-432-4974)가 있다. 보수를 거의 하지 않은 고찰이다. 차분한 건물이 고향집처럼 반갑고, 예쁜 돌계단과 늙은 느티나무 들은 정겨움을 더해준다.  

 월남리 차밭에 닿으려면 서해안고속도로 목포IC-영암을 거쳐 강진 방면으로 11km쯤 가면 된다. 고속 버스를 타면 강진읍에서 내려 월남리를 경유하는 시내 버스를 탄다. 남도 음식은 강진읍의 청자골(061-433-1100)과 전통 한정식집, 그리고 저렴한 짱뚱어탕집과 백반집에서 맛본다.

함백산 야생화 트레킹
벌과 나비가 이슬로 목욕하는 청정지역

 
강원도 태백산(1567m)과 함백산(1573m)을 가르는 화방재에서 414번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우리 나라 고개 가운데 가장 높다는 만항재(1330m)에 이른다. 그 고갯길은 전망이 숨 막히게 좋다. 고개 정상으로 오르다 보면 등산로 입구와 함백산 꼭대기로 이어지는 포장 도로가 차례로 나온다. 

등산로에는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풀길과 숲길이 번갈아 나타난다. 정상까지는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 함백산 정상 못미쳐 20분 정도만 낑낑거리면 되어서, 비교적 편안한 트레킹 코스라 할 수 있다. 이맘때 함백산은 온갖 들풀과 들꽃의 향연 속에서 벌과 나비가 이슬로 목욕하는 무공해 지역이다. 

 
함백산 정상에 서면 백두대간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내려갈 때는 올라올 때의 반대 방향인 은대봉(1442m)을 지나 두문동재로 걸어도 좋다. 하산에는 약 2시간 30분이 걸린다. 

함백산 기슭에는 그 유명한 정암사가 있다. 절에는 보물 제 410호인 수마노탑과 천연기념물 제73호인 열목어 서식지가 있다. 부처의 진신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도 있다. 동산에 우뚝 서 있는 수마노탑은 고려시대 탑인데, 석영의 일종인 수마노석으로 정교하게 쌓아올렸다. 소문에 의하면, 이 탑에 소원을 빌면 염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함백산은 중앙고속도로 제천IC-제천-영월-석항-중동-화방재-만항재를 거쳐야 갈 수 있다. 고한읍 버스 터미널에서 만항재 정상까지 가는 버스가 하루 4회 있으므로,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숙박과 식사는 태백 시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유익하다. 

덕유산 철쭉 트레킹
체력이 약해도 오를 수 있다

 
덕유산(전북 무주)은 5월 말~6월 초에 철쭉으로 뒤덮인다. 특히 최고봉 향적봉(1614m)과 남덕유산(1507m) 사이가 절경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화려한 곳은 '덕유평전'이라 불리는 중봉(1594m) 아래 고원이다. 무주리조트 곤돌라가 돌아 나오는 설천봉(1522m) 쪽도 무리 지은 철쭉꽃이 곱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코스는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15분 만에 설천봉에 오른 다음,  25분을 더 걸어올라 향적봉과 중봉, 그리고 덕유평전 일대의 철쭉과 야생화 들을 본 뒤 구천동 계곡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리지만(4시간), 돌아오는 길이 결코 힘들거나 섭섭하지 않다.   

 체력이 좀 약한 사람은 곤돌라로 올라갔다가 곤돌라로 내려와도 좋다. 단, 설천봉-향적봉- 중봉 구간에 형성된 주목과 철쭉 군락지만 감상할 수 있다. 시간도 대략 2시간밖에 안 걸린다. 그래도 하늘 아래 트레킹이어서 기분만은 최고다.  

 다음은 무주구천동과 향적봉을 왕복하는 코스이다. 구천동 삼공리 매표소를 지나 백련사-향적봉-삼공리를 거쳐 내려온다. 신록과 폭포 같은 구천동의 비경을 두루 볼 수 있는 코스로, 약 7시간이 걸린다. 백련사에 주차하고 정상까지 올라갔다 와도 좋다(3시간 30분 소요).
 덕유산은 대전-통영고속도로 무주IC에서 빠져 '무주구천동' 이정표를 따라 간다. 충북 영동이나 무주에서 구천동행 버스를 타도 쉽게 닿는다.  무주리조트에서 구천동까지 셔틀 버스가 수시로 다니기도 한다. 무주리조트 카니발 상가에 가면 괜찮은 음식맛을 볼 수 있다.  무주리조트 전화번호는 063-322-9000.

함양 상림
백련·홍련에 우포늪까지

 
경남 함양읍에 있는 상림은 주로 참나무로 이루어진 국내 최고의 인공 숲이다. 통일신라시대(9세기 말)에 이 고을 태수 최치원이 홍수 예방을 위해 만들었다. 그 옛날에 형성되었지만 숲은 크고 울창하다. 함양읍 대덕동마을의 개천(위천)을 따라 길이 1.5km, 너비 20~80m 규모로 남아 있는 것이다. 

원래 상림은 두 숲이 상하로 맞서고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하림은 없어지고 상림만 남았다. 숲에는 물레방앗간과 노란 수선화, 흰 연꽃 등이 조화롭게 어울려 피는 연못이 있다. 비오는 날 이 연못에 가면 신화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까지 든다. 최근에 상림 가까이 있는 만여 평의 논에 백련과 홍련을 가득 심어,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다. 인간이 가꾸고 보존한 숲이지만, 그 어느 숲보다 자연의 깊은 멋과 향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상림이다. 상림을 보고 인근 창녕군의 우포늪에 들리면 여행의 기쁨은 배가된다. 

상림에 가려면 대전통영고속도로 함양 분기점에서 88고속도로로 들어선 뒤, 함양IC로 빠져나가면 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함양행 고속버스를 타도 된다. 하루 6회 운행. 함양읍 조샌집(055-963-9860)에 가면 진기한 어탕국수 맛을, 인근 안의면에 가면 그 유명한 안의갈비 맛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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