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넘어 ‘손에 손잡고’
  • 김진화 편집위원 ()
  • 승인 2005.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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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와 한국 가정 잇는 ‘호스트 패밀리’ 축제 활짝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한국인 청과상 조씨네 가게 앞, 흑인들이 집단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가게에서 물건을 훔쳤다는 흑인 여자를 조씨가 폭행한 데 분개한 동네 흑인들이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불매 운동을 벌여 한국인들의 흑인 차별을 뿌리 뽑겠다며 8개월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흑인들은 왜 이렇게 끈질기게 시위를 계속하는 것일까. 그들은 한국인들이 아주 거친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한다. 한국인들이 흑인 동네에서 장사하면서도 흑인들을 깔보고 흑인 사회에 아무런 공헌도 하지 않으며, 악착스레 돈만 벌고 동네를 떠나버린다는 것이다.
 
며칠 전 한·흑인 문제를 다룬 현지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한 뉴욕 교민은 이렇게 주장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한국 사람을 본 적 있습니까. 물건 훔치는 한국 사람 봤습니까. 한국인은 유교 교육을 받은 문화 민족으로서 창피를 알고 체면을 존중하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흑인들은...” 뉴욕 교민회는 브루클린 시 청사 앞에서 시 당국이 흑인 데모를 조기 수습해 줄 것을 요구하는 반흑인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과연 한국인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인가. 역사적으로 우리는 중·일·러·미 등 주변 강대국과,  특히 백인들의 인종 차별의 피해자라는 인식을 가져왔으나, 인종 차별의 가해자라는 의식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요즘 동남아 등 제3 세계를 여행하면 우리보다 GNP가 낮은 국가 국민들을 얕잡아 보고 근거 없는 우월감을 과시하려는 GNP병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GNP가 우리보다 높은 나라, 특히 백인 국가에 가면 공항에서부터 주눅이 들어 고분고분해지는 사람들이다.

텔레비전에 출연한 교포의 말이나, 반 흑인 맞불 데모를 벌이겠다는 한인회의 발상이나, 제3 세계에서 만나는 일부 한국 여행객들의 호탕 방자한 말씨와 행동, 이  모든 것은 한국민의 심리 속에 내재한 인종차별 의식의 단면이 아닐수 없다.
  위는 1990년 8월27일, 한 일간지에 실린 기자 칼럼의 일부다. 그 다음해,  로스앤젤레스를 강타한 지진의 혼란을 틈타 흑인들이 코리아타운을 습격해 한인 상점들을 약탈했고, 교포들은 무장 자위대를 조직해 흑인에 대항하는 무법 천지가 몇 주일째 계속 되었다. 

그로부터 15년.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과 한국인 가정을 연결해 친구로 맺어주는 ‘호스트 패밀리’ 축제가 화려한 텔레비전 조명 속에서 벌어지던 지난 5월 말, 스리랑카에서 온 라타와떼 씨(가명·34·남)는 기자에게 호소했다.  “한국에 온 지 5년이 됐다. 밤에는 서울 근교 호텔 카바레에서 일하고 낮에는 한국산 중고 오토바이를 스리랑카에 수출하는 한국 업자를 돕고 있다. 한 달에 2백만~3백만원 벌 때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큰 수입이다. 그러나 가장 참기 힘든 것은 고용주나 한국인들이 온갖 상스러운 욕을 퍼붓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욕이란 욕은 모두 들어 배웠다. 돈은 덜 주더라도 욕을 덜 했으면 좋다. 나에게도 인격이 있지 않은가?”  

차별 계속되면 국가 신인도에도 큰 영향

방글라데시에서 법대를 나와 1년 반 전 한국에 온 하룬 씨는(가명), “한국인들에게 길을 물으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봅니다. 길은 안 가르쳐주고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그 길은 왜 묻느냐고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한국인한테 길 묻고 싶지도 않습니다. 백인에게는 그토록 친절한 한국인들이 우리에겐 왜 그런 거죠?”라고 한탄조로 묻는다.  
          
현재 국내에는 50만에 육박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다. 그러나,  앞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더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몇년 내에  100만~1백50만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한국인이 3D 업종을 기피할 뿐 아니라 세계 최저 출산율 때문에 인구가 줄어 노동력이 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저출산율이 계속된다면, 2100년쯤 한국 인구는 1천4백만 명으로 줄어들어, 젊은이 1명이 노인 9명을 부양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결국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 모셔 와야 할 손님이며, 우리 사회의 필수불가결한 구성원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국인과 외국인 간의 결혼은 3만6천 쌍. 내국인 결혼자의 10%에 달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인과 가정을 꾸리는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 사이에 태어난 2세들과,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의 실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 문제가 되어 왔다. 맞벌이 부부는 단칸방에 아이들을 가두어 놓고 일터로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 무료어린이 놀이방은 찿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피혁 공장에서 일하는 아프리카 가나 출신 엔데만게 씨(가명·36·남)는 한국인과 결혼해,  초등학교 5학년 딸과 여섯 살 난 아들을 두고 있다. 그러나 한국 아이들이 같이 놀아주지 않아 친구가 한명도 없다. 한국인 가정에 초대된 적도 없다.
 
경기도 용인의 한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출신 소도뇨 씨(가명·31·남)는, “공장 주인이 휘두른 쇠파이프를 맞아 피를 흘리며 경찰서로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았고, 내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어떻게 알겠느냐며 조서를 쓰지도 않았다.  나는 구걸하러 한국에 온 게 아니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임금을 받는 노동자다. 그런데 왜 나와 내 아내를 경찰서에 감금하고 피해자인 나를 심문하는가”라고 항변한다.

 
‘호스트 패밀리’ 캠페인을 시작한 아리랑 TV 구삼열 사장. 미국 AP통신의 로마 특파원, UNICEF 주일 대표, 홍보국장 등 30여 년 동안 세계 각지에서 활동해온 그는 7개월 전 영구 귀국하면서 외국 근로자 문제가  한국의 대외 이미지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음을 간파했다고 한다. “한국의 국제적 이미지에 가장 큰 타격을 주는  문제는, 한국은 부패한 나라, 교통 사고 세계 1위인 나라, 남북한 긴장으로 불안한 나라, 외국인 노무자들을 천대하는 인종 차별의 나라, 이렇게 네 가지다. 그중 외국인 차별 문제가 첫째로 꼽히고 있다.

현재 아시아 각국에서 한류가 한창이라고 하지만, 이미 일본과 중국에서는 한류가 별것 아니라는 ‘역류’ 현상이 일기 시작했다. 일본의 우익은 ‘역류’를 부채질하고 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서도 역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주지 않는다면 ‘역류’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 한국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다. 국가 신인도가 1%만 올라가도 20억 달러의 수입 효과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외국인들이 바라는 것은  물질적 도움보다 사람 대접을 해주는 마음 씀씀이다.”

급속도로 늘어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개선과  노조 결성 요구는 점차 빈도를 더해 갈 전망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한국 정부를 곤혹스럽게 압박할 잠재 위험 요소 1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100만~1백50만에 달하는 노동자들 중 강경파 5만~10만 명이 결속해 데모를 벌이는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해 유혈 사태로 번질 경우도 상상할 수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나마 간파한  문화관광부와 노동부는 최근 14개국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건강 검진, 한국 문화 체험, 외국 문화 축제, 가이드 북(10개 국어) 발행 등 각종 행사를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결국 외국인 노조 결성은 조만간 허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외국인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이민으로 받아들이는 장기 계획을 세워 이들을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포용할 가능성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이주 근로자와 동거’ 라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유럽의 경험이 그 필요성을 말해 준다. 그쯤 가서야 ‘한국인의 인종 차별’은 우리에게나 뉴욕 브루클린의 흑인에게나,  낯선 말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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