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민들, 남한 삶도 고단하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5.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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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 6·15 5주년 특별기획으로 열린사회강서양천시민회와 공동으로 ‘평균 새터민(탈북자)’을 조사·선정하고 새터민 집단촌을 집중 취재했다.

평균 새터민

독신(61.9%), 무직(70.3%)이 대세
북한에서 고등중학교 졸업(73.7%)
월평균 수입 75만7천4백원
월평균 희망 수입 1백55만4천7백원
1인당 평균 부채 6백30만4천7백원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새터민 2.11명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남한 사람 1.42명
평균 이직 횟수 2.03회

 
그는 집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이웃 사람 눈에는 그가 요즘 한창 화제인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족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집에 틀어박혀 텔레비전을 보고 인터넷을 하는 것이 그의 주요 일과이다. “아내가 잔소리를 안하면 하루 온종일 인터넷을 할 것 같다”라고 그는 말한다. 

5개월 된 아들 아이가 옆에서 울고 보채도 아기를 자기가 직접 보살피는 일은 별로 없다. 가사와 양육을 돕는다는 것은 북한 남자에게 영 어색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처음 온 1년 전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 2004년 6월 하나원을 나온 뒤 그의 첫 거주지는 강원도 동해였다. 그곳 영구 임대 아파트에 살면서 그는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루 종일 일하면 월급이 100만원 가량 되었으니 벌이가 아주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안가 서울행을 결심했다. 하나원에서 만나 교제를 시작한 지금의 아내가 서울에 있었던 데다 주유소 일에 더 이상 ‘비전’이 없어 보여서였다.

올해 서른네 살이 된 임강석씨(가명). 강서 지역에서 새터민(탈북자)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열린강서양천시민회와 지역 활동가들은 고심 끝에 임씨를 ‘평균 새터민’으로 지목했다. 그간 살아온 경력으로 보나, 남한 사회 적응 양상으로 보나 새터민들이 흔하게 보여주는 특성을 그가 고루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사저널>과 열린강서양천시민회가 공동으로 벌인 이번 조사에 따르면, 강서 지역에 거주하는 새터민 중에는 북한에서 고등중학교를 졸업(73.7%)하고, 노동자 생활(54.2%)을 하다가 탈북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나이 별로는 30대(42.4%)가 제일 많았고, 다음이 40대(27.1%) 20대(17.8%) 순이었다.

임씨는 북한에서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뒤 전기 기사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거개의 탈북자들이 그랬듯 그 또한 북한에서의 경력을 한국에 와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다. 이번 조사에서 새터민들은 북한에서의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관련 기사 참조).

중국에 체류하는 동안 배운 컴퓨터도 구직에 별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임씨는 다시 이곳 학원에서 컴퓨터를 배우는 중이다. 그러나 “새터민이 컴퓨터 관련 직종에 취업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강서구 가양3동 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황문현씨는 잘라 말한다. ‘태생적으로 디지털 피가 흐르는’ 남한 사람과 경쟁이 안된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결혼과 더불어 서울에 입성한 뒤 그는 백수 생활을 하고 있다. 새터민 10명 중 7명(70.3%)이 무직이라는 이번 조사 결과에 비추어 보면, 임씨가 특별히 모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직업이 없어도 임씨의 월평균 수입은 1백10만원 가량 된다. 매달 최저 생계비로 74만원(3인 가족 기준) 정도가 지급되는 데다 직업 훈련을 받는 1년 동안은 훈련 수당 월 33만원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임씨의 월평균 수입은 새터민 평균에 비한다면 약간 높은 편이다. 이번 조사에서 새터민의 월평균 수입은 75만7천4백원으로 나타났다. 이 중 새터민 남성의 평균 수입이 91만8천원(여성 69만9천원)이므로, 임씨는 이보다 20만원 가량을 더 버는 셈이다.

그러나 희망치에 비한다면 이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이다. 자신이 현재 버는 것보다 두 배쯤(평균 1백55만4천원) 많은 수입을 원하는 일반 새터민처럼 월급 150만원 가량을 받는 안정된 직장에 다닐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임씨의 바람이다. 

외국인 노동자보다 새터민을 더 깔본다?

그나마 임씨의 경제적 사정이 다른 새터민에 비해 나은 것은 한국에 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다. 독신이면서 무직인 새터민에게 지급되는 최저생계비는 월 32만원 수준이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20만원 가량 깎인 금액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정부는 새터민에게 최저생계비를 지원할 때 남한 영세민보다 지원 등급을 1단계 우대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나 올 초 새터민의 자활을 유도하는 쪽으로 정착 지원 제도가 바뀌면서 새터민에 대한 지원액은 대폭 줄어들었다. 이를 두고 일부 새터민은 부당하다며 격렬하게 항의하는 중이다.

임씨 또한 정부 방침에 불만이 많다. “남한 사람도 외국에 이민 가 정착하려면 1~2년은 걸리는 것으로 안다. 새터민이 한국에 온 뒤 최소한 2년 정도는 취직 걱정 안하고 앞으로 먹고 살 일을 모색할 수 있도록 남한 정부가 지원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임씨는 되물었다.

이는 새터민들의 대체적인 사고 방식이기도 하다. 이번 조사에서 새터민들은 남한 사회 적응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정부 정착금(41.5%)을 들었다. 다음은 기술(22.0%) 교육(17.8%) 능력(12.7%) 사회 인식 변화(12.7%)였다. 

그러나 남한 사람은 남한 사람대로 이같은 새터민의 사고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방화6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새터민 자원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박 아무개씨는 “처음에는 정부가 모든 것을 해줘야 한다는 그들의 공산주의적 사고 방식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이제는 내가 먼저 여유를 갖고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니까 자기가 노력한 만큼 벌 수 있다’고 설득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가치관의 차이 및 문화 충돌로 인해 새터민은 남한 사람과 만나는 것을 꺼린다. 임씨가 마음을 터놓을 수 있을 만큼 가깝게 지내는 남한 사람은 교회에서 만난 장로 한 사람이 고작이다. 아파트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이웃 사람을 만나도 인사하는 법은 거의 없다.

다른 새터민 또한 상황은 유사하다. 이번 조사에서 새터민은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남한 사람이 평균 1.42명이라고 답했다. 한국에 온 지 오래되었다고 이같은 교우 관계가 바뀌지는 않는다(2003년 이전 입국자 1.38명, 2004년 이후 입국자 1.24명). 

새터민들은 남한 사람을 대할 때 ‘남한 사람이 새터민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 선입관’(58.5%) 때문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했다. 다음은 남북한간 가치관 차이(46.6%), 남한 사람들의 이기적 행동(20.3%), 남한 사람들의 부정직한 태도(16.1%) 순이었다.

지난해 입국한 나영석씨(39·가명)는 남한 사람들이 새터민을 ‘거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인 양 취급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때로는 외국인 노동자보다 새터민을 더 업신여기는 듯한 시선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새터민끼리 똘똘 뭉쳐 사는 것도 아니다. 이번 조사에서 새터민들이 친하게 지낸다고 꼽은 동료 새터민 수는 2.11명 수준이었다. “아파트 복도 같은 데서 ‘아, 저 사람은 새터민이겠구나’ 싶은 사람을 마주칠 때가 있다. 그래도 아는 체하는 법은 없다”라고 임강석씨는 말했다. 새터민끼리 어울려 보았자 서로 득될 것이 없고, 남들 입에만 오르내릴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나영석씨는 보안 때문에 새터민을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자기가 한국에 와 있는 것이 알려지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임강석씨를 비롯해 새터민 대부분이 이번에 사진 촬영을 거절한 이유도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 때문이었다). 

 그러나 직업도 없고 사람들도 잘 만나지 않는 이런 상태가 지속될수록 새터민들의 입지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열린사회강서양천시민회 변광영 사무국장은 지적했다. 따라서 우선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이들을 우리 이웃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지역 단위 프로그램 내지 사회적 캠페인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최근 급변하는 새터민들의 구성 특성에 맞추어 정부 대응도 달려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 새터민 늘고 중국 체류 기간 길어져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첫번째 특징이라면 무엇보다 여성 새터민이 크게 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관련 기사 참조). 만 2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는 빠졌지만 나홀로 입국한 청소년 새터민이 늘고 있는 것 또한 최근의 특징이라고 지역 활동가들은 전했다.

다음으로는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새터민들의 중국 체류 기간이 상당히 길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번 조사 결과 2003년 이전에 입국한 새터민의 경우 탈북에서 입국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2.89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이후 입국자는 그 기간이 이보다 더 긴 3.32년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처럼 중국 체류 기간이 길어진 것은 한국행이 여의치 않았던 탓도 있겠지만 이들 새터민이 처음부터 한국에 오려고 북한을 탈출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가능성도 높다.

물론 새터민의 공식 멘트는 ‘한국에 오고 싶어 북한을 탈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면 ‘웬만하면 중국에 머무르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한국행을 택하게 된’ 경우도 상당수라는 것이 새터민들의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신분상의 불안 때문에 한국행을 선택한다. 임강석씨도 그랬다. 중국에서만 7년을 머물렀다는 임씨는 지금도 길거리를 가다가 경찰차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공안에 쫓겨 다니던 중국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이처럼 입국 동기가 다르다 보니 오래된 새터민과 신규 새터민은 생활 방식이나 사고 방식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고 방화6단지 관리사무소 새터민 담당자는 말했다. 곧 2000년 이전에 입주한 새터민들의 경우 자유 민주주의를 찾아 남하했다는 의식이 강하고 예의 범절도 바른 반면 최근 입주한 새터민들은 뭐든 요구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자기 이익을 챙기려 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이우영 교수(경남대 북한대학원)는 새터민들의 입국 동기가 ‘실존형’에서 ‘생계형’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외환위기 때 한국인이 대거 생계형 이민을 떠났던 것처럼 새터민도 이제는 ‘귀순’이라기보다 이민을 떠나는 마음으로 한국행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터민·조선족 관리 부처 신설해야

이에 따라 김정일 정권을 비방할망정 북한 체제에 대해 우월감을 드러내는 새터민이 생겨난 것도 최근의 새로운 경향이다. 북한 김형직사범대학 출신이라는 최태민씨(45·가명)는 “솔직히 한국에 오기 직전까지도 방법만 있으면 북한에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자칫하다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해를 입힐까 봐 죽어도 혼자 죽자는 생각으로 한국에 오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 면담 과정에서 ‘지금 당장 통일이 되면 노무현과 김정일 둘 중 누구를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도 “리론(이론)이 옳은 쪽을 지지하겠다”라며 자기 소신을 밝혔다고 말했다.

 1~2년 뒤면 ‘새터민 1만명 시대’가 닥쳐오리라는 것이 통일부의 관측이다(2004년 12월 말 현재 새터민 수는 6천3백명을 넘어섰다).

매년 한국에 들어오는 새터민 숫자가 천 명을 넘어서고, 생계형 입국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이제는 새터민 지원 정책도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이우영 교수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통일부가 새터민 정착 지원 사업을 계속 담당하는 것은 남북 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만큼 새터민 외 조선족·제3국민 등을 총괄 관리하는  ‘이민청’(가칭)을 신설하는 방식도 논의해 보아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남한 사회 또한 이들을 더 이상 ‘시혜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이 변광영 국장의 말이다. 그보다는 새터민에 대한 선입견을 허물고 이들을 ‘더불어 살아갈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동서독인들은 통일 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로를 ‘오씨’(게으른 동독놈들) ‘베씨’(역겨운 서독놈들)라고 부르며 백안시하고 있다고 연구자들은 전한다. 이런 비극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는 지금 할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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