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공화국’호령하는 이의근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5.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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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 실시한 ‘누가 대구·경북을 움직이는가’ 여론조사에서 이의근 경북도지사가 최고 파워맨으로 꼽히고, 그 뒤를 조해녕 대구시장이 이었다.

지역 영주의 힘은 역시 셌다. 대전·충남, 광주·전남에 이어 세 번째로 진행된 대구·경북 지역 조사에서도 광역 단체장 두 사람이 나란히 ‘영향력 있는 인물’ 1,2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해당 지자체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틀어쥐고 있고, 거의 매일 지역 뉴스의 중심 인물로 조명된다는 점이 영향력 지수를 끌어올리는 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자치단체장이 아닌 인물이 영향력 1위로 꼽히는 지역이 나올 경우, 최대 화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누구를:대구·경북 지역 10개 분야 전문가
■몇 명을:500명(행정관료 50명 교수 50명
   언론인 50명 법조인 50명 정치인 50명
   기업인 50명 금융인 50명 사회단체 인사 50명
   문화예술인 50명 종교인 50명)
■어떻게:구조화한 설문지
■언제:2005년 6월14~17일
■누가:미디어리서치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한나라당 곽성문 의원의 맥주병 투척 사건이 알려졌다. 이로 인해 한나라당에 대한 TK 여론이 극도로 나빠졌다는 얘기도 돌았다. 하지만 이번 전문가 조사는 이 지역이 여전히 한나라당의 아성임을 웅변하고 있다. 다만 박근혜 이명박 강재섭 등 TK 대권 후보 3인에 대한 감수성에는 상당한 변화가 감지된다.

<시사저널>이 지방 자치 10주년을 맞아 진행하고 있는 ‘특별 기획, 누가 지역을 움직이는가’는 권역 별로 그 지역 전문가 5백명에게 그 지역의 분야별 ‘실세’를 묻고, 이를 바탕으로 현장 취재와 전문가 분석을 곁들이는 방식이다. 지난 두 차례 보도는 해당 지역은 물론 중앙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그 중에는 전문가 조사의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도 일부 있어, 이에 대한 전문가의 답변을 따로 실었다.


 
대구·경북에서 가장 영향력이 센 인물로 꼽힌 이의근 경북도지사(67)는 여러 모로 ‘충남 대통령’으로 불리는 심대평 충남도지사와 닮았다. 관선 도지사를 한 번 지낸 후, 본격적인 지방 자치 시대가 열린 1995년부터 내리 세 번이나 민선 도지사에 당선된 것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 다 지역민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심대평 지사가 추진하고 있는 중부권 신당에 대해 충청 민심이 적지 않은 기대를 표출하는 것이나, 이의근 지사가 3선 제한에 걸려 다음 선거에 출마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사에서 또다시 차기 도지사감 1순위로 지목된 것은 그만큼 지역 평가가 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평가 덕에 이지사는 2004년 총선 직전 여당의 집중적인 영입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함께 영입 대상으로 꼽히던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만 탈당하고 이지사는 한나라당에 남았는데, 당시 이지사가 여당으로 옮겼다면 지금쯤 강력한 총리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으리라는 것이 지역 정가의 중론이다.

2위를 차지한 조해녕(62세) 대구광역시장 역시 화려한 경력을 지닌 정통 행정 관료 출신이다. 행정고시 10기 출신으로 내무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군수·시장·내무부 기획관리실장 등을 거쳐 1993년 관선 대구시장을 지냈고, 총무처장관, 내무부장관까지 오른 후 2002년 지방 선거에서 민선 시장에 선출되었다. 하지만 취임 직후 터진 대구 지하철 참사는 조시장에게는 감당하기 벅찬 시련이었다. 사건 자체가 워낙 충격적인 데다 수습 과정에서도 허점이 많이 노출되는 바람에 시장에 대한 대구 시민들의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 이 때문에 지역 정가와 언론계에서는 ‘조시장 스스로도 의욕을 상실한 측면이 크다’ ‘다음 선거에 나오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들이 나돌 정도다. 차기 대구시장감을 묻는 질문에서 현역 프리미엄을 지닌 조시장에 대한 지목률이 예상보다 낮은 것도 이런 여론을 반영한다는 해석이다.

‘대구·경북의 여당=한나라당’ 확인

 
1, 2위가 모두 한나라당 당적인 것을 포함해, 이번 대구·경북 조사의 특징은 한마디로 ‘한나라당판’이라는 것이다. ‘영향력 있는 인물’ 10위권에 든 인물 가운데 8명이 한나라당 소속이고, ‘영향력 있는 정치인’에서는 10위권을 넘어 20위권까지 내려가도 1명 빼고 다 한나라당 출신이다. 게다가 ‘대구·경북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 혹은 세력’을 묻는 항목에서는 ‘한나라당’이라는 응답이 55%로 압도적이었다.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4.8%)이 시민단체(4.6%), 공무원 집단(4.4%), 대구시(4.2%) 등과 비슷한 수준으로 여겨지는 것은 ‘대구·경북의 여당=한나라당’이라는 속설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굳건한 아성인 대구·경북에서 이 지역 출신 대권 주자 3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명박 서울시장의 역학 구도는 어떻게 형성되고 있을까?
우선 전체 영향력 순위에서 박대표와 강원내대표는 나란히 3,4위를 차지했고, 정치인 분야에서는 자치단체장들을 제치고 각각 1,2위를 차지했다. 대구·경북 지역의 여당인 한나라당을 박-강 투톱이 이끌고 있는 만큼 두 사람의 파워가 막강하다는 의미다. 특히 ‘영남 공주’로 불리는 박대표는 강원내대표와의 표차를 두배 이상 벌리며 명실상부한 TK 맹주임을 과시했다. 이에 반해 경북 영덕이 고향인 이명박 서울시장은 종합 순위와 정치인 분야 양쪽에서 모두 10위권 밖(13위)으로 밀려났다. 고향은 경북이지만, 현재 서울시장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 것이다.

 
하지만 차기 대통령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우선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박대표가 23.6%로 1위, 이시장이 20.8%로 2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그 차이가 2~3%포인트에 불과해 엄밀히 따지면 1,2등 순위는 큰 의미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앞서 영향력 조사에서나 기존 일반인 여론조사에서 박대표에 대한 지지가 월등하게 높은 것에 비하면 이시장의 약진이 놀라운 수준이다.

이명박, TK 땅에서 날개 달다

이명박 약진은 ‘한나라당 대권 주자로 누가 적합한가?’에 대한 응답율을 대비해 보면 더욱 또렷해진다. 한나라당 대권주자감에 대해 응답자들은 박근혜 42%, 이명박 22.4%라고 대답했다. ‘차기 대통령감’에서는 두 사람의 수치가 비슷한데, 한나라당 대권주자에서는 박대표가 월등하게 높은 것이 언뜻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나라당 대권 주자로 박대표를 꼽았던 응답자들 가운데 절반 가량이 ‘차기 대통령감’으로는 고건 전 총리나 열린우리당 후보들 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박대표 지지자들의 충성도가 약하거나, 또는 다른 당 지지자들이 박대표가 한나라당 후보가 되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의미다. 이에 비해 이시장에 대한 지지도는 한나라당 후보감을 물었을 때나 차기 대통령감을 물었을 때나 큰 차이가 없다.

이런 이명박 약진 현상에 대해 이 지역 전문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놀랍지만, 그럴 만하다’는 쪽이다. 한 지역 언론인은 두 사람을 ‘가족’과 ‘전문 경영인’에 비교했다.
“박대표는 대구·경북 사람들에게 가족과 같은 존재다. 늘 애틋하고, 박대표가 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도와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박대표를 국가 지도자로 믿고 따르는 데 대해서는 아직 믿음이 덜한 것 같다. 이에 반해 이시장은 ‘검증된 전문가’라는 의식이 강하다. 그동안 이시장이 고향 사람이라는 일체감이 약했는데, 그가 최근 들어 영남에 공을 들이기 시작하면서 점차 그에 대한 지역민의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지역 민심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택시 기사들의 반응은 더 직설적이다. 택시 기사 김 아무개씨는 “박근혜의 인기는 높다. 하지만 여자라는 한계가 있다”라고 했고, 택시 기사 조 아무개씨는 “여기는 박정희 도시다. 그래서 박대표가 인기가 있지만, 솔직히 박정희 식으로 일하는 사람은 이명박 시장 아니냐. 이시장이 나오면 이 지역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박대표의 아성이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로만 보면 ‘수도권+영남’ 전략으로 대권에 도전하려는 이시장 진영에는 청신호가 켜졌다. 대구·경북이 여전히 한나라당 아성이기는 하지만, 더 이상 박근혜 아성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려워진 셈이다. 가뜩이나 박대표 임기를 제한하려는 당 혁신안과 박대표 인기를 평가 절하한 여의도연구소 보고서 파문 등으로 불편한 박대표측 심기가 더욱 산란해지게 생겼다.

 
한나라당 TK 3인방 가운데 한 사람인 강재섭 원내대표는 영향력에서는 박대표의 뒤를 잇고 있지만, 차기 대권주자감으로는 아직 제 이미지를 못 찾고 있다. 국회의원 5선에 경북고-서울법대 출신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동안 승부수를 띄운 적도, 전국적인 지도자로서 이미지를 각인시킬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원내대표측은 아직 시간이 있다고 본다. 한 측근은 “그동안 학교 선배, 지역 선배들에게 양보하고 참느라 많은 기회를 놓쳤다. 지금도 박대표와 하나로 엮여 있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형편이지만, 조만간 강원내대표의 진가가 드러날 계기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부통령제 개헌이나 정계 개편 논의가 본격화하는 시점을 기대하는 눈치다.

한편, 한나라당 아성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인사는 이강철 청와대 시민사회 수석 1명에 불과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 지역 최측근이라는 상징성에다, 열린우리당 창당 직후 대구시당을 주도하며 지역 인사 발탁과 민원 수렴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반영된 것을 보인다.

여당에서는 이강철만 고군분투

하지만 그 외 참여정부에서 한 자리 한다는 거물급들조차 전혀 영향력이 없는 것으로 치부된 것은 여당으로서는 참담한 결과다. 노대통령은 집권 후 대구·경북 인사들을 적잖이 요직에 기용했다. 현직만 따져도 김병준 정책실장,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 김영주 경제정책수석, 이원덕 사회정책수석 등이 청와대 정책 라인을 꽉 잡고 있고, 행정부에는 추병직 건교부장관과 김대환 노동부장관이 포진해 있다. 최근 ‘보은 인사’로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는 윤덕홍 전 교육부장관, 권기홍 전 노동부장관,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도 다 이 지역 출신이다. 열린우리당에는 경북대 총장을 지낸  박찬석 의원을 비롯해 이미경·김부겸·유시민 등 이 지역 출신 의원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영향력은 한나라당 지역구 초선 의원보다 더 낮게 평가되거나 아예 무시되는 실정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열린우리당은 지난 5월23일 ‘대구를 사랑하는 국회의원 모임’(대사모)을 만들어 본격적인 TK 공들이기에 나섰다. 김태일 대구시당위원장이 주도하고 이 지역 출신뿐 아니라 호남·충청 등 다른 지역 의원들까지 모두 24명이 참여한 ‘대사모’는 대구시 각 지역구의 명예의원을 맡아 이 지역 정서를 대변하고 현안을 해결할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대사모 소속 한 의원은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은 결국 예산을 얼마나 따 주느냐, 민원을 얼마나 들어주느냐와 직결되어 있다. 그동안 이런 문제를 해결해줄 여권의 창구가 따로 없어서 이강철 수석에게만 집중되곤 했는데, 이수석의 짐도 덜어주고 대구·경북의 여권 내 대변자를 공식화한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대사모 출범은 지역 사회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 지역 일간지 기자는 “대구시 관계자가 대사모에 지역 현안을 브리핑하고, 지역 경제인들이 대사모가 주최한 지역경제살리기 토론회에 대거 참석한지 며칠 안 되어 한나라당 의원의 맥주병 투척 사건이 터졌다. 수십 년간 이 지역을 장악해온 한나라당과 지역 여론주도층 사이에 미세한 틈이 생기고 있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노대통령은 지역 발탁 인사를 계속할 태세다. ‘낙선 인사 배려’라는 비난을 사면서까지 최근 이재용 전 대구 남구청장을 환경부장관에 기용한 것이 그런 맥락이다. 노대통령은 지역 인사를 계속 키워놓아야만 선거 때 인물 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관건은 노대통령의 노골적인 인물 키우기와 열린우리당의 대사모 활동이 내년 지자체 선거와 차기 대선에서 얼마나 이 지역 민심을 움직이느냐다.

이번 조사에서 차기 경북도지사감은 이의근 현 지사(22.6%) 정장식 포항시장(9.2%) 김관용 구미시장(6.4%) 권오을 한나라당 의원(5.4%) 박팔용 김천시장(2%) 김광원 한나라당 의원(1.8%) 순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의근 지사는 이미 3선을 했기 때문에 출마가 불가능하고, 권오을 의원 역시 최근 도지사 대신 경북도당 위원장을 맡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한나라당은 형평성을 위해 지자체 단체장에 출마하려는 사람은 시·도당 위원장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미리 규정을 마련했다).

 따라서 현재까지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인사는 포항시장과 구미시장, 김광원 의원 정도다. 이 지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포항시를 관장하는 정장식 시장은 젊음과 패기를 앞세워 일찌감치 출마 선언을 했고, 이번 조사에서 가장 특성화 사업을 잘 하고 있는 지자체로 꼽힌 구미시의 김관용 시장은 경륜과 관록을 바탕으로 차기 도지사를 노리고 있다. 두 사람은 영향력 종합 순위에서도 각각 8위(구미시장)와 10위(포항시장)를, 지역 특성화 사업에서는 나란히 1, 2위를 차지해 맞수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여권에서는 아직 뚜렷한 주자가 부각되지 않은 가운데, 추병직 건교부장관, 이영탁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의 이름이 거론되는 수준이다.

 
이미 달아오르기 시작한 도지사 후보전에 비하면 대구광역시장 후보전은 아직 잠복해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조해녕 현시장(6.8%), 이재용 환경부장관(5.6%)을 필두로 문희갑 전 대구시장, 이해봉 한나라당 의원, 김범일 대구시 정무부시장, 강재섭 원내대표, 이한구·서상기 한나라당 의원이 거론되었는데, 모름·무응답이 70%나 되어 변별력이 떨어진다. 지역 정가에서는 현재 김범일 대구시 정무부시장과 서상기·이한구 의원이 한나라당 후보를 노리는 가운데, 열린우리당에서는 이재용 장관이 재도전에 나서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왼쪽 상자 기사 참조). 참고로, 이번 조사는 이재용 장관이 환경부장관에 발탁되기 직전에 실시되어 그 효과는 반영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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