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화라는 사나이
  • 고종석 (언론인) ()
  • 승인 2005.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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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재외동포법 개정안 표결에서 기권한 고진화 의원에 대해 한나라당 내부의 비난이 거세다. 당 일각에서는 탈당하라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고의원은 이 개정안이 ‘강요된 당론’이었기 때문에 기권했다고 밝혔다.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국적을 포기한 사람들에게서 재외 동포로서의 권리를 박탈하는 재외동포법 개정안이 지나치게 국수주의적이라는 지적은 좌우의 여러 논자들로부터 나온 바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이 한나라당 소속 홍준표 의원에 의해 발의된 것은, 그간 무늬만 우익이었을 뿐 우익의 핵심 가치인 애국심의 실천에서 늘 몸을 빼왔던 한나라당의 ‘쾌거’라고도 할 만하다. 이 법안이 청년층을 중심으로 큰 지지를 받은 까닭에 이 법안에 반대한 의원들은 여론의 집중적 질타를 받고 있다. 고의원을 비판하는 한나라당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도 이런 여론 덕분일 것이다.

고의원이 당론과 다른 견해를 표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국가보안법 문제일 것이다. 그는 보안법 사수를 외치는 당내 주류 목소리를 정면으로 거슬러 폐지를 주장했고, 이 때문에 당내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보안법 폐지론의 연장선에서 고의원은 남북 사이의 평화 구축에도 적극적이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예지만, 그는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가 지원하는 ‘북녘 어린이 영양빵 공장 사업’도 거들고 있다. 고의원의 개혁 노선이 여권과 궁합이 맞는 것도 아니다.

그는 여야가 합의한 과거사법을 누더기법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고, 그 이전에는 반전평화주의 입장에서 국군의 이라크 파병에도 비판적이었다. 사실 고의원의 이런 노선은 진보적 학생운동과 청년운동에 실려 있던 그의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현실 정치의 둥지로 한나라당을 골랐다는 사실일 것이다. 김 구와 장준하를 존경한다고 공언한 그가 이승만과 박정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정당에 둥지를 튼 것은 누구에게나 뜻밖으로 여겨졌다.

‘자유주의적 우파’ 고진화가 한나라행 택한 이유

물론 급진적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에 몸 담았던 사람들이 한나라당에 적지 않게 포진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얼른 생각나는 사람만해도 이재오 김문수 손학규 심재철 등 수두룩하다. 그러나 고의원은 입당한 뒤에도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도드라지게 굴절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들과 크게 다르다. 청년기의 소신을 비교적 견지하고 있는 듯한 원희룡 의원조차도, 그 신념의 일관성에서는 고의원에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점에서 김 구와 장준하를 존경한다는 고의원의 말은 믿어도 될 것 같다. 그의 이념적 위치는 김 구보다는 다소 왼쪽인 자유주의적 우파 정도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는 왜 파쇼 정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에 입당했을까? 그는 한 인터뷰에서, DJP연합 이후 여야의 정치 노선에 큰 차이가 없어졌고, 그런 바에야 야당 내부에서 변화를 꾀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고의원이 한나라당 안에서 계속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면, 주류 정당 사이의 정치 노선 간극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큰 것 같다. 어쩌면 그가 현실 정치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꼬마민주당의 주류가 한나라당과 결합했다는 사실이 그의 한나라당행 결정에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 권력 핵심에서 다소 비켜나 있는 대로 여전히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과 굳건히 연계되어 있는 정파 내부에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었다는 그의 충정을 의심할 필요는 없겠다.

고의원이 한나라당에 계속 남게 될지, 아니면 언젠가 자의 또는 타의로 당을 떠나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정치인 고진화와 한나라당 사이의 관련은 앞으로의 한국 정치 전반에 큰 시사점이 될 것이다. 고진화 노선이 한나라당의 주류까지는 되지 못하더라도 그 안에서 하나의 의미 있는 흐름을 형성할 때, 한나라당은 온건보수 정당으로서 표준적 이데올로기 지형의 한 축을 떳떳이 담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고진화 노선이 한나라당에서 계속 핍박받는다면, 더 나아가 박멸된다면, 한나라당은 공화당과 유정회 이래 그들이 대표해온 냉전 수구 세력과 함께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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