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연예 산업을 움직 이는가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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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과 미디어리서치가 엔터테인먼트 업계 오피니언 리더 5백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이수만씨였다.

 
‘C-Korea, 문화로 부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 문화관광부가 ‘문화강국 2010’ 전략을 발표하며 내건 슬로건이다. 문화관광부는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2010년까지 세계 5대 문화산업 강국을 실현하겠다’고 공헌했다. 문화강국 한국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시사저널>은 한 달여 동안 엔터테인먼트 업계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시사저널>이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진행한 이번 조사에는 연예인·연예기획자(실장급 이상)·작곡가·감독·드라마 PD·드라마 작가·투자자/유통자/제작자·정책입안자/교수/연구자·문화부/연예부 기자·한류카페 회원 등 엔터테인먼트 업계 오피니언 리더 5백명(집단별 50명)이 참가했다.    

주로 영화·음반·드라마 세 부문을 조사한 이번 영향력 조사에서 1위는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이사가 차지했다. HOT와 SES로 대중 문화의 지형도를 바꾸고 한류를 태동시키고 보아를 아시아의 스타로 키워낸 그의 공적에 가요인은 물론 영화인과 방송인 모두 경의를 표했다.

2위부터 10위까지의 순위는 강우석·정훈탁(공동2위) 차승재 강제규 김종학 윤석호 박진영 박찬욱 정동채·배용준(공동 순위) 순이었다. 영향력 순위의 상위에 오른 인물들은 대개 한류 형성에 기여한 인물이다. 국내 업적보다 해외 업적을 더 높이 친다는 것에서 우리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국제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 하나 특성은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창작 능력을 정책입안자의 영향력이나 투자자의 자금력보다 높게 본다는 사실이다. 콘텐츠 제작자들이 10위권 순위를 독식한 가운데, 정책입안자 중에서는 정동채 문화관광부장관이 10위에 턱걸이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15위에, 신현택 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 이사장이 16위에 올랐다.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투자 회사인 CJ엔터테인먼트 박동호 대표와 이미경 부회장은 각각 11위와 12위를 기록했다.

특기할 점은, 불과 10년 전만해도 연예 권력을 독점하던 방송사의 영향력이 쇠퇴했다는 점이다. 방송사 사장이나 드라마국장·예능국장은 영향력 순위에서 한참이나 밀려나 있다. MBC 최문순 사장, KBS 정연주 사장, MBC 이은규 드라마국장 정도가 한두 번 언급되었을 뿐이다. 심지어 드라마 PD들도 영향력 있는 인물로 방송사 사장이나 드라마국장을 꼽지 않았다.

방송사가 독점하던 부와 명성과 권력은 이제 연예인과 연예기획자, 외주제작자에게 넘어갔다. 부는 연예인에게, 권력은 연예기획사에, 콘텐츠 제작 능력은 외주제작사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이번 조사로 파악할 수 있었다. 방송 권력 몰락은 대중 문화 주도권이 영화계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10위권에 든 인물 중에는 영화산업 종사자가 5명으로 가장 많았다. 드라마가 3명으로 그 다음이었고, 극심한 불황에 허덕이는 음반 업계는 2명만이 10위권 안에 들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10위권 안에 든 인물들이 음반 기획(이수만 대 박진영) 영화 제작(강우석 대 차승재) 연예 기획(정훈탁 대 배용준) 영화 연출(강제규 대 박찬욱) 드라마 제작(김종학 대 윤석호)을 놓고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라이벌 구도를 통해 우리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현황을 살펴보았다.

이수만(1위) 대 박진영(8위)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이사는 이번 설문 조사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영향력 1위를 차지했다. HOT·SES 신화로 국내 음반 시장을 평정한 그는 보아와 동방신기를 통해 아시아 음악 시장을 열었다. 지금도 SM엔터테인먼트 연습실에는 아시아 스타를 꿈꾸는 연습생들이 춤과 노래를 익히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요즘 구사하는 전략은 이이제이 전략이다. 현지인을 스타로 키워 현지 시장을 공략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SM엔터테인먼트는 그 전 단계로 기존 그룹에 현지 멤버를 추가하는 방법을 쓰고 있는데, 그룹 동방신기와 천상지희에 중국인 멤버를 추가한다.  SM엔터테인먼트 한세민 이사는 “SM에게 한국 시장은 여러 시장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제 아시아 시장에 통하지 않는 가수만 내보낸다”라고 말했다. 

포스트 이수만 체제를 준비하는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이사의 승부수는 가수 비다. 비 외에도 노을과 별, GOD와 임정희를 키워낸 그는 보이밴드와 걸밴드를 데뷔시켜 시장 지배력을 넓힐 예정이다. JYP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선수인 비가 보아와 다른 점은 멀티엔터테이너라는 점이다. 인기 드라마 <풀하우스>에 출연한 비는 드라마 한류 열풍까지 덤으로 얻었다.

JYP엔터테인먼트의 또 다른 강점은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아성인 미국 시장 진출에 한 발짝 앞섰다는 점이다. 박진영은 지난해 빌보드 앨범 차트 톱10에 오른 힙합 뮤지션 메이스의 앨범<Welcome Back>에 자신이 작곡한 <The love that you need>를 수록한 데 이어, 올해 앨범 차트 6위에 오른 윌 스미스의 앨범 <Lost and Found>에서도 <I wish I made that>을 작곡했다. 

박진영의 이런 활약은 비의 미국 시장 진출 전망을 밝게 해준다. JYP엔터테인먼트 홍흥성 대표는 “음악이 먼저 진출하면 가수가 진출하는 것이 훨씬 쉬워진다. 박진영씨가 확보한 교두보를 통해 비가 본격적으로 진출할 예정이다. 이미 피처링이나 듀엣곡에 참여하기로 했고 조인트 콘서트도 계획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비는 내년에 일본 중국 타이완 몽골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을 거쳐 미국 LA와 뉴욕까지 포함하는 월드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음반 업계에서 이수만과 박진영에 이어 영향력 수위에 오른 사람은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이사(14위)였다. YG엔터테인먼트는 런던을 시작으로 보스턴·뉴욕·홍콩·싱가포르 다섯 도시에서 해외 투자자들과 만나는 '로드쇼(Road Show)'를 열고 있다. 세계적인 기관투자가들과 만나 한국 음악과 음악산업을 소개하는 이번 로드쇼는 CLSA증권이 개최했다. 이외에 김광수 GM기획 대표와 가수 서태지가 공동 16위에, 변대윤 예당엔테인먼트 대표가 20위에 올랐다.

강우석(2위) 대 차승재(4위)

 
자타가 공인하는 영화계의 지존 강우석 시네마서비스 대표는 전체 엔터테인먼트 업계 영향력 2위를 기록했다. 강대표가 사업가로서 보여준 역량은 시대를 앞서는 것이었다. 영화산업이 판갈이를 할 때마다 그는 선두에 서서 새 판을 주도했다. 로커스 홀딩스·플래너스·CJ엔터테인먼트 등 새로운 투자가들이 들어설 때마다 협력과 견제를 통해 입지를 강화했다.

스스로가 흥행 감독이면서 김상진 장윤현 등 흥행 감독을 거느리고 있는 강대표의 파워는 바로 흥행 능력이다. 그러나 씨네마서비스가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이 예전만 못하고 싸이더스HQ와의 갈등 때문에 스타 동원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은 약점으로 꼽힌다. 최근 최민식·송강호 씨에게 공개 사과를 해 그의 리더십은 큰 상처를 입었다. 그가 안팎의 시련을 어떻게 극복할지 관심을 모으는 시기이다.

 강우석 대표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는 바로 싸이더스픽쳐스 차승재 대표다. 강대표와 차대표의 영향력은 백지 한 장 차이로, 연예인과 정책자를 제외한 제작자와 기획자만의 영향력 순위에서 차대표는 강대표를 앞섰다. 특히 KT가 2백5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그의 주가가 오르고 있다.

동갑내기인 강대표와 차대표의 리더십은 정 반대 모습으로 나타난다. 승부사 강우석이 카리스마형이라면 뚝심맨 차승재는 포용형 리더다. 강대표의 카리스마에 상처가 난 상황에서 차대표의 포용력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강대표 계열이었던 좋은영화(대표 김미희)를 합병함으로써 그는 영화계의 무게 중심을 자신 쪽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차대표는 영화 배급 시장에 적극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투자와 제작 능력에 이어 배급력까지 갖춘다면 그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그러나 싸이더스픽쳐스의 영화들이 독특한 영화적 실험에도 불구하고 흥행 파워가 약하다는 점은 약점으로 꼽힌다. <살인의 추억>말고는 이렇다 할 흥행작을 내지 못했고, 대작 <역도산>과 <남극일기>가 연거푸 흥행에 실패했다. 

정훈탁(2위) 대 배용준(10위)

전지현 정우성 조인성 박신양 송혜교 이미연 염정아 김선아 지진희 차태현 등 최고 스타들이 소속된 싸이더스HQ의 지주 회사인 IHQ의 정훈탁 대표는 강우석 대표와 함께 영향력 2위로 꼽혔다. 정대표는 영화계에 적이 많다. 스타의 몸값 상승과 지분참여 문제를 제기한 영화제작자협회의 기자회견도 사실상 그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만큼 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싸이더스HQ는 매니지먼트 업계의 삼성으로 통한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기도 하지만 관리형 리더십을 보인다는 점도 닮았다. 나서지 않고 은인자중 행보를 보이는 정훈탁 대표는 스타 관리에 빈틈이 없다. 부침이 많은 매니지먼트 업계의 속성에도 불구하고 싸이더스HQ의 연예인 중에는 설경구와 정진영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연예인이 없었다.

상품성 있는 스타를 만드는 역량이 뛰어난 정대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비즈니스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SKT로부터 1백40억여원의 투자를 끌어낸 그는 영화 제작에서 배급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영화제작사 아이필름, 영화배급사 아이러브시네마, 드라마제작사 캐슬 인더스카이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그의 영향력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정대표의 역량을 대내외에 과시한 작품이었다. 비록 영화 완성도에서는 혹평을 받았지만, 이 영화는 홍콩 자본으로 제작해 일본에서 수익을 내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형을 영화인들에게 보여주었다. 정대표는 <무간도>의 류이강 감독을 영입해 <데이지>를 제작하고 있다.

그러나 정훈탁 대표에게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전지현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한류 스타가 없다는 점이다. 배용준을 비롯해 장동건 원빈 같은 한류 스타는 매니지먼트 회사에 속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을 보좌해 줄 기획사를 따로 세웠다. 마치 전성기의 서태지가 서태지컴퍼니를 세워 자신의 신화를 이어갔듯이 이들 역시 자신에게 맞는 맞춤형 기획사를 만들었다.

배용준이 설립한 BOF가 바로 대표적인 경우다. 배용준은 BOF를 설립해 자신을 전문으로 보좌하고 체계적으로 팬 관리를 할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한 전문 인력을 통해 자신과 관련된 각종 저작권을 확보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BOF의 행보에 많은 스타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연예인들만 따로 조사한 엔터테인먼트 영향력 순위는 배용준 보아 장동건 비 이병헌 이영애·전지현·최지우(공동 6위) 권상우 송강호 순으로 나왔다. 대부분 한류 스타로 등극한 스타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했는데, 일본에서 한류 4대 천왕으로 꼽히는 원빈은 순위권 내에 보이지 않았다. 

강제규(5위) 대 박찬욱(9위)

<태극기 휘날리며>로 다시금 영화계 대형 슬로거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강제규 감독은 5위에 올랐다. 강감독은 유난히 대형 프로젝트에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로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전형을 만든 그는 해외 수출에도 적극 나서 한국 영화가 한류의 한 축을 담당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그의 영화는 ‘유사 할리우드’라는 비난을 듣고 있기도 하다.

<공동경비구역 JSA><올드보이>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작품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대안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올드보이>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그는 한국 영화가 갖는 진정성을 보여줌으로써 한류의 위상을 높였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한국 영화의 나침반이었다.

연출 역량 외에 박감독이 주목되는 이유는 뚜렷한 계보를 형성하고 있다. 김지운 봉준호 최동훈 이필성 류승완 등 ‘앙팡 테리블’ 감독들의 모임에서 그는 좌장 노릇을 하고 있다. 그를 중심으로 최민식 송강호 유지태 이병헌 신하균 배두나 강혜정 같은 배우들과 최고의 영화 스태프가 결합되어 있어 그의 영향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종학(6위) 대 윤석호(7위)

방송 3사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드라마를 제작하는 김종학프로덕션의 김종학 대표와 가장 센 한류 드라마 <겨울연가>를 제작한 윤석호 PD는 나란히 영향력 6위와 7위로 꼽혔다. 김종학프로덕션이 배용준을 캐스팅해 제작하는 <태왕사신기>와 윤석호 PD가 100% 사전 제작으로 촬영 중인 <봄의 왈츠>는 한류 드라마 중에서 최고의 빅카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로 최고의 드라마 PD로 떠오른 김종학 대표는 김종학프로덕션을 세워 드라마 수주를 가장 많이 하는 외주제작사로 키워냈다. 최근 <풀하우스>와 <해신>이 연거푸 흥행에 성공하면서 김종학프로덕션은 제2의 도약기를 맡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외부 자본을 끌어들여 사업 다각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겨울연가>로 최고의 드라마 PD로 떠오른 윤석호 PD는 수성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가을동화>와 <겨울연가>로 개척한 시장을 지켜내겠다는 것이다. <봄의 왈츠>도 2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의 아줌마 계층을 겨냥해서 제작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통하면 아시아에서 통하고, 아시아에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한다는 것이 윤PD의 생각이다. 편당 제작비가 2억8천만원 정도 투입된 <봄의 왈츠>를 윤PD는 100% 사전 제작해서 방영할 예정이다.

윤PD는 2004년 6월에 윤스칼라를 설립했는데 경영과 제작을 분리했다. 윤스칼라는 원 소스 멀트 유즈 전략을 통해 적극 경영을 도모하고 있다. 자사 제품으로 파생한 부가 가치는 모두 수익으로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윤스칼라는 화이트(사회복지) 레드(인테리어) 그린(출판/여행) 오렌지(이벤트) 옐로(모바일 등 뉴미디어) 사업부를 두고 아시아 최고의 ‘콘텐츠 매니지먼트’ 기업을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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