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DJ는 원죄 짓고 노무현은 ‘허송 세월’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5.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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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누가 어떻게 얼마나 망가뜨렸나

 
급기야 간판을 내리는가. 국정원이 기로에 섰다. 사실 국정원이 존폐의 기로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 말 대선 때도 국정원폐지론이 도마에 올랐다.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나란히 ‘집권하면 국정원을 해체하고 해외정보처를 신설하겠다’는 요지의 공약을 내걸었다. 그때도 발단은 불법 도청 시비였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고 나서 국정원은 폐지 대신 ‘탈정치화·탈권력화’를 표방한 순수 정보기관으로 변신하는 길을 택했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요즘 국정원폐지론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발목을 잡은 레퍼토리는 또 불법 도청이다. 

국정원 직원 “힘 빠져서 못해먹겠다”

과연 국정원은 이번에도 위기를 모면하고 그동안 걸어온 궤도를 되찾아갈까.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3년 전 국정원폐지론이 나왔을 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당시는 대선 국면이어서 국민들도 후보 선호도에 따라 국정원의 운명을 바라보는 시각이 갈렸다.

 
그러나 지금은 보호막이 없어졌다. 여야는 한목소리로 이번에는 기필코 국정원을 해체한 뒤 새로운 정보기관을 만들거나 적어도 국내 파트를 폐지하자고 나섰다. 국정원 직원들이 보호막을 쳐주리라고 보았던 노무현 대통령마저 거리를 두고 있다. 특히 지난 8월8일 노대통령이 한 발언은 국정원 안팎의 한가닥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노대통령은 이 날 기자간담회에서 (참여정부 들어) 국정원 안에서 도청이 있었는지 검찰 조사까지 해보자고 말했다. 국정원 수뇌부가 ‘DJ 정부까지 국정원에서 조직적인 불법 도·감청이 이루어졌지만 참여정부 들어서는 근절되었다’고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는 선에서 사태가 수습되리라 기대했던 국정원 직원들은 당혹감에 빠졌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국정원 내부 기류도 급격히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국정원 국내 파트에서 일하는 한 요원은 “이제 서서히 짐을 싸자는 자조 섞인 말이 나돌고 있다”라고 뒤숭숭한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국제범죄 담당 부서의 요원은 “힘  빠져서 도저히 못해먹겠다며 다들 일손을 놓고 있다”라고 말했다.
거듭되는 정보기관 존폐 논란과 그 안에서 일하는 정보요원들의 심리적 공황 상태는 국익을 위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런 사태를 수습할 책임은 노대통령에게 있다.

노대통령은 국정원을 탈정치화·탈권력화해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기구로 만든다는 구상으로 재야 법조인이던 고영구 변호사와 개혁적 인물로 꼽히던 상지대 서동만 교수를 각각 국정원장과 기조실장으로 임명했다. 국정원 개혁 사령탑을 맡은 고원장과 서실장은 초기부터 국내 파트인 정보와 수사 분야 조직을 대폭 축소하고 잉여 인력을 해외 파트로 재배치했다. 또 4,5급 직원 위주로 조직 진단 테스크포스를 구성해 기획 지원 분야 조직을 진단한 뒤 4급 이상 인력의 15.6%를 감축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2단계 인사에 착수해 넘쳐나는 3급 이상 고위직을 24%나 감축하는 조직 슬림화 작업도 벌였다.

올해 들어서는 악역을 맡았던 과거의 잘못을 털어내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겠다며 과거사진실위원회를 출범시켜 과거 중앙정보부와 안기부 시절 정보기관이 간여한 7대 의혹 사건을 조사하도록 했다.

 
그러나 참여정부 들어 국정원이 변화의 기치를 내걸고 시도해온 이런 일련의 노력은 또다시 불법 도청의 덫에 걸려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이렇게 보면 지난 2년 동안 고영구 원장을 기용해 노대통령이 추진해온 국정원 개혁 작업은 미래 지향적 구호와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것을 반증한다. 국민이 시급하게 털어내야 한다고 본 국정원의 과거는 불과 4~5년 전 발생한 불법 도청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국정원이 30~40년 전에 잘못한 사건을 집중 고백하면서 거듭나고 있다고 주장했고, 국민은 이를 눈 가리고 아웅한다고 본 것이다.

국가 정보기관을 오늘날 이처럼 만신창이로 만든 근원은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직무유기로 거슬러올라간다. 그 밑에서 국정원을 사조직처럼 이용한 가신이나 측근들의 각종 불법 행위가 문제였다. 그러나 대통령 직속 기관이라는 점에서 두 전직 대통령이 ‘나는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는 말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YS·DJ 편파 인사 ‘해도 너무했다’

먼저 YS는 집권하자마자 안기부에 대대적인 자기 사람 심기 인사를 단행해 편파 인사 시비를 불렀다. 집권 초기 국장급 이상 간부 90% 이상을 경남 출신 인사들로 교체했던 것이다. 이어서 소통령으로 불리며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YS의 차남 현철씨가 안기부 내에 정권 안보를 위한 별동대 격인 실세 사조직을 꾸려서 움직이면서 그 폐해는 극에 달했다. 최근 불법 도청 테이프 파문을 일으킨 공운영 미림팀장도 바로 현철씨와 사조직으로 연결된 오정소 당시 대공정책실장의 심부름을 하던 인물이었다. 현철씨를 통해 일거에 차장 자리에까지 오를 만큼 초고속 승진을 한 오씨는 당시 안기부 내 같은 영남 출신 사이에서도 ‘해도 너무한다’는 원성을 들을 정도였다.
안기부의 일탈은 1997년 대선 때 극에 달했다. 당시 권영해 안기부장은 DJ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불법 도청 조직과 대공 파트 핵심 요원들을 동원해 북풍공작을 직접 지휘했다.

과거 정보기관 정치 공작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할 DJ는 정보기관을 제대로 개혁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집권 초기에는 안기부 명칭을 국정원으로 바꾸고 과거 정권에서 정치에 개입했던 간부들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다. 이종찬 국정원장은 YS 시절 김현철에게 줄 댄 이들과 대선 때 여당 후보 지원 등 정치에 개입한 혐의가 있는 직원을 색출해 내보낸다는 명분으로 일거에 5백80여 명을 해직했다. 그러나 초기만 해도 호남 출신이 인사 전횡을 일삼지는 않았다. 이종찬 원장은 물론 인사와 예산을 다루는 문희상 기조실장도 호남 출신이 아니어서 지연을 바탕으로 한 ‘끼리끼리’ 정서는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극성스런 일부 호남 출신 간부들은 이런 인사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들은 DJ 정권 초기부터 동교동계 실세들과 음양으로 줄을 대면서 살생부를 만들었다. 이종찬 원장이 살생부를 집행했지만 그 빈자리를 호남 일색으로 채우지 않자 동교동계와 국정원 일각에서는 이종찬이 차기 대권욕을 가지고 비호남 출신들을 규합해 자기 세력으로 만들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원장은 결국 낙마하고 천용택 원장으로 교체되었다.

천원장 체제가 들어서자 국정원 인사는 호남 일색으로 나아갔다. 김은성 2차장도 이무렵 등장했다. 천원장 때부터 국정원 인사는 표 나게 일그러졌는데, 국장급 이상 간부 자리만이 아니라 직원 신규 채용에 이르기까지 편파 인사는 극에 달했다. 국정원 안팎에서는 당시 ‘종자론’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는 신입 직원도 60~70%를 호남 출신으로 채우는 인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렇게 구축된 편중 인사는 이후 임동원 원장 체제에서 더욱 강고해졌다. 임원장은 대북 정책에 몰두하느라 국내 파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마침 이 시기는 기업 구조 조정과 벤처 열풍이 극에 달할 때여서 국정원 내에서 동교동 사단의 비리 및 게이트로 폭발할 환경이 내재되어 있었다. 결국 2001년 말 김은성 2차장·김형윤 경제단장·정성홍 경제과장 등 사실상 동교동 실세들의 사조직 역할을 한 국내파트 경제단 쪽에서 비리가 터져나와 줄줄이 구속되면서 국정원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뒷수습을 위해 들어선 신 건 원창 체제는 전남에서 전북으로 인사의 주도 세력이 바뀌는 과정이었을 뿐 지역 편중 인사 난맥상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을 수는 없었다.

 이후 대과 없이 2002년 대선을 거치면서 참여정부를 맞이한 국정원은 비로소 개혁다운 개혁을 할 기회를 맞았다. 고영구 국정원장과 서동만 기조실장이 투입되어 이 작업에 착수했다.  이들은 편중된 인사를 둘러싸고 패일대로 팬 호남과 비호남 출신 사이 내부 갈등의 골을 메우는 것이 개혁의 급선무라고 보고 먼저 간부 인사에 손을 댔다. 조직 개편을 통해 1, 2급 부서장을 대거 물갈이하고, 1974년 입사한 공채 10기 이상을 모두 부서장에서 보직 해임해 대기 발령했다. 대신 그 아래 기수인 11~13기를 1급으로 승진시켜 발탁했다.

 
그러나 국정원 개혁 추진 과정에서 고원장과 서실장은 인사의 속도와 폭을 놓고 결국 충돌했다. 국정원 개혁의 성패가 인사에 있다고 본 서실장은 세대 교체와 지역 편중 인사의 전면적 쇄신책을 주장한 반면 고원장은 조직 안정을 내세워 점진적 교체를 고집했다. 이 과정에서 고원장이 서실장의 견해를 무시한 채 노대통령과 단독 면담에서 재가를 얻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간부를 발령하자 충돌은 극에 달했다.
이에 대해 서동만 전 실장은 “부서장 인사에 문제가 있었다. 인사위원회에서 내가 문제 제기를 했으나 수용되지 않고 거꾸로 문제제기 자체를 고원장이 문제 삼아 결국 그만두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결국 둘 사이의 갈등이 심각하게 표출되자 노대통령은 지난해 2월 고원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노대통령의 이런 선택은 적어도 당시까지는 국정원 기득권 세력을 흔들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세대 교체를 통해 국정원의 근본적인 변화를 바라던 이들은 당시 서동만 기조실장 낙마가 국정원 일각의 개혁 저항 세력의 승리라고 보고 있다. 서실장은 당시 젊고 변화를 바라는 직원들에게 호평을 받는 대신 고위 인사들에게는 항상 긴장을 심어주는 껄끄러운 존재였다. 결국 반서동만 정서를 가진 일부 호남 인맥이 조직적으로 반발하면서 고원장을 편들어 그를 밀어냈다는 것이다. 이후 서실장 후임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무색무취한 김만복 국가안보회의(NSC) 정보관리실장이 기용됨으로써 노대통령이 개혁보다는 조직 내부 동요를 잠재우려는 했다는 해석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노대통령, 국정원 개혁 방향 다시 잡아야

이후 고원장과 김실장이 국민의 신뢰를 받겠다며 주도한 진실위원회를 통한 과거사 청산과 같은 개혁 작업은 최근 도·감청 의혹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면서 결과적으로 헛다리를 짚은 꼴이 되고 말았다. 김만복 실장은 지난 8월5일 대국민 사과 성명을 통해 ‘2002년 3월 이후 국정원은 불법 도·감청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 국민은 참여정부에서도 국정원이 불법적인 도·감청을 해왔으리라고 믿고 있다. 현행 개혁 정책과 국정원 체제로는 높은 불신의 벽을 쉽사리 넘어설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정원은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내부적인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다. 서동만 전 실장이 개혁 기조로 주장했던 폭넓은 인사를 통한 세대 교체가 무산되면서 티오가 없어진 후진의 불평 불만이 극에 달한 탓이다. 여기에 도청 파문으로 외부에서 존폐론까지 거론하고 있어 한마디로 내우외환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형국이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므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대통령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도청 파문을 계기로 노대통령은 그간 추진해온 국정원 개혁 방향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국민이 바라는 대로 국가 정보기관을 근본적으로 환골탈태시키는 일이다. 국민은 눈가림식 정보기관 개혁은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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