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법정에서 싸워봅시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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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전대통령 관련 단체 국정원 과거사위 고발…김지태씨 유족도 소송 준비

 
정치권 외곽에서도 정수장학회 문제가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소송전과 입법전이다. 정수장학회 전신인 부일장학회를 설립한 고 김지태씨의 유족은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단체들, 정수장학회가 지분을 갖고 있는 언론사들, 시민단체들의 움직임도 기민하다. 사안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9일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광고가 실렸다. ‘우리는 국정원 진실위를 사직 당국에 고발했습니다’라는 제목이었다. 지난 7월23일 국정원 과거사위가 발표한 내용을 전면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김지태씨를 수사하라고 지시한 증거가 어디 있는가. 부일장학회의 재산은 한푼도 정수장학회에 보태진 것이 없다. 또 6월20일 이루어진 재산 기증 날짜가 6월30일로 조작되었다고 했는데, 정수장학회에 보관 중인 문서에는 제대로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현정권이 추진하는 과거사 정리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허물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7월29일 이한수 회장 이름으로 오충일 과거사위 위원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한수 회장은 “과거사위는 사실을 확인해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데 ‘타당하다’는 식의 추론만 하고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헐뜯기 위한 공작이라고 판단했다. 간부 회의를 열어 소송을 하기로 결정했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광고는 겉으로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되어 있지만 민족중흥동지회·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5·16민족상 등 여러 단체가 연합해서 낸 것이다. 이한수 회장은 “우리 이름으로 냈지만 5·16 관련 여러 단체가 연합해서 모금했다. 앞으로도 두 번 정도 더 광고를 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 과거사위 간사를 맡고 있는 가톨릭대 안병욱 교수는 “예상했던 일이다. 신경 쓰지 않는다. 검찰이 피고발인 조사를 한다면 가서 사실대로 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효’ 문제가 가장 중대한 변수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한 광고는 고 김지태씨 유족을 자극했다. 한 유족은 “광고를 보는 순간 이것은 박정희 세력의 공격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도 모를 리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애초 유족은 정수장학회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갈 생각은 없었다. 근대화를 일군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나름의 존경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임이 정수장학회 사건과 관련해 먼저 소송을 했기 때문에 유족도 마음을 바꾸었다. 한 유족은 “상황이 질적으로 변했다. 우리도 소송을 하기 위한 법률 검토에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이미 변호사 사무실 두 곳에서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 중앙정보부, 현 정수장학회 이사진이 소송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족이 소송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에 중대한 변수가 되는 것이 ‘시효’ 문제다. 지금대로라면 정수장학회 문제와 관련한 모든 법률적인 시효는 끝났다. 그러나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한 ‘국가 권력에 의한 불법 행위의 시효 배제’가 법조계의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경우 상황이 일거에 변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8월18일 신임 대법원장으로 내정된 이용훈 변호사가 기자회견에서 “국가 권력에 의한 불법 행위에는 소멸 시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라고 말한 것이나, 앞으로 대법원의 대법관 구성이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의 인물들이 많이 진출할 것으로 점쳐지는 것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관련 단체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은 김종규 부위원장이 위원장을 맡아 가칭 ‘정수장학회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만들었다. 정수장학회와 관련이 있는 부산일보·경향신문·MBC 노조위원장은 지난 17일 서울에서 모임을 갖고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정수장학회가 30%의 지분을 갖고 있는 MBC 노동조합도 지금까지 소극적이었던 데서 벗어나 앞으로 적극 행보하기로 했다.

언론노조는 조만간 국회에 ‘특별법’을 청원할 계획이다. 이미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과거사법’을 보완해 정수장학회 문제를 비롯한 여러 과거 사건들을 해결하자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언론노조 관계자는 “열린우리당 조성래 의원이나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 등을 통해 청원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산 지역 40여개 시민단체가 연대해 만든 공대위는 전국 조직으로 확대하고 있다. 공대위 정순영 집행위원장은 “8월 말을 목표로 전국의 지역·시민·사회 단체들과 연대 틀을 만들어가고 있다. 정수장학회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국민들의 서명 작업도 벌이고, 가을에는 서울에서 토론회도 열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해결하기가 힘들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시민단체와 유족은 정수장학회 문제에 여권이 큰 관심을 갖고 쟁점화하는 것을 우려하는 흐름도 있다. 여권이 이 문제를 주도하는 모양이 되면 정치 공방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수장학회의 궁극적인 모양에 대해서도 약간의 시각차가 있다. 유족이 소송을 낸다는 것은 소유권을 되찾겠다는 의미가 있다. 물론 소송에서 이긴 뒤 다시 사회에 기부하는 모양을 취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별개다. 유족이 여럿 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의견이 갈릴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어떤 경우든 유족에게 소유권이 돌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상징적으로 유족 1~2명이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골간은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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