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문에, 경영난에 일그러진 육영재단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5.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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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 박근령씨 되는 일 없어

 
지난 7월31일 서울시 광진구 주민 유재경씨(32)는 여섯 살·아홉 살 난 조카들을 데리고 오랜만에 서울시 능동 어린이회관을 찾았다. 광진구에서 자란 유씨에게 어린이회관은 단골 소풍 코스로 추억이 가득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 날 유씨는 회관 시설을 보고 경악했다. “과학관 전시물은 20년 전 그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회관 주변은 황량했고, 공사를 하다 말고 방치된 자재가 널려 있어 위험했다.” 꿈의 전당이라던 과거의 명성은 온데 간 데 없었다. 유씨는 “교육 사업은 뒷전인데 정작 회관 예식장은 사람들로 붐비며 번창했다. 주객이 바뀐 거 아니냐”라며 답답해 했다.

요즘 어린이회관을 운영하는 육영재단과 이사장 박근령씨에 대해 할말 있는 부모들이 많다. 8월19일 학부모 30여명이 육영재단 사무실에 모였다. 재단이 주최한 국토순례단 행사중 발생한 집단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 부모들이었다. 지난 7월23일부터 13박14일 동안 치른 어린이 국토순례 행사에 참가한 98명 가운데 15~16명이 총대장(단장) 황 아무개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여학생들이다. 지난 8월5일 육영재단 박근령 이사장은 피해 학부모들에게 “그래서 (피해 학생들이) 애라도 뱄어요?”라고 말했다가 부모들과 충돌하기도 했다. 8월19일 성희롱 가해자 황씨는 육영재단 본관에 모인 피해자 부모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했다. 피해자 대표로 육영재단을 고소한 한 피해자 부모는 “그동안 속으로 가슴앓이를 하던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고 성추행 사실을 추가로 폭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육영재단은 황씨가 현직 고등학교 선생이고 육영재단 직원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대통령의 딸, 박근령 이사장이 벼랑에 서 있다.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은 박근혜 한나라당 총재의 동생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딸이다. 본명은 박근영(槿暎)인데 이름을 서영(書永)으로 바꾸었다가 최근 다시 근령(槿令)으로 개명했다.
이름을 바꾼 이유는 좋은 운을 얻기 위해서라는데, 요즘 그녀 주변은 전혀 운세가 좋지 않다. 국토순례단 성추행 사건에 이어 손기정 금메달 파문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8월 초 광복절을 앞두고 육영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고 손기정씨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의 행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육영재단 간부가 “금메달은 육영재단이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말한 것이다. 사태가 커지자 육영재단은 8월17일 부랴부랴 일부 언론사에 메달을 공개해 파문을 진화했다. 육영재단측은 “새로 부임한 임원이 착오로 말을 잘못했다. 메달은 재단이 잘 보관하고 있다.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 손기정 기념관을 개관하지 않아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서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손기정 기념재단 사무국장 이준승씨(고 손기정씨의 유족)는 “기념관을 개관하겠다는 약속을 10년이 넘도록 지키지 않고 있다. 과연 육영재단이 진짜 기념관을 개관하려는지 의심스럽다”라고 말했다.

 
요즘 육영재단 주변에서 벌어지는 각종 추문은 박근령 이사장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박근령 이사장의 진짜 고민은 육영재단의 경영난과 교육청의 이사장직 승인 거부에 있다. 현재 육영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자산은 광진구 능동 어린이회관 부지 3만1천2백평과 건물 4개 동이다. 주변 시가를 고려해 평당 2천만원으로 계산하면 자산이 6천억원이 넘는 셈이다. 육영재단은 과학전시관·유치원·수영장·근화원(예절교육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 육영재단은 한 해 방문자가 60만 명이고 유치원생이 6백여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막대한 자산 규모와 달리 재정 상태는 좋지 않다. 육영재단의 주요 재원은 입장료 수입과 임대 수입이다.

월급 몇 달째 못 받은 직원 많아

이 중 예식장·식당·주차장 등 임대 수입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다. 재단측은 한 해 매출 30억원 가운데 20~30%가 예식장 수입이며 당기순이익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육영재단 심용식 대변인은 "월급을 몇 달째 못 받는 직원이 많을 정도로 경영이 악화하고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현재 어린이회관 부지인 능동 18-10 외 3필지는 2005년 4월4일부로 강제 경매에 들어간 상태다.

육영재단을 먹여살리는 ‘효자 사업장‘인 예식장은 문화관과 무지개극장에 있다. 원래 시청각실이던 곳을 개조해 예식홀로 만들었다. 주변 예식업자들에 따르면, 봄·가을에는 예약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성동교육청 평생교육과 관계자는 “교육 공익 재단은 교육 목적 외에 사업을 할 수 없다. 예식장은 허가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육영재단측은 “검찰청과 같은 공공기관도 예식장을 운영하는데 우리만 못한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회관 문화관 앞 부지는 유료 주차장으로 쓰인다. 문화관에는 교육과 무관한 여러 사무실이 입주해 임차료를 내고 있다. 회관 서쪽 운동장 부근에는 ‘수학 체험관’이라는 가건물이 지어져 외부인이 임대 사업을 하고 있다. 수학체험관 역시 교육청 허가를 받지 않은 미승인 사업이다.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육영재단이 생각한 또 하나의 방법은 골프연습장 건립이었다. 올해 3월 서울시에 골프연습장 건립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회관 서쪽 야외 수영장과 눈썰매장을 허물고 이 자리에 3층짜리 골프연습장을 짓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는 고도제한 등의 문제가 걸려 심의에서 거부되었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인지 회관 시설은 방치되어 있었다. 수학체험관 옆 야외 수영장 주변에는 공사 자재가 쌓여 있었다. 과학관에 전시된 과학 기술 발전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는 1980년대까지 소개된 이후 끊겨 있었다.

 
육영재단 운영이 부실한 것은 방만한 경영 탓이다. 육영재단의 임원진 가운데에는 여전히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과 연결된 인물이 많다. 김문구 실장은 대통령 경호실 출신이다. 육영재단 총무부장으로 있는 박용규씨는 박이사장의 5촌 조카다. 박근영 이사장의 제왕 경영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해 육영재단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문서에 사무국장 전결이 거의 없다. 이사장 외에 2인자를 찾기 힘들다. 이사장 말 한마디가 절대적이다”라고 주장했다.

박근령 이사장은 법원 판결에 따라 이사장 직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 성동교육청은 지난해 12월24일 이사장 취임 승인을 취소했다. 공익 법인인 육영재단이 교육청의 지도 감독을 거부하는 데다 예식장 등 교육과 관련 없는 미승인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승인을 취소한 이유다.
성동교육청이 박근령 이사장의 직위를 취소한 것은 2001년에 이어 두 번째다. 취소 이유는 지금과 똑같이 미승인 사업 운영이었다. 육영재단은 ‘교육청이 대통령령에 의해 공익 법인 이사장을 해임시키는 행위가 위헌이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해 지난해 8월 위헌 판결을 받았다. 결국 2004년 10월25일 성동교육청은 이사장 직을 승인했고 박근령 이사장은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박근령 이사장의 위기는 지금부터다. 성동교육청은 “최근 언론 기사를 보면 마치 법적 공방이 작년에 다 끝난 것처럼 보도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문제가 되었던 위헌 법률은 이미 개정되었다. 위헌 판결은 법률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지 이사장 취소가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었다”라며 승소를 자신했다. 박근령 이사장은  성동교육청의 두 번째 승인 취소에 대해 올해 1월 행정법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육영재단 관계자는 “우리 재단의 지도 감독권은 성동교육청이 아니라 서울시 교육청에 있다”라고 밝혔다.
성동교육청은 “어린이회관 실태 점검을 위해 방문했지만 재단측이 협조를 거부했다. 지금 육영재단이 어떤 사업을 벌이고 있는지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국토순례단 성희롱 파문은 이런 와중에 일어났다. 공익 법인이 외부 감시의 사각지대로 피한 사이에 어린이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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