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의 벽 끝내 못넘고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5.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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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모 전 국정원 감찰실장의 기구한 운명
 
 이건모 전 감찰실장은 국정원에서 특정지역 편중 인사 시비가 그치지 않았던 DJ 정부 때 비호남 출신(충청도) 중 이례적으로 장수한 간부로 꼽힌다. 초대 이종찬 국정원장 임기 말에 감찰실장을 맡은 이씨는 천용택, 임동원 원장 시절에 이어 마지막 신건 원장 초까지 3년여 동안 자리를 지켰다.

 불법 도청 테이프 사건 진실의 열쇄를 쥔 인물로 최근 검찰 조사를 받으며 뉴스 인물이 된 이 전 실장은 국정원 안팎에서 일찍부터 다른 이유로 풍운아적 인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감찰실장 재직 기간 동안 이씨는 동교동계 실세 인사들과 줄을 댄 호남출신 일부 간부의 전횡을 견제하는 악역을 맡았다가 결국 이들의 반격에 지방으로 좌천되는 운명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는 1999년 5월경 천용택 국정원장이 부임하자마자 목포상고 출신 4인방으로 불리며 득세하던 일부 국정원 간부들의 비위 조사서를 들이밀어 이들을 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씨의 두 번째 ‘거사’는 신건 원장이 막 부임했던 2001년 4월에 이루어졌다.  당시 그는 새롭게 부상한 호남출신 실세 간부들에게 도전장을 냈다. DJ의 아들 김홍일 의원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각종 권력형 이권 사업에 개입하고 있던 국정원 경제단 소속 일부 간부들에 관한 비위 자료를 들고 신원장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가 당하고 말았다. 김형윤 경제단장과 정성홍 경제과장 등이 개입된 광범위한 벤처 비리 내사 자료가 신원장에게 넘어가자 이들은 김은성 2차장에게 구명을 요청했다. 그러자 당시 국내파트 담당 실세로 국정원 내 호남 인맥의 대부 격이던 김은성 2차장이 개입해 이건모 감찰 실장을 전격적으로 광주지부장으로 쫓아 내려보냈다.

특이한 사실은 신건 원장도 국정원 초창부터 정성홍씨 등의 전횡을 알고 있었지만 뒤에 버틴 막강한 힘 때문에 제대로 손을 쓰지 못했다는 점이다. 신원장은 DJ정권 초기 국정원 2차장일 때 정씨를 내보내려고 강제해직자 명단에 집어넣었지만 정씨는 막강한 뒷배경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았다. 김홍일 의원이 호남 조폭 출신 사업가 여운환씨와 대검 공안부장 등을 대동하고 제주도 휴가를 간 사실이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는데 당시 이들을 접대한 이도 정성홍 전 과장이었다.

정보대학원과 제주 지부를 전전하던 정씨는 신건 2차장이 국정원을 떠난 뒤 화려하게 복귀했다. 정보관리국을 거쳐 경제과 과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김은성 2차장의 측근으로 이때부터 온갖 이권에 개입하며 물의를 일으키던 정과장은 건 원장이 다시 부임하는 순간에는 무시할 수 없는 힘을 업은 실세 노릇을 하고 있었다. 결국 신원장도 그 힘앞에 어쩌지 못하고 오히려 이들의 비위 감찰 자료를 보고한 이건모 실장을 좌천시켜야 했다. 속수무책이던 신원장이 정성홍 전 과장을 비롯해 벤처 비리에 연루된 경제단 간부들을 대대적으로 정리할 기회를 맞은 때는 언론들이 이른바 ‘김은성 정성홍 게이트’를 파헤치기 시작한 2001년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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