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우승 독식하는 거대한 스포츠 제국
  •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
  • 승인 2005.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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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싹쓸이해 최강 전력 구축…비인기·개인 종목에 통 크게 투자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자다’라는 말은 스포츠 세계에서 진리로 통한다. 그런 의미에서 각 종목에서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 있는 ‘삼성 스포츠단’은 대한민국 최강의 스포츠 단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성 스포츠단은 세계 최강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스타 플레이어들을 막대한 자금으로 끌어모아 단기간에 좋은 성적을 올리는 삼성식 방법은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삼성 감독 되는 것이 감독들의 소원”

삼성이 운영하고 있는 스포츠 팀들은 숫자나 실력 면에서 국내 최강이다. 프로 야구와 프로 축구 같은 프로 종목은 물론 레슬링 탁구 배드민턴 승마 골프 럭비 등 비인기 종목도 포함되어 있다. 선수와 지원 인력을 포함한 총인원은 14개 팀 5백명에 육박하는 국내 최대 규모다.

배구는 창단 이래 줄곧 최강자의 위치를 굳혀 왔다. 여자 프로 농구도 여러 차례 우승한 경험이 있다. 프로 축구도 지난해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 야구도 2003년 시즌, 대망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올 시즌 정규 리그 우승도 확정적이다.
삼성이 이같이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배경은 물론 막강한 재력의 뒷받침이다. 탄탄한 조직력과 자금을 바탕으로 선수와 선수단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될 성싶은 선수를 스카우트해 올 수 있는 것도 풍부한 재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른바 ‘스포츠는 돈이 있어야 한다'는 명제가 실감 나는 대목이다. 일단 스카우트한 선수는 ‘모든 것을 잊고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 철칙이다. 그러나 삼성의 이 같은 독주가 한국 스포츠 발전에 역행한다는 불만도 만만치 않다.

삼성화재 배구팀은 1995년 창단해, 1997년 슈퍼리그에서 우승한 후 2003년까지 8연패에 성공했다. 그리고 프로 배구 원년인 V리그 2004~2005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거의 10년 동안 한국 남자 배구를 지배해 오고 있다. 그동안 삼성화재는 한국 남자 배구를 양분해온 김세진 신진식과 국가대표 최태웅 김상우 장병철 신선호 석진욱 등 호화 멤버를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리베로 여오현에 방지섭이 버티고 있었고, 최근에는 이형두까지 가세해 가히 배구 왕국을 이루고 있었다. 그동안 현대자동차·LG화재·대한항공 등은 철저히 들러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삼성의 독주가 배구판에는 독으로 작용한 부분이 있다. 배구 팬들은 결과가 뻔한 배구 코트를 멀리했다. 이 같은 삼성의 독주는 올드 팬들에게 고려증권·현대자동차 등의 라이벌전으로 수많은 팬들을 몰고 다니던 1990년대 초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배구 최고 연봉자는 삼성의 김세진으로 1억원을 받았다. 프로 야구에는 최고 연봉자인 삼성의 심정수(7억5천만원)를 비롯해 1억원 이상 고액 연봉자가  77명이나 되고, 프로 농구는 평균 연봉(1억3백만원)이 이미 억대를 돌파했다.

삼성의 선수 싹쓸이는 배구뿐만이 아니다. 프로 축구 수원삼성은 1995년 12월 창단한 이후 1998년 K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1999년 시즌에도 우승함으로써 정규 리그를 2년 연속 제패했다. 1999년 시즌에 벌어진 제1회 티켓링크수퍼컵·대한화재컵·아디다스컵 등에 이어 K리그에서까지 우승, 4개 대회를 독식하며 1998년 정규 리그부터 따지면 5개 대회를 연속으로 석권하는 전대미문의 대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차범근 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2004년 시즌에도 정규 리그를 포함해서 4개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해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했다. 수원 삼성에는 언제나 특급 용병에 국가대표 5~6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죽하면 많은 축구인들이 수원삼성 팀 멤버로 프로 축구 감독 한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들 했을까? 현재도 이따마르·마토·산드로 등의 특급 용병과 이운재 골키퍼에 월드스타 김남일 송종국 그리고 전·현 국가대표 김진우 최성용 김동현 김대의 이기형 등 수원 삼성 멤버로만 국가대표를 만들어도 좋을 정도로 막강한 라인업이다.

대구·경북 이외 지역에 ‘안티 삼성’ 역풍

프로 야구에서의 상상을 초월한 투자는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다. 지난해 현대 유니콘스에서 자유계약 신분이 된 심정수와 박진만 그리고 소속팀의 임창용을 잡기 위해 1백5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다. 1백50억원이면 재정이 허약한 한화 이글스와 현대 유니콘스의 1년 예산이 넘는 돈이다. 그 멤버로 우승하지 못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삼성은 스포츠단 가운데 프로 야구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으면서도 프로 야구 24년 동안 1985년 통합 우승과 2003년 한국시리즈 우승 등 두 차례밖에 우승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승에 대한 강박 관념이 김응룡 사장 선동열 감독이라는 파격 인사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이 같은 공격적인 투자는 대구·경북과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일부 삼성 팬들 외에는 모두 ‘안티 삼성팬’이 되게 하는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상당수 야구팬들은 ‘어디 돈으로 우승할 수 있는가 보자’며 질시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삼성은 농구에서는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1988년 이후 현대와 기아자동차에 막혀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프로 농구 출범 이후 2001년 시즌 주희정·강 혁·이규섭 트리오의 맹활약으로 천신만고 끝에 우승을 차지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2002년 시즌부터는 국내 농구 사상 최고의 센터 서장훈을 영입하고도 번번이 정상 정복에 실패했다. 삼성 농구가 안 되는 이유는 샐러리 캡 때문이다. 남자 프로 농구는 12명 연봉 합계가 일정한 액수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샐러리 캡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따라서 서장훈이라는 용병급 선수를 보유한 것이 오히려 ‘고액 연봉자 보유’라는 덫으로 작용해서 좋은 선수를 영입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프로 스포츠는 특정 팀이 무제한의 자금력으로 막강 팀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샐러리 캡을 도입하려는 경향이 있다. 프로 농구에 이어 프로 배구에도 이미 도입되었고, 프로 축구의 드래프트제도 환원도 샐러리 캡 못지 않게 돈으로 우승을 사려는 팀에게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삼성의 ‘전종목 1등 정책’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그러나 삼성은 개인 종목에는 가능성이 있는 선수에게 일찌감치 투자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 박세리는 삼성이 가능성을 진작부터 알아보고 꾸준히 지원한 대표적 사례다. 1990년대 초반 삼성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체격 조건 등을 감안했을 때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육성 종목의 하나로 골프를 선택했다. 그리고는 1995년부터 박세리를 세계 정상 선수로 키우기 위한 ‘10개년 계획’에 들어갔다. 10년간 계약금 8억원에 연봉 1억원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당시의 계획은 2005년 안에 세계 무대에 진출시켜 괄목할 성과를 거두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목표는 너무도 빨리 달성되었다. 박세리는 아예 미국 여자 프로 골프 LPGA의 명예의전당에 들어가 버렸다.

1999년 당시 소속팀이었던 코오롱을 탈퇴해 정처 없는 떠돌이 생활을 하던 이봉주는 삼성전자 육상팀에 오인환 코치, 후배 선수들과 함께 입단하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찾았다. 이후 6년이 지나도록 한국 마라톤의 간판 스타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 테니스의 희망’ 이형택도 삼성맨이다. 삼성은 이형택이 건국대 2학년 때부터 지원해오고 있다. 국내는 사실상 테니스의 불모지대이기 때문에 국제 무대에 나가서 경험을 많이 쌓으며 배울 수밖에 없었다. 이형택의 선전은 삼성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삼성 스포츠단 운영은 ‘삼성 제국’이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인기 스타를 싹쓸이하여 ‘한국의 양키스’ 또는 ‘한국의 레알 마드리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뉴욕 양키스나 레알 마드리드는 세계 스포츠 팬들로부터 돈으로 우승을 사려고 하는 ‘오만한 제국’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는 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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