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갈래 한류
  • 이욱연(서강대 중국문화과 교수) ()
  • 승인 2005.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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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대장금>이 중국인들의 밤 문화를 바꾸어 놓고 있다. 일본에서는 영화 <외출>이 ‘욘사마’(배용준)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한동안 소강 상태에 빠져 있던 한국과 일본의 한류가 힘차게 다시 흐른다.

중국과 일본을 달구고 있는 <대장금>과 <외출>은 한류의 두 흐름을 상징한다. 중국에서 <대장금>이 유행하는 것은 콘텐츠 때문이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자기의 원칙을 굽히지 않는 꼿꼿함,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꿋꿋이 자기를 연마하면서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장금이 이야기가, 그 동양적 인과응보와 천인감응의 이야기가 중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 영화 <외출>이 흥행에 성공한 것은 순전히 욘사마 팬들 덕분이다. 빈곤한 콘텐츠 때문에 타이완 사람들은 <외출>을 외면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욘사마 팬들의 열광이 <외출>을 살려냈다. 

<대장금>이 콘텐츠 한류라면, <외출>은 스타 한류이다. 이 둘이 두 나라에서 각개 약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서로 다른 두 한류의 유행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한류의 미래를 생각할 때, 두 가지 개념의 한류 가운데 장기적으로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물론 단순한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고, 두 가지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안재욱이 <별은 내 가슴에>로, 배용준이 <겨울 연가>로, 이영애와 양미경이 <대장금>으로 한류 스타가 되었듯이, 스타 한류와 콘텐츠 한류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한류의 미래를 생각할 때, 콘텐츠 한류의 결과로 스타 한류를 파생시키는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스타 한류를 위해서 콘텐츠 한류를 만드는 길을 갈 것인지의 차이는 크다. <외출>로 인해 욘사마가 탄생하느냐, 욘사마 때문에, 욘사마를 위해 <외출>을 만드느냐의 차이는 매우 크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에 따라, 한류 소비층의 성향에 따라 두 가지 개념의 한류를 전략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스타의 인기를 이용해 이 기회에 돈을 벌자는 차원의 한류에서는 스타 한류가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한류가 한국과 일본 사람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줄 것인지를 생각하고, 그런 차원에서 한류가 더 긴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콘텐츠 한류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스타는 쉽게 명멸하고, 늘 새로운 스타와 대체된다. 거기에 한류의 운명을 걸 수는 없다. 중국을 달구었던 첫 한류 스타들의 지금 처지를 보라.

한류의 핵심은 스타가 아닌 콘텐츠여야 한다

결국 문제는 콘텐츠다. 그런데 콘텐츠라는 것이 고약해서 한류 시장을 겨냥해 일부러 만들면 실패한다. 중국과 일본을 휩쓴 <겨울연가>와 <대장금>은 원래 한류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최고의 한류가 되었다. 반면에 특정 한류 연예인 시장을 겨냥해 억지로 만든 한류 드라마는 거의 실패했다.

한류의 핵심은 콘텐츠이고, 그 최고의 콘텐츠는 한국인들의 삶 그 자체이다. 봉건과 포스트모던, 좌파와 우파, 서양과 동양, 민중주의와 귀족주의, 반미와 친미가 치열하게 싸우고 뒤엉키면서 만들어내는 불가사의한 한국의 지금, 그 역동적 현실을 사는 한국인들의 고뇌와 상상력이 한류 최고의 콘텐츠를 탄생시켰다. 적어도 지금까지 동아시아를 휩쓴 한류의 힘은 거개가 여기서 나왔다.

최근 중국 텔레비전에는 위대한 황제의 치적을 다룬 궁중 사극이 유행이다. 하지만 그런 중국 드라마들을 따돌리고 <대장금>이 중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황제의 공덕을 칭송하는 제왕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천한 신분이지만 세상을 정화하는 민중 장금이 이야기가 훨씬 더 중국 민중의 꿈과 열망을 대변하고, 전통과 현대의 절묘한 퓨전을 중국인에게 선사하기 때문이다. 한류의 생명은 몇몇 스타에게 있지 않다. 중국인과 일본인의 삶에 결여된 그 무엇을 한국인의 삶이 제공할 수 있을 때, 그런 한국인의 삶을 한국 드라마와 영화와 가요가 효과적으로 담아내 중국과 일본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 때, 한류는 영원할 것이다. 그럴 때 한류는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 공동의 문화가 될 것이다. 그런 한류의 미래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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