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행정부 실세 이인방 심판대에 오를까?
  • 정문호 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05.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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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비밀요원 신원 누설 ‘리크 게이트’ 사건특별검사 2년 수사 결과 발표 임박

 
발레리 플레임이라는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비밀공작원의 신원 누설 사건과 관련해 지난 2년간 계속해온 미국 사법 당국의 특별 수사가 곧 대단원의 막을 내릴 것 같다. 이번 사건을 총지휘하고 있는 패트릭 피츠제럴드 특별검사의 수사는 결과에 따라서는 부시 행정부 내 최고 실세 2명이 정보원 신상을 공개한 혐의로 기소될 수도 있다. 

두 사람의 이름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책사 칼 로브와 딕 체니의 오른팔이었던 루이스 스쿠터 리비. 누구든 한 사람이라도 기소될 경우 부시 대통령이나 체니 부통령 모두 정치적인 타격이 불 보듯 훤하다. 더욱이 로브나 리비 두 사람이 기자들에게 플레임의 신원을 밝혔을 경우, 과연 이들이 직속 상관인 부시와 체니에게 해당 사실을 사전 또는 사후에 귀띔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까지 고개를 들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워싱턴 정계가 잔뜩 숨을 죽이며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과연 부시의 최측근 참모인 칼 로브와 체니의 분신으로 일컬어지는 루이스 리비 비서실장이 이번 파문에 직접 연루되었는지 여부다. 지금까지의 수사 정황을 살펴보면 두 사람이 연루된 사실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우선 기사를 쓰지도 않았는데 취재원 공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감옥살이를 하다가 지난 9월 하순 풀려난 뉴욕 타임스의 주디스 밀러 기자가 리비의 이름을 직접 댔다. 앞서 지난 7월에는 시사 주간지 <타임>의 매듀 쿠퍼 기자가 자신의 취재원으로 로브를 지목한 바 있다.

리비와 로브도 자신들이 연루되었음을 굳이 부인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쿠퍼와 밀러 기자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에게 결코 발레리 플레임의 이름을 거명했거나 중앙정보국에서 일한다는 정보를 준 적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1982년 제정된 미국 연방법의 관련 조항에 따르면, 행정부 관리 어느 누구도 비밀공작원의 이름을 고의로 누설할 경우 형사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다.
 
부시 행정부 최대의 정치 스캔들로 기록될 이번 사건은 2년 전 여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2003년 7월6일 뉴욕 타임스 의견 난(Op-Ed)에는 조지프 윌슨이라는 한 전직 외교관의 기고문이 실렸다. ‘내가 아프리카에서 발견하지 못한 것’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윌슨은 자기가 중앙정보국의 밀명을 받고 2002년 2월 아프리카의 니제르에 파견되어 이라크가 1990년대 후반 이 나라로부터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우라늄을 획득하려 했는지를 조사했다고 밝혔다. 그는 8일간 니제르에 머무르면서 전·현직 관리 및 핵 산업 종사자들과 면담했지만 이라크와 니제르 간에 우라늄 거래가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3월 초 귀국해 곧바로 조사 결과를 중앙정보국에 제출했으며, 관련 내용을 국무부 관련 부서에도 알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같은 보고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이 이듬해 1월 연두교서에서 이라크가 니제르로부터 우라늄을 획득하려 했다고 말한 것을 맹비난했다.

당시 윌슨의 기고문은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트집 잡아 이라크 공격에 나선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전쟁의 명분을 찾느라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에 빠진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당연히 부시의 백악관 참모들은 노발대발하면서 윌슨 기고문의 정치적 파장을 진화하는 데 동분서주했다.

바로 이 때 백악관의 두 실세인 로브와 리비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로브는 윌슨 기고문이 나온 지 닷새 만인 2003년 7월11일 <타임>의 매듀 쿠퍼 기자와 만났다. 쿠퍼에 따르면, 당시 로브는 그에게 “윌슨의 아프리카 여행을 허가한 사람은 중앙정보국장도 부통령도 아니며, 중앙정보국에서 대량살상무기에 관여하는 게 분명한 그의 아내다”라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그의 아내’가 바로 나중에 신원 노출 시비에 휘말리게 된 발레리 플레임이다. 그러면서 로브는 쿠퍼 기자에게 “니제르 우라늄 구입에 관한 이라크의 관심 건은 엮으려 들면 얼마든지 엮을 수 있다. 윌슨의 주장에 너무 치중할 것 없다”라는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까지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브든 리비든 기소되면 부시 타격 불가피

로브는 또 같은 해 7월12일에는 워싱턴 포스트의 백악관 출입 기자인 월터 핀커스와 만났다. 로브는 그에게 윌슨의 아프리카 여행은 그의 아내가 공연스레 주선한 것이기 때문에 백악관은 별로 관심 갖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그녀의 이름은 거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보면 적어도 7월12일까지는 로브와 리비, 그리고 제3의 백악관 고위 인사가 중앙정보국 내 플레임의 위치를 파악했으며, 윌슨을 음해할 목적으로 기자들에게 그녀의 신원을 공개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2003년 9월28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로브와 리비가 ‘윌슨을 손 볼 목적으로’ 플레임을 거론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시점까지 로브나 리비 어느 누구도 기자들에게 발레리 플레임의 실명을 거론했다는 증거는 없다.
 
이런 와중에 7월14일 베테랑 언론인 로버트 노박의 칼럼이 정치적 폭풍을 몰고 왔다. 노박은 문제의 칼럼에서 ‘행정부 고위 관리 2명으로부터 들었다’면서, 윌슨의 부인이 중앙정보국 비밀공작원인 발레리 플레임이라고 폭로한 것이다. 노박은 행정부 고위 관리가 누구인지 공개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노박의 칼럼이 발표된 지 사흘 뒤인 같은해 7월17일 이번에는 <타임>의 쿠퍼 기자가 플레임을 거론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연방 법무부는 수사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방수사국(FBI)의 최초 수사 기록에 따르면, 칼 로브와 루이스 리비가 처음 플레임의 이름과 중앙정보국 내 지위 등에 관해 인지한 것은 노박의 칼럼이 발표되기 훨씬 전인 2003년 6월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바로 전 달인 5월6일 뉴욕 타임스의 고정 칼럼니스트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가 윌슨의 아프리카 여행에 부통령실이 관여했다고 주장해, 리비 등 체니 측근들이 정부 내 관련자들을 상대로 꼬치꼬치 정황을 캐묻던 때였다. 이 때까지 발레리 플레임이라는 인물은 국가안보회의(NSC)에 파견된 일부 중앙정보국 관리들 중 한 사람으로 인지되었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그 중 한 사람 또는 복수의 중앙정보국 관리가 윌슨과 플레임 간의 관계에 대해 로브는 물론 체니 부통령에게도 브리핑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들의 이름이 문제의 비밀공작원 신원 누설과 연관되어 언론에 크게 보도되자 적극 진화에 나섰고, 백악관 대변인은 물론 부시 대통령까지 이들을 두둔하는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이를테면 스콧 매클러렌 대변인은 로브와 리비에게 물어봤더니 두 사람 모두 “관여한 적이 없다더라”며 시치미를 뗐다. 또 부시 대통령은 누구든 범법 행위가 드러나면 파면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도 로브에 대한 신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기도 했다.
 
로브와 리비는 어떤 목적에서 윌슨 부인의 신원을 기자들에게 누설했을까. 현재 워싱턴 정가에 나도는 정설은 이들이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쟁 명분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킨 윌슨에 대해 ‘정치적 보복’을 가하려 했다는 것이다. 윌슨 자신도 쿠퍼의 취재원이 로브였음이 밝혀진 지난 7월 부시 대통령에게 로브를 즉각 파면하라고 공개 촉구하기도 했다.

문제는 수사 종결 시점을 코앞에 둔 피츠제럴드 특별검사가 과연 어떤 결론을 내릴 것이냐 하는 점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미국 연방대배심 심리는 10월28일이면 끝난다. 지금까지 대배심에 증인으로 선 기자들은 뉴욕 타임스의 주디스 밀러, <타임>의 매듀 쿠퍼, 워싱턴 포스트의 월터 핀커스·글렌 케슬러 기자, NBC 방송국 기자 등 6명 정도이며, 행정부 관리로 칼 로브와 루이스 리비가 불려갔다.

피츠제럴드 특별검사는 작년에는 변호인이 입회한 가운데 부시 대통령에 대해서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마쳤다. 현재 초미의 관심사는 과연 피츠제럴드 특별검사가 ‘고의적으로 비밀공작원의 신원을 까발린’ 장본인으로, 로브와 비리를 지목해낼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사실 불과 몇 달 전까지 미국 소식통들은 피츠제럴드 특별검사가 2년에 걸친 수사에도 불구하고 확증을 잡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분위기 달라졌다. 일각에서는 피츠제럴드가 로브와 리비를 포함해 일단의 행정부 고위 관리들이 윌슨에게 보복하려는 기도에서 그의 부인 이름을 누설한 것으로 보고 형사 기소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일각에서는 피츠제럴드 특별검사가 조사 결과 해당자들에 대해 형사 소추를 할 만한 범죄 행위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결론 내리고 수사보고서도 내지 않을 것으로 본다. 달리 말해 사건을 덮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과연 로브·리비 두 거물을 추락시키는 초대형 정치 스캔들로 귀결될지, 아니면 확증 미비를 이유로 용두사미로 끝날지 워싱턴 정가는 이 달에 발표될 피츠제럴드 특별검사의 수사 결과에 일제히 눈길을 보내고 있다. 
워싱턴·정문호 통신원

 
밀러측 변호인에 따르면, 그녀는 취재원인 루이스 리비와 지난 9월 하순께 약 15분에 걸쳐 전화 통화를 하면서 그로부터 자신을 공개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과 관련해 리비측 변호인의 주장이 흥미를 자아냈다. 그 내용은, 밀러는 이미 1년 전 리비로부터 자신의 신원을 공개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는데, 밀러가 이제 와서 리비의 진의를 확인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밀러측 변호인은 당시 리비의 허락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밀러가 취재원 공개를 감행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밀러의 심경 변화를 이끌어낸 또 다른 요인은 피츠제럴드 특별검사와의 ‘거래’라는 시각도 있다. 피츠제럴드 검사는 최근까지도 밀러가 리비뿐 아니라 다른 취재원에 대해서도 입을 열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엔 태도를 바꾸어 밀러에게 리비 건만 증언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이에 밀러가 협조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왜 이 시점에서 공개를 결심했는지, 또 특별검사와 어떤 막후 ‘거래’가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남는다. 이런 석연치 않은 구석 때문인지 풀려난 동료를 맞는 뉴욕 타임스 편집국의 분위기도 흔쾌하지 않다. 그녀의 과거 ‘전력’도 이같은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다.

원래 잡지사 기자로서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은 밀러는 1977년 <타임>에 특채된 이래 국내 출입처와 파리 특파원 등을 거치며 명성을 쌓았다. 그녀는 2002년에는 국제 테러망을 파헤친 연재 기사로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특히 지난 2001년에는 <세균:생물 화학 무기와 미국의 비밀 병기>를 펴내 대량살상무기 전문 기자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그녀는 실제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한 보도에서는 2003년 4월 이라크전쟁 종군 기간의 보도를 포함해 잇달아 오보를 내 과거의 명성에 크게 흠집을 냈다. 당시 밀러 기자가 쏟아낸 일련의 오보는 지금도 <타임>의 이라크전쟁 보도에서 오점으로 기록되고 있다.

밀러는 85일에 걸친 수감 생활에 대해 “너무도 비인간적이고 외로웠으며, 세상에서 그토록 비정한 곳에 갇혀보기는 처음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수감 경험이 취재원과 유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석방에 따른 의문이 말끔히 가시지 않는, 한 그녀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에는 의문 부호가 찍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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