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받아 지친 지구 비참한 ‘투모로우’ 맞는가
  • 문정우 전문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5.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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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 최근 자료에 따르면, 21세기 동아시아 지역 온도는 3.8℃ 정도 더 치솟을 전망이다. 이는 기후 악화를 예고하는 또 다른 경고문이다.

 
가을이 오기 참 힘들다. 추석 때도 영상 30℃를 오르내리더니 장마 때처럼 며칠이나 비가 쏟아지고 나서야 기온이 떨어졌다. 미국의 저명한 고(古)기후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이 쓴 책 제목처럼 ‘더 롱 섬머’가 일상이 된 것이다. 초강대국 미국은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리타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했다. 카트리나가 찾아오기 전 미국 남부의 아름다운 도시 뉴올리언스가 폐허가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상 재해는 마치 전기 스위치를 내리듯 느닷없이 닥치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방재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왔던 미국이 겨우 두 개의 허리케인 앞에 맥없이 무릎을 꿇자 세계 기상학계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급기야 유럽항공우주국은 10월8일 북극의 빙하 상태를 전문적으로 조사할 위성을 쏘아 올리기에 이르렀다. 지구는 정말 본격적으로 기후전환기에 접어든 것일까. 2003년 미국 국방부가 비밀리에 내놓은 시나리오나 지난해 개봉되어 충격을 준 할리우드 영화 <투모로우>가 그린 것과 같은 환경 대재앙은 시작된 것일까. 그리고 지구 온난화를 초래한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간은 기후 변화를 통제할 능력을 갖고는 있는 것일까.

 
1954년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지구화학 부서의 풋내기 연구원 찰스 데이비드 킬링 박사는 자신도 모르게 신의 영역에 한 발짝 들어서고 말았다. 그는 자기가 만든 기구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양을 측정하다가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산에서 재든 강가에서 재든 항상 하루 중 이산화탄소 양의 최저치는 315ppm이라는 사실이었다. 적도에서 채취한 공기를 측정해도 그 마법적인 수치는 변함이 없었다. 그것은 결국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함유량은 지역이나 지형에 상관 없이 전세계가 똑같다는 것을 뜻했다.

그 뒤 이산화탄소가 기온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온실 가스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기상학의 지평은 획기적으로 넓어졌다. 남극의 보스토크 빙심(ice core), 베네수엘라 쪽 카리브 남쪽 해분(바다 속 분지) 밑바닥, 그린랜드 빙원 등에서 기포를 채취해 수십만 년에서부터 수백만 년 전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함유량과 고기후를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기중 이산화탄소 양의 변화를 비롯한 기후 변동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의 추이를 면밀히 관찰해 수치화하면 미래의 기후를 예측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해졌다. 기상학자들은 앞다투어 정교한 대기 순환 모델을 만드는 데 골몰했는데, 2000년 말 현재 세계에는 슈퍼 컴퓨터를 동원해 만든 약 30 가지 모델이 있다. 불완전하기는 하나 인간이 ‘천기’를 엿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아시아 기온, 20세기에 0.9℃나 상승

이산화탄소 양의 변화를 측정하던 기상학자들은 1980년대 들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산화탄소 양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1988년 세계 각국이 공인한 ‘정부간 기후변화 패널’(IPCC)이 결성되어 세 차례 보고서를 낸 뒤((1990·1995·2001년) 문제의 심각성은 더 선명해졌다.

2001년도 보고서에 따르면, 20세기에 지구 평균 기온은 0.6℃ 올랐다. 이산화탄소의 대기중 농도는 산업혁명 전 280ppm에서 370ppm으로 30% 이상 올랐다. 1954년 킬링 박사가 측정했을 때보다도 55ppm이나 높아진 것이다. 20세기 중 최근 20년간 온난화가 두드러지게 진행되었으며, 1990년대는 인류가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더운 기간으로 분류되었다.

식물의 생장 기간이 길어졌으며, 극지와 고지대의 적설과 빙하 양이 감소했다. 21세기 말까지 지구 평균 기온은 1.4~5.8℃까지 올라갈 것이며 이산화탄소 함유량은 540~970ppm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우리 나라의 기상청 기상연구실이 정부간기후변화패널에 보고하려고 측정한 최신 자료에 따르면, 동아시아 지역의 기온은 20세기에 0.9℃ 올랐으며, 21세기에는 3.8℃ 정도 치솟을 전망이고, 현재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375ppm이다. 동아시아 지역의 연평균 기온은 세계 평균보다 훨씬 높게 치솟고 있다.

 
그렇다면 이 수치들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남극 빙심을 연구한 바에 따르면, 지구의 온도는 수만 년 동안 2~3℃ 범위 내에서 변동하다가 8~10℃의 급격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다. 생물종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대거 멸종한 흔적을 보이는 이 시기를 고기후학자들은 기후전환기라고 부른다. 정부간기후변화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는 이미 기후전환기에 접어들었을 수도 있다. 고기후학 연구자들은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40% 이상 증가하면 기후 모드가 바뀌고 만다고 말한다.

대기중 이산화탄소 양이 1990년 산업혁명 이전(300ppm)의 140%인 420ppm에 달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기후를 경험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현재 대기중 이산화탄소 양이 375ppm이니까 거의 목젖까지 도달한 셈이다. 이 예측이 정확하다면 지금 당장 기후 대변동이 일어난다고 해도 별로 이상할 것은 없는 상황이다(고기후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현재의 기후변화, <한국기상학회지> 5월호).

지구에는 과연 기후 대재앙이 닥칠 것인가, 아니면 이미 닥친 것일까. 기상청 기상연구소 예보실장을 지낸 오재호 교수(부경대·환경대기과학과)는 “대기 중에 온실가스가 증가하면서 지구에 스트레스가 축적돼 수년 또는 수개월 안에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기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기상청 기상연구실 권원태 실장도 “과학자는 냉정하고 신중해야 하지만 정말 연구하면 할수록 이건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털어놓는다.

2003년 미국 국방부가 내놓은 일명 마셜 보고서의 내용은 살벌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년 안에 지구 차원의 재난이 일어나며 이는 종교 갈등이나 테러보다 더욱 심각하게 세계를 위협한다. 2007년까지 맹렬한 폭풍우가 닥쳐 유럽 해안의 주요 도시들과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유역은 물에 잠기고 영국은 러시아나 시베리아처럼 추워진다. 전쟁과 기아로 수백만명이 사망하며 인도·남아공·인도네시아는 결국 붕괴한다. 이 보고서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미국 국방부가 소설을 썼다는 비판도 많았으나 카트리나와 리타가 미국을 강타한 뒤에는 이 보고서를 다시 찾아 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지구의 기후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곳은 극지와 고산지대이다. 20세기에 지구 평균 기온은 0.6℃, 동아시아 평균 기온은 0.9℃ 올랐는데 북극은 무려 5℃나 더 더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 초강력 허리케인이 계속 들이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맞추었다고 해서 최근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는 미국의 심령술사 실비아 브라운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무슨 대단한 영적 능력을 갖고 있거나 기후를 전문으로 연구한 학자가 아니더라도 알래스카나 극지를 여행해 보면 지구가 이미 대재앙을 맞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으로 알 수 있다.”

실제로 북극과 남극에서는 빠른 속도로 빙하가 감소하고 있으며, 호수의 피핑 기간(ice cover)도 짧아지고 있다. 북극 지역의 눈 두께가 10% 감소했으며, 스위스의 산지 빙하가 3분의 1이나 줄어들었다. 2003년에는 러시아의 북극 32기지가, 지난해에는 주 연구소 건물이 바닷물에 휩쓸려 가라앉았고, 남극에서는 2003년 초 여의도보다 큰 빙붕이 붕괴했다.

북극의 빙하가 줄줄 녹아 바다로 흘러드는 바람에 주목되는 이론이 컨베이어벨트론이다. 미국 라몬트-도허티 지구관측소의 월리 브로엑커 박사는 과거 급격한 기후전환기에 전세계에 열을 전달하는 북대서양 해류, 즉 아마존 강보다 100배 이상 큰 이 ‘컨베이어 벨트’가 켜지고 꺼지는 과정을 반복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금처럼 빙하의 담수가 녹아들어 바닷물 밀도가 낮아진다면 북해에서 차가워진 바닷물이 심해로 내려가지 못해 이 컨베이어 벨트가 약해지거나 멈출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그같은 이론을 채택해 영화화한 것이 <투모로우>이다.

현실이 되어 나타나는 컨베이어벨트 이론

불길하게도 컨베이어벨트론은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우즈홀 해양연구소 루스 커리 연구원은 최근호 <사이언스>에 실린 보고서에서 “지난 10년간 대양 해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상층부 1000m의 북해 해수층에 담수가 점점 많이 축적되고 있어 지켜볼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커리와 노르웨이 기상연구소의 세실 모리츤은 1965년부터 1995년 사이에 담수 1만9천㎦가 북부 해역에 흘러들어 염도를 떨어뜨렸다고 밝혔다(지구 최대의 강인 아마존이 바다에 흘려보내는 담수량은 연간 5천㎦ 정도이다).

 
자연이 태양 에너지를 고르게 분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해류와 바람이다. 적도의 축적된 에너지를 차가운 극지방으로 실어 날라 균형을 잡는 것이다. 멕시코 만류라고 불리는 북대서양의 컨베이어벨트는 적도에 쏟아지는 태양 에너지의 30% 정도를 북해에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이 컨베이어벨트가 멈춘다면 그 역할을 바람이 혼자 떠맡을 수밖에 없다. 영화 <투모로우>에서처럼 북반구가 얼음에 뒤덮이고 인류가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던 슈퍼 폭풍이 지구를 휩쓰는 것과 같은 극적인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으나, 해류의 움직임이 둔해지면 이론적으로 바람은 사나워질 수밖에 없다.

아직 학계에서 완전히 공인되지는 않았지만 바다의 수온이 올라가면서 태풍이나 허리케인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번 태풍 나비가 덮쳤을 때 우리 나라 기상청도 태풍의 강도가 날로 강해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 일이 있다. 태풍의 연료는 수증기이다. 태풍은 바다를 지나면서 맹렬히 수증기를 빨아들이는데, 물이 기화하면서 주변에서 빼앗는 잠열이 태풍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의 수온이 올라가면 태풍의 위력이 더 강해지고 반경이 넓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극지방과 고지대에서 흘러드는 담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수온이 오르면 오를수록 물의 부피가 팽창하기 때문에 지구 해수면은 날로 높아간다. 현재 맹렬한 속도로 녹아내리는 그린랜드의 거대한 빙원이 모두 물이 된다면 지구의 해수면은 7m 이상 높아질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지금 바다는 물이 가득찬 컵과 같은 상태이다. 조금만 출렁거려도 물이 탁자 위에 쏟아지게 되어 있다. 지난번 서남아시아에 닥친 쓰나미에 해변 도시와 섬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피해를 본 것은 그 때문이다.

미국은 ‘온실 가스 감축’에 아직도 ‘모르쇠’

정부간기후변화패널 보고서 작성을 주도하고 있는 주류 기상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를 일으킨 범인의 지문을 찾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인간’이라는 요소를 제외한다면 지난 1만년 동안 이루어졌던 것보다도 최근 더욱 급격한 기후 변화가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기상학자들의 제안에 따라 1997년 전세계의 온실 가스 감축을 위한 교토의정서가 채택되고, 올해 2월16일 발효되었으나 이 교토의정서가 온실 가스 배출을 줄이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계 최대의 온실 가스 배출 국가인 미국의 부시 정부가 교토의정서를 계속 외면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미국이 세계 기상학계로부터 대표로 욕을 먹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 정부들도 떳떳한 편은 못된다. 도쿄의정서의 의무 기준을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애쓰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정부간기후변화패널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한 기상학자의 말을 빌리면 인류는 지금 이 보고서 내용에 반대하는 학자들의 주장이 맞기만을 바라야 하는 형편이다. 과학자들 가운데는 46억년 동안 천변만화를 거듭해온 지구의 기후를 인간이 예측할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들의 주장은 화석 연료 감축을 망설이는 정치가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이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상당수 학자가 미국의 석유 메이저들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인간이 지구 온난화를 초래한 범인이 맞다면, 인류는 지구 역사상 최초로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의 위험성을 자각했으면서도 재앙을 예방하지 못한 생명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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