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히 달아나는 가을을 좇아서…
  • 최갑수(여행작가) ()
  • 승인 2005.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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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만끽하는 여행지 5곳/만발한 억새·노을·단풍 ‘감동 물결’

 여기저기에서 단풍 소식이 날아든다. 곧 이 땅의 산들은 붉게 물들고 낙엽이 수북이 쌓일 것이다. 그리고 나면 강원도 어디쯤에서 첫눈 소식이 들려올 테고 길고 긴 겨울이 시작될 것이다. 노루꼬리처럼 짧기만 한 가을. 가는 가을이 안타깝다면 서둘러 가을의 정취를 생으로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가보라. 때론 길을 가다 차를 세우고 볕 좋은 곳에 앉아서 책 한 권 펼쳐드는 그런 여행도 괜찮을 것 같다.

■전남 장흥으로 떠나는 가을 문학기행
‘찰진 바다’와 억새 가득한 산들
소설가 이청준·한승원 작품의 ‘원천’을 보다

 장흥에는 기름진 햇살이 내려앉는 찰진 바다가 있고 억새가 만발한 산이 있다. 또한 장흥은 내로라 하는 ‘글쟁이’들이 나고 자란 곳이다. 소설가 이청준·한승원·송기숙·서종택·이승우가 장흥 출신이고, 시인 김영남과 이대흠도 이곳에 태를 묻었다. 장흥의 무엇이 많은 사람을 문학인으로 키워낸 것일까.


이왕 가는 길, 글쟁이들의 소설 한 단락, 시 몇 구절을 미리 읽고 가는 것은 어떨까. 때로는 반짝거리는 글 한 줄이 여행을 풍성하게 만든다. 


 

 
장흥 회진은 문학도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고만고만한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의 모습은 평화롭고 한적하다. 소설가 공지영은 회진을 이렇게 묘사했다.


‘초등학교 동창녀가 운영하는 선창가 횟집이 있고, 할미꽃 군락이 있고, 분갑처럼 앉아 있는 친구의 노모가 있고, 나무라기보다 하늘로 오르는 용 같은 태고송이 있고, 억장이 무너지는 동백꽃 군락지 너머 바닷가에 ‘오징어가 순이의 팬티처럼 나부끼는 빨랫줄’ 걸린 항구가 있다.’


  회진에서 삭금마을 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가면 진목리다. 소설가 이청준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이청준은 진목리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했다. 진목마을에서의 경험을 이청준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았다. ‘큰 산 꼭대기 구룡봉에서 바라본 세상은 끝없이 넓었다. 작은 동산 같은 마을 뒷산 너머로 남해의 푸른 바다가 아득히 하늘로 이어져가고 북으로는 수많은 산들이 부연 연무 속으로 겹겹이 멀어져가고 있었다.’


이청준이 그의 소설 <무소작씨>에서 진목리를 묘사한 대목. 진목마을은 묘사한 그대로다. 마을 앞쪽 작은 동산 같은 산 너머에는 회진 앞바다가 펼쳐지고, 마을 뒤쪽으로는 천관산(720m)이 버티고 있다.


 진목에서 나와 삭금마을로 향한다. 삭금은 사진작가들이 알음알음 찾아가는 낙조 명소다. 작은 어선들 너머로 시뻘겋게 떨어지는 일몰은 가슴이 저릴 정도로 아름답다. 소설가 한승원이 그의 소설 <불의 딸>에서 묘사한 대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그 바다는 은빛으로 번쩍거렸고, 금빛 칠을 해놓은 것 같았고, 허연 눈이 덮여 있는 것 같았고, 회칠을 해놓은 것 같았고, 흰 옥양목 천을 깔아놓은 것 같았고, 쪽빛 물을 들여놓은 것 같았다.’


 천관산에는 문학공원도 있다. 이청준·한승원·차범석 등 국내 유명 문인 4명의 육필 원고가 새겨진 문학비들이 서 있다. 문학공원에서는 장흥의 진산인 천관산이 아련히 보인다. 면류관을 쓴 듯 기암괴석을 봉우리에 삐죽이 두른 산. 지금 산 정상에는 억새가 한창이다.


 장흥을 떠나기가 못내 아쉽다면 보림사에 들러보라. 우리 나라에서 선종이 제일 먼저 들어 온 절이다. 가지산 자락에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가 그윽하다. 김영남 시인은 보림사의 범종 소리를 듣고 <참빗>이라는 시를 썼다. ‘먼 보림사 범종 소리 속에/가지산 계곡 예쁜 솔새가 살고 있고,/그 계곡 대숲의 적막함이 있다./저녁 햇살도 비스듬하게 세운./난 이 범종 소리를 만날 때마다/이곳에서 참빗을 꺼내/엉클어진 내 생각을 빗곤 한다.’


  ■경북 영주 부석사와 고치령
무량수전 앞 노을 그윽한 목어 소리

 
부석사.  노란 은행나무길 끝에 자리한 절집. 해 저물 무렵이면 소백산맥을 넘어온 장엄한 노을이 절집 안마당에 내려앉고 법고와 목어 소리가 울려 퍼진다. 부석사에는 늦은 오후에 당도해야 한다. 해 지기 두세 시간 전 부석사 앞에 도착해 당간지주를 지나고, 은행나무 길을 지나야 한다. 그리고는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노을을 보아야 한다.


 여행은 단양에서 시작한다. 단양에서 풍기를 지나 영주 가는 5번 국도. 구불구불 휘는 길은 한창 가을빛에 휩싸여 있다. 5번 국도는 한적하다.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오가는 차가 많이 줄었다. 옛 소백산 휴게소가 있던 자리. 지금은 커다란 입간판만 뎅그러니 서 있다.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덥힌 후 죽령을 넘는다. 여기부터는 경상도 땅. 신라시대 고찰 희방사를 지나 5번 국도를 계속 따르면 풍기. 풍기에서는 931번 지방도를 탄다. 부석사 가는 길이다.


 
 부석사 못 미쳐 단산면에서 마락리·좌석리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고치령 가는 길이다. 경상도에서 충북 단양과 강원 영월로 넘나들던 길이다. 한때 방물장수와 등짐장수들로 길이 닳을 정도로 붐볐지만 지금은 잊힌 옛길이 되었다. 고개 중턱까지 아스팔트로 포장해 승용차도 그럭저럭 넘을 수 있다. 


 길은 굽이치며 끝없이 흘러간다. 뱀처럼 구불거리며 하늘을 향해 치솟은 길. 낙엽송들이 물들기 시작했다. 고치령 정상까지는 그다지 높지 않다. 정상은 770m. 하지만 경사가 급해 제법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야 한다. 고치령에는 비극이 묻어 있다. 세조의 동생 금성대군이 이 길을 다니며 단종 복위운동을 벌이다가 관노의 밀고로 실패했다. 복위운동이 실패한 후 단종은 영월에서, 금성대군은 안동에서 죽임을 당했다.


 고치령을 내려와 부석사로 간다.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 앞에 선다. 소백산맥 능선 너머로 해가 진다. 가을 바람이 무량수전 풍경을 흔들고 지나간다. 황금빛 노을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을 비춘다. 사람들은 부석사 앞마당에 앉아 노을을 맞고 있다. 


해가 지고 어디선가 법고 소리가 울린다. 목어가 울리고 운판이 울린다. 네발 달린 짐승과 물고기들, 그리고 날짐승들의 죄를 씻어주는 소리. 사람들의 죄는 누가 씻어주나. 그런 생각이라도 하듯, 법고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은 아무도 말이 없다.

■춘천~화천 안개 속 드라이브
사람과 마을과 나무, 안개 속에 숨다
 
북한강은 일교차가 커지는 9월부터 안개를 피워 올린다. 팔당호 청평호 의암호 춘천호 소양호 파로호…. 북한강에 들어선 호수에서 쏟아져 나온 안개는 새벽이면 마을과 도시를 온통 뒤덮는다. 안개 속에 숨어 있는 세상을 더듬는 여행. 여정은 춘천에서 시작된다.


춘천은 ‘안개 도시’다. 연중 2백50일 이상 안개가 피어오른다. 새벽녘이면 소양호와 의암호, 춘천호에서 쏟아져 나온 안개가 길을 지우고, 사람을 지우고, 키 큰 포플러 나무까지 지워버린다. 그러다 태양이 호수 위로 뜨기 시작할 무렵 안개는 서서히 퇴각한다. 


 
안개는 의암호에서부터 다가온다. 의암호는 1967년 신현강 협곡을 막아 만들어진 인공 호수. 의암호의 안개가 걷히면 삼악산의 짙은 그림자와 솜털 같은 가을 구름이 호수 위에 드리운다. 수면은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인다.


 의암호에서 화천 쪽으로 20여㎞를 가면 춘천호. 1965년 북한강 지류를 막아 만들었다. S자형으로 생긴 춘천호는 의암호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산비탈을 따라 도로가 이리저리 휘고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호수가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춘천호의 안개는 의암호와는 달리 활동성이 강하다. 마치 매복한 병사를 닮았다. 산골짜기 사이에 잔뜩 웅크려 있다가 느닷없이 쏟아져 나왔다가 별안간 물러간다. 아침 햇살이 수면에 닿는 순간, 안개는 사라지고 없다.


 소양호는 충주호와 더불어 국내에서 가장 큰 호수다. 풍부한 담수량이 만들어내는 안개는 그만큼 두껍고 밀도도 높다. 안개가 제대로 내려앉은 날에는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안개 속에는 낚시꾼들이 숨어 있다. 잔뜩 숨을 죽인 채 낚싯대 끝을 응시한다. 월척을 노리며 찌가 흔들리기를 기다린다.


 북한강 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파로호가 펼쳐져 있다. 강원도 최북단 호수다. 그곳의 안개는 신비롭다. 금강산 줄기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를 따라 안개가 쏟아져 내린다. 이른 아침, 양구군에서 성곡령을 넘어 파로호 최상류의 상무룡 마을로 차를 몬다. 고갯마루에서 안개와 만났다. 산줄기를 솜이불처럼 덮고 있는 새벽 운해가 장관이다. 운해를 뚫고 마을에 도착하자 호수가 반긴다. 호수는 드넓고 잔잔하다. 수상 좌대가 10여 개 떠 있고 호숫가를 따라 마을이 들어서 있다.


 아침 상무룡 마을은 파로호에서 피어나는 물안개로 자욱하다. 고요를 깨는 것은 수면을 차는 물고기 소리뿐이다. 안개 속을 걸어본다. 두터운 물안개 사이로 호수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마음이 괴롭거나 세상사가 번거로울 때 안개 속에 숨어보는 것은 어떠하실지.
 
‘시간이 가면/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적당한 간격으로 서서/서로를 바라본다/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류시화 <안개 속에 숨다> 중)

■강원 동해 무릉계곡과 북평장
기묘한 계곡과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5일장


 강원도 동해시 무릉계곡. 청옥산(1,404m)과 두타산(1,353m) 자락에 있다. 기묘한 바위들이 계곡을 이루며 흘러내리고, 그 계곡에 폭포와 크고 작은 소들이 수없이 놓인 바위골짜기다. 그 모습이 오죽 아름다웠으면 ‘무릉’이라고 이름 지었을까.


  매표소를 지나 숲길을 잠깐 걸으면 커다란 바위 무릉반석이 나온다. 3백∼4백명은 넉넉히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다. 그 넓이가 1천5백여 평에 달한다. 그곳을 지나 신라 때 창건된 절 삼화사를 지나면 본격적인 숲길이 시작된다. 평탄한 길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하지 않은 길은 단풍 산책을 즐기기에 알맞다. 20여 분을 더 오르면 학소대가 나온다.


거대한 암반이 벼루를 세워놓은 듯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이 암반 틈으로 흰 물줄기가 지그재그로 내려온다. 학소대란 물줄기가 내려오는 모습이 마치 학의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숲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우렁찬 물소리가 들린다. 철제 계단을 올라서면 만나는 절경. 무릉계곡의 자랑인 쌍폭이다. 두 폭포가 한 소에서 만난다. 쌍폭 위쪽 용추폭포에서 떨어진 물과 두타산 박달골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쳐지는 곳이다.  쌍폭은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무릉계곡의 극치다. 쌍폭에서 2분 거리에 용추폭포가 있다.


오목한 바위에서 터져 나오는 물줄기가 소를 향해 주저 없이 떨어져 내린다. 용추폭포는 3단 폭포다. 밑에서는 맨 아래쪽 폭포밖에 보이지 않지만 철제 계단을 따라 위쪽으로 올라가면 3단 폭포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가을의 풍성함을 느끼고 싶다면 북평장으로 갈 것을 권한다. 끝자리가 3일과 8일인 날, 42번 국도와 7번 국도가 만나는 북평 삼거리 길은 아침 일찍부터 행상들에게 점령당한다. 북평장은 영동 지역 최대의 장으로 태백·삼척 등 강원 영서 남부와 영동지역에서 나는 약초와 산나물, 바다에서 나는 싱싱한 해산물이 모여든다.


요즈음 전국의 전통 5일장이 점점 그 규모가 작아지고 있지만 북평장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북평장에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쌀과 보리 등 곡류를 비롯해 태백·삼척·정선·울진 등에서 나는 약초와 산나물, 마늘, 고추 등 채소류, 강아지, 토종닭 등 가축들과 옷, 신발, 낫, 곡괭이 등 도시에서 생산된 물건까지 온갖 것들이 장마당을 메운다.


 “어제 경상도 봉화에서 옷 팔러 요(여기)까지 넘어왔다 아인교. 북평장에서 마이(많이) 팔아야 되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글러삣네.”  3년 전부터 북평장을 매달 한 번 찾아오고 있다는 자칭 ‘옷 장돌뱅이’ 송창우씨(45)는 “북평장날 수입이 한달 수입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송씨의 말대로 전국의 유명 장터를 찾아 떠도는 장돌뱅이들은 북평장을 이리장, 성남 모란장과 더불어 우리 나라 3대 장터로 꼽는다. 노점 수는 4백~5백 개.

■제주 용눈이오름과 다랑쉬오름
시시각각 변하는 둥근 빛깔

 
 제주의 바람은 튼튼한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다. 섬 구석구석을 헤엄쳐 다닌다. 한라산을 미끄러져 내려온 바람은 삼나무가 줄지어 심어진 도로를 지나고, 푸른 당근밭을 지난다. 그리고는 만발한 억새 군락을 지나 파도 높은 바닷가 절벽으로 몰려간다. 바닷가 절벽에서 파도를 타고 솟구친 바람은 다시 한라산으로 올라가 들판으로 내려온다. 제주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바람에 실어 보내고 바람 속에서 일생을 마친다.


 북제주군 구좌읍 종달리. 제주의 맑은 바람이 머무르는 곳. 바람 속에서 한평생을 살다 가는 제주 사람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검은 산담을 친 무덤이 있고, 산담 가에는 바람에 쓸려 한쪽으로 누운 팽나무가 서 있다. 흰 수건을 쓰고 당근밭을 매는 아낙들의 등은 낮은 무덤을 닮아 있다. 오름에 올라 바라본 제주의 풍경이다. 제주 전역에 3백68개나 흩어져 있는 오름. ‘오르다’의 명사형인 ‘오름’은 기생화산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다.


 오름은 북제주군 조천면 교래리 일대에 많이 몰려 있지만 구좌읍 종달리 일대에도 많다. 다랑쉬오름을 비롯해 아끈다랑쉬, 손자오름, 용눈이오름 등 이들 오름이 삼나숲과 푸른 당근밭, 검은 돌담과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광은 제주가 아니면 만날 수 없다. 용눈이오름에 오른다. 바람이 세차다. 산담을 친 무덤가의 억새가 바람에 몸을 누인다.


용눈이오름은 남북으로 비스듬히 누운 모습이 용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오름. 모두 세 봉우리가 있는데 등성이마다 왕릉 같은 새끼 봉우리가 봉긋봉긋하다. 오름의 형세가 용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라는 데서 용논이(龍遊), 또는 마치 용이 누워 있는 형태여서 용눈이(龍臥)라고도 불린다.


 
 
오름은 단순한 흙덩이가 아니다. 제주 사람들은 오름 자락에서 생을 일구었다. 불을 놓아 화전(火田)을 만들었고 말과 소를 쳤다. 사냥도 오름 자락에서 이루어졌다. 오름은 산 사람뿐만 아니라 죽은 이들의 몸도 넉넉하게 받아주었다. 제주 사람들은 죽어 오름에 뼈를 묻었고 제주의 맑은 햇빛과 세찬 바람 속에 누웠다. 용눈이오름에도 산담을 두른 무덤들이 가득하다. 죽은 자들은 오름에 묻혀 산 자들을 내려다본다.


 용눈이오름 정상에 올라 바라본 제주는 신비롭다. 쭉쭉 뻗은 삼나무숲 울타리는 밭과 밭의 경계를 나누고 검은 돌담 속 밭에는 당근 새 순과 마늘이 푸르게 돋았다. 멀리 동쪽으로 성산포와 우도가 아스라이 보이고 김녕과 세화를 잇는 해안도로 변에 놓인 풍차가 힘껏 돌아간다.


 오름은 시시각각 모습이 바뀐다. 맑은 날, 햇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오름은 다양한 빛깔을 뿜어낸다. 오전에는 초록빛이었다가 오후에는 보랏빛으로 변한다. 비오는 날에는 회색이 섞이기도 하고 안개가 자욱한 날이면 연둣빛을 내기도 한다. 곡선도 마찬가지. 안개 자욱한 날 오름은 그 둥근 곡선을 안개 사이로 숨긴다. 안개 속, 오름의 선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지는 듯하다가 다시 끊긴다.


 용눈이오름 건너편에 손에 잡힐 듯 다랑쉬오름(382.4m)이 가깝다. 다랑쉬라는 이름은 오름에 뜨는 달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는 제줏말. 다랑쉬오름으로 가는 길에는 특별한 이정표가 없다. 오름을 보고 밭 사이로 난 시멘트 길을 따라 가다 보면 다랑쉬오름이 나온다. 도로변에서 오름 정상으로 난 길은 희미하다. 청미래덩굴과 망개나무가 무성하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면 정상.


다랑쉬오름은 외형뿐 아니라 정상의 분화구도 아름답다. 움푹 파인 분화구 타원의 지름은 350m. 모든 곡선은 중앙부를 향해 단 하나의 둥근 산비탈로 집중된다. 둘레 1.5km, 깊이 115m로 한라산 백롬담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랑쉬오름은 그 아름다움과는 달리 비극을 숨기고 있다. 4ㆍ3 사건 때 다랑쉬오름 아래에 있던 20여 가구 주민들이 몰살당했다. 마을 사람 몇몇은 다랑쉬오름의 굴에서 숨어 살았는데 이들 역시 군·경 토벌대에 의해 죽고 말았다. 토벌대는 굴 양쪽 입구에 불을 지펴 연기를 들어가게 해 질식사시켜 버리고 말았다. 이후 이 일대에서는 사람 사는 흔적을 잘 찾아볼 수 없다. 다랑쉬굴 입구는 폐쇄되었고 늙은 팽나무 한 그루만이 쓸쓸히 자라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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