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장금> 바람 ‘태풍’으로 커지나
  • 정유미(자유 기고가) ()
  • 승인 2005.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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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개 도시에서 시청률 1위…한국 드라마 ‘몸값’ 치솟아

 
최근 한 한국인 관광객은 중국 윈난성 리장으로 여행을 갔다가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리장에서 출발하는 후타오협 2박3일 트래킹 코스를 함께 신청한 중국인 관광객 30여 명이 일행 중 한국인을 발견하자 순식간에 주변으로 몰려들어 <대장금> 주제가를 불러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 관광객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억지 춘향’으로 즉석 무대에 불려나가 주제가 <오나라>를 불렀다. 노래 실력과는 상관없이 중국인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진 것은 당연하다. 당시 일행 중에는 쓰촨 지방의 후미진 촌구석에서 온 사람들도 섞여 있었으나 <대장금>을 모르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중국 후난(湖南) 위성TV가 지난 9월1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대장금>이 중국 본토 구석구석까지 강타하고 있다. 외국 드라마 사상 최초로 평균 시청률 14%대를 돌파하며 중국 31개 도시에서 단연 시청률 1위를 기록 중이다. 외국 드라마는 밤 10시 이후에만 방영해야 하는 중국 당국의 방침에 따라 방송 시간이 밤 10시로 밀려났음에도 불구하고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는 중국 드라마들을 거뜬히 제친 것이다.

<대장금>의 인기몰이는 음식, 의복, 의술 등 다양한 방면에서 가장 한국적인 문화를 전파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드라마에 나오는 맛깔스런 궁중 음식들과 단아한 한복, 의침 등 한방 의학은 동방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며 중국 시청자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고 있다.

한국 음식에 대한 고정 관념도 바꿔

<대장금>은 음식 문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자부심에도 타격을 입혔다. 세계 4대 요리 중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히는 중국 요리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던 중국인들이 한국 전통 음식의 가치를 처음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중국에 들어온 한국 식당들은 된장찌개·비빔밥·김치볶음밥 등 획일화한 메뉴를 주로 선보여 왔다. <대장금>은 ‘한국 음식은 단순하고 가짓수도 적다’는 고정 관념을 완전히 깨뜨렸다. 이미 <대장금> 열풍이 휩쓸고 간 홍콩에서는 그동안 홍콩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던 서양 음식의 아성을 한국 음식이 단숨에 무너뜨렸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어 또한 ‘고급 이미지’의 상징이 되고 있다. 한글이 박힌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최근에는 중국산 화장품 케이스에 서투르게 한국어를 적어놓고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대장금>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불기 시작한 한국 관광 열풍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10월1일 중국의 황금 주간이라 불리는 1주일간의 국경절 연휴 때 중국의 여행업계는 다양한 여행 상품을 내놓았다. 해외 여행 코스 중 최고 인기를 누린 것은 단연 한국 단체 여행 상품. 특히 서울과 함께 <대장금>의 궁중 장면 무대가 된 화성행궁이 있는 수원을 코스로 잡은 여행 상품은 예약이 일찌감치 마감된 상태였다.

언론들 “<대장금>은 영혼을 불어넣은 작품”

중국인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대장금>에 열광하는가. 무엇보다도 인간의 도리나 인과 응보를 중시하는 동양적인 정서가 중국인들의 잠재된 감성을 자극했다는 점이 꼽힌다.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는 주인공 ‘장금이’의 당찬 모습도 중국 시청자들을 흡입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이에 대해, <대장금>이 드라마에 ‘영혼’을 불어넣은 작품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틀에 박힌 중국풍 역사 드라마에 식상한 시청자들에게 확 바뀐 역사극을 선보였다는 점도 성공 요인이다. 중국 드라마의 절반 이상은 역사극이다. 그런데 이들 역사극은 등장 인물들의 과장된 어투와 행동으로 인해 사실성과 현실감이 결여되어 있다. 마치 창을 하듯 길게 늘어지는 말투와 높낮이 차가 큰 어조는 자연스러움이 배어나는 영상 문화에 길든 젊은이들을 사로잡지 못한다. 더욱이 등장 인물들끼리 툭하면 서로 싸우거나 암투를 벌이는 장면에서 따뜻한 인간애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중국의 젊은이들 중에는 ‘한국 드라마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니까 중국 드라마는 어색하고 재미가 없어 도저히 볼 수가 없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세밀한 감정 묘사와 탄탄한 시나리오에서 한국 드라마는 특히 우위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다.
 
<대장금>은 중국인들의 기호는 물론 일상적인 대화 주제도 바꾸어놓고 있다. 중국 칭다오의 5성급 호텔인 리징(麗晶)호텔에서 근무하는 우춘위(吳春雨) 씨는 한국 드라마가 DVD로 출시되기가 무섭게 전집을 사서 보는 한국 드라마 마니아다. 그녀는 요즘 이와는 별도로 밤늦게까지 <대장금>을 시청한다. 고객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반드시 ‘간밤’ 드라마 전개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伴) 한류도 뛰어넘을 기세

최근 2년 동안 중국 각 지방에서 방송된 외국 영화와 드라마 중 한국 작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25.4%에 이른다. 지난 9월에는 <대장금>과 <굳세어라 금순아>가 같은 시간대 다른 채널에서 방영되면서 시청률 1·2위를 다투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대장금>이 성공함으로써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는 비율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장금>은 한국 드라마의 ‘몸값’까지 천정부지로 높여놓을 기세다. 이전까지 중국의 방송사가 수입한 한국 드라마의 최고가는 회당 4천 달러였지만 <대장금> 수입 가격은 이보다 3배에 달하는 회당 1만2천 달러에 이른다.

순풍이 있으면 역풍도 있는 법. 한국 드라마의 승승장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중국인도 점점 늘고 있다. <대장금>에 대한 열광이 도를 넘어섰다고 우려하는 중국인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장금>을 보지 말자’로 대표되는 반(反)한류 분위기도 형성될 조짐이다. ‘환호’의 만리장성 너머에 ‘반감’의 만리장성이 나타날 수 있다. <대장금>은 과연 이 만리장성도 넘어설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반감’의 만리장성조차 넘어설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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