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의 사나이, 태풍의 눈 되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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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제청된 박시환 변호사, 계급화·관료화한 법조계에 변화 몰고올 듯

 
법원 내 개혁 그룹의 대표 주자인 박시환 변호사가 지난 10월19일 대법관 후보로 제청되었다. 그는 사시 21회이기 때문에(관행대로라면 사시 14회 전후 기수가 제청되어야 한다) 법원의 기존 서열 구조를 크게 흔든 것이다. 그는 그동안의 대법관들이 ‘사람은 9명이지만 한 사람이 재판하는 것과 같다’고 평가될 정도로 획일적이었던 데 반해 ‘다양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상징한다. ‘우리법연구회’라는 조직적인 배경도 갖추고 있다.

이번에 김황식 법원행정처 차장·김지형 서울고법 부장판사도 제청되었지만, 박변호사가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이용훈 대법원장’ 시대를 맞아 법조계에 일고 있는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물꼬가 트였기 때문에 앞으로 법조계에는 더욱 거센 인적·제도적 변화가 몰아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강성 개혁론자로 알려져 있지만, 한번이라도 만나 본 사람은 그가 부드러운 성격과 예절 바른 품성을 갖고 있음을 금방 느끼게 된다. 법조계 내에 진보·보수 파를 막론하고 그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서울 서초동 진성빌딩에 있는 박변호사 사무실에는 클래식 CD가 많다. 한쪽에는 오디오 세트도 있다. 그의 취미는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것과 가곡을 부르는 것이다. 사무실 책장에는 가곡집도 여럿 꽂혀 있다.

법조계에서 그가 주목된 것은 20년 전인 1985년부터다. 서슬이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 인천지방법원에 초임 판사로 취임한 지 6개월이 되었을 때인 1985년 9월 그는 ‘사건’을 일으켰다. 거리에서 시위하면서 유인물을 배포한 혐의로 즉결 심판에 넘겨진 대학생 14명 가운데 11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판결 직후 강원도 영월지원으로 쫓겨갔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알려지자 당시 유태흥 대법원장이 대한변협으로부터 사퇴를 권고 당했고, 국회에서 탄핵이 발의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박시환’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운동권과 거리 먼 공부벌레였다”

이 일만 보면 그가 혹 운동권 출신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열혈 운동권과는 거리가 있다. 박변호사는 기자에게 “나는 운동권은 아니었다. 시위하면 뒤에서 돌 한번 던지고 도망가는 학생이었다. 열심히 공부했다. 당시 운동하던 친구들이 나를 보고 왜 이렇게 변했냐며 놀란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른바 ‘무죄판결 사건’에 대해서도 그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당시 시위 학생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판사가 자신말고도 여럿 있었다는 것이다. ‘숫자가 좀 많았고 우연히 언론에 알려져서 주목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에도 그는 의미 있는 행보를 했다.

단순 시위가담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해 공안검사들로부터 ‘영장 5적’이라는 별명을 얻는가 하면, 현직 판사로는 최초로 헌법재판소에 국가보안법 피의자에 한해 구속 기간을 세 차례 연장할 수 있게 한 국가보안법 19조가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도 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별 것 아닌 일로 볼 수도 있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들이었다.

박변호사가 법관이 사회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건은 2002년에 있었던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병역법 위반 재판이다. 당시 그는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양심적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상 사상과 양심, 종교 자유에 대한 기본권과 배치될 수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 신청을 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당시 느낀 소회를 이렇게 피력하곤 했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 재판이 있기 전까지는 대체복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 자체를 꺼내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재판을 거치면서 이제는 하나의 ‘소수 의견’, ‘존중받는 견해’까지는 된 듯하다. 소수 의견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진지하게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관의 판결이 사회적인 기준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박변호사는 공개적으로 거의 글을 쓰지 않는다. 그가 속한 우리법연구회가 1998년 9월부터 2005년 5월까지 발표문을 정리해 펴낸 1천 쪽이 넘는 자료집에서도 그의 논문은 볼 수 없다. “어느 집단이나 한 사람에게 과도한 의미가 부여되거나 역할이 집중되는 상태가 오래가는 것은 그 본인과 집단 모두를 위해 좋지 않다‘는 평소 소신이 그가 우리법연구회 좌장 역할을 해왔음에도 말을 아낀 이유다.

‘3차 사법파동’으로 불리는 1993년 6월26일 서울민사지방법원 단독판사들 모임의 간사를 맡아 서명운동을 주도한 그는 당시 ‘사법부 개혁에 대한 우리의 의견’이라는 문건을 만들었다. 문장은 이창훈 변호사가 썼지만, 박변호사의 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다. ‘대법원장의 인사권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 ‘사법부의 계급화·관료화를 방지해야 한다’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박변호사가 강조하는 법원 개혁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다.

1998년 강금실·김종훈 변호사 등과 함께 민주주의와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법연구회를 만들어 사법 개혁, 대법원의 기능과 구성, 법관 인사 제도를 연구해 온 박변호사는 2003년 8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었다. 기수·서열 중심의 대법관 인사 관행이 계속되는 것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당시 그는 우리법연구회 홈페이지에 ‘어떤 상황에 대하여 누구나 가장 적절한 행동을 하여야 한다’는 글을 올려 법원을 떠나는 심정을 토로했다.

브로커 쓰지 않고 소개비 준 적도 없어

2년 남짓 변호사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소개비를 준 적이 없다. 개업을 하면서 ‘브로커를 쓰지 않는다, 소개비를 주지 않는다, 사건을 무리하게 수임하지 않는다, 터무니없는 수임료를 받지 않는다’고 한 결심을 지금껏 지켰다. 그는 “법원에서 ‘사고’ 치고 나간 사람도 변호사가 되더니 똑같다는 소리를 안 듣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사건을 맡았다가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사임한 적도 있다.
 
박변호사는 소신이 있지만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한다. 결론이 무엇이냐는 것보다 그 결론으로 가는 과정이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구성이 다양해져야 사회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공안 사건에 대해 영장을 기각한 적이 많고,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변호인으로 활동했던 박변호사의 전력은 국회 인준 과정에서 논란이 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법조계가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판결에 담아내야 한다는 흐름을 국회가 거스르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는 법조계 변화와 관련해 ‘태풍의 눈’이 되었다. 

 
하지만 법원 안팎에서는 법조계의 진짜 변화는 내년에 일어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내년 7월에 대법관 5명, 8~9월에 헌법재판소 재판관 5명 등 법조계 수뇌부가 10명이나 바뀌기 때문이다. 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이번 대법관 인선에는 대법원장이 출신 대학, 성향 등 이것저것을 고려한 흔적이 역력하다”라고 분석했다. 법원 내 정통 엘리트 코스인 법원행정처 차장 출신, 비서울대 출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추천한 개혁파 변호사 출신 등으로 ‘안배’했다는 것이다.

법조계 주변에서는 이번에 선보인 ‘진보 2 :보수 1’ 조합이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보수 성향이 압도적 인 현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구성으로 볼 때 큰 폭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대법원 이정석 공보관은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가 이번에 추천한 후보 9명 가운데 이번에 제청되지 못한 6명은 여전히 가능성이 높다”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여성 대표 주자인 전수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학계 대표 격인 양창수 서울대 교수, 이홍훈 수원지방법원장은 차기 대법관 후보 0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 우선 중도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이용훈 대법원장이 굽힘 없이 법원 개혁 작업을 벌여갈 것인가가 주목거리다. 개혁 성향인 한 변호사는 “이대법원장이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벌써부터 보수적인 시민단체들은 이번 대법관 인선을 ‘코드 인사’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번 대법관 제청을 계기로 본격화할 보수 그룹의 공세가 내년 대법관 인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용훈 대법원장은 지금부터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대법관 인선을 놓고 보수-진보파가 대격돌하는 상황이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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