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아버지에 그 며느리’의 다정한 경쟁
  • 김상현 기자 ()
  • 승인 1995.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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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아버지에 그 며느리’. 서정수 교수(63 ․ 한양대 출판원장)와 이유미 박사(광릉수목원 연구원)를 아는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런 말을 떠올린다.
  두 사람은 최근 앞서거니 뒤서거니 책을 냈다. 그것도 많은 땀과 시간을 들인 연구서다. 시아버지인 서교수가 펴낸 것은 ‘<우리말본> 이후 60년 만에 나온 문법학 분야의 역저’로 평가되는 <국어문법>(뿌리깊은나무)이고, 며느리인 이 연구원이 내놓은 것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나무 백 가지>(현암사)이다. 두 책은 합쳐서 2천 쪽이 넘는 방대한 규모다.
  <국어문법>은 국어학계로부터 많은 찬사를 듣기도 하거니와, 지은이 자신도 퍽 대견스러워하는 연구서다. 국어 문법에 바친 서교수의 30여년 연구 생활을 총결산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말본>을 지은 최현배 선생으로부터 문법학 강의를 들었던 66~67년에 ‘제대로 된 현대 문법학 연구서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 뒤 자료 수집하는 데 20년, 연구 ․ 집필하는 데 다시 10년이 걸렸다.
  자기 분야에 대한 연구열이나 애정으로 따지자면 며느리도 시아버지에 뒤지지 않는다. 이연구원은 <우리나무…>를 쓰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의 산과 들을 찾아다녔다. 물론 그가 전공한 학문(식물분류학)은 더없이 큰 힘이 됐다. 나무의 생태 ․ 용도 ․ 분포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나무 이름의 유래나 각 나무에 대한 우리 민족의 정서를 알리기 위해서는 만만찮은 가외 공부가 필요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무…>가 칭찬 받는 부분은 내용의 정확성이나 상세함보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문장이다. 전문 연구자가 저지르기 쉬운 딱딱한 문체나 어려운 용어를 이씨는 좀체 쓰지 않았다. 서교수도 “단락을 구성하는 솜씨나 쉽게 풀어 설명하는 재주가 뛰어나다”고 며느리를 칭찬한다. 며느리의 몇몇 글들은 서교수가 911년 출간한 <문장력 향상의 길잡이>(한강문화사)에 예문으로 실리기도 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간의 사이좋은 경쟁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서교수는 문장론을 다룬 책 두 권을 곧 출간할 계획이고, 이연구원은 <숲으로 가는 길>이라는 ‘숲 답사기’를 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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